220111 “열정”이란 무엇인가
드라마 <Anne with an “E”>를 보았다. Charlottetown(캐나다 PEI(Prince Edward Island)의 주도이다) 인근 작은 마을에 사는 Anne의 성장기를 다룬 드라마이다. 1, 2, 3시즌으로 구정된 장편 드라마를 넷플렉스를 통하여 한꺼번에 몰아 보았다. 내 일찍이 해보지 못했던 경험이었다. .
PEI는 캐나다 개척의 시발점이다. 그 중심에 Charlottetown(PEI의 주도)이 있다. PEI는 “빨강머리 앤”으로도 유명하다. 관광객들은 최우선적으로 “빨강머리 앤”의 고향을 방문한다. 이 드라마는 “빨강머리 앤”을 소재로 한 소설(Anne with an “E”)을 드라마한 것이다.
앤은 고아로 PEI의 한 가정에 입양되어 살게 된다. 이 드라마는 Anne, 당돌하고 호기심이 많고 감성이 풍부한 어린 여자애가 전통적인 영국문화를 헤치고 당당하게 자아를 실현하는 과정을 재미있게 이야기 한다.
캐나다에 살아본 사람은 아마도 PEI주를 여행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는 캐나다 동부 끝 부분인 NB주에 살았다. 여기서 PEI까지는 하루 종일 자동차로 달리면 닿을 수 있는 거리이다. 나도 한 두번 자동차로 여행했었다
내가 살았던 곳은 눈이 많고 유색인종이 거의 없는 주로 영국, 프랑스 이민자들이 자기 전통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도시이다. 그 곳에서 10년을 살아온 나로서는 이 드라마에서 나오는 전경이 매우 정겹웠다. 하얀 눈들판이 아름다웠고 그 위를 말을 타고 다니는 모습 또한 감동스러웠다. “그래, 내가 그 눈위를 야생마 같이 뛰어 다녔구나” 하면서
나는 30여 편이나 되는 긴 드라마를 숨 숙이며 보면서 왜 열광했을까? 내가 살았던 NB주는 PEI와 가깝다. 사는 사람도 비슷하고 문화도 비슷하다. 아마도 10년간 그곳에서 살았던 옛 생각이 나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당당하고 호기심이 많고 감성이 풍부한 주인공 앤을 보았기 때문이었으리라.
이 드라마에서 이야기 하는 어른과 아이 , 부모와 자식, 혹은 전통과 진보 사이의 갈등에서 앤이 겪어나가는 과정과 해결이 나를 크게 흥분시켰다. 보는 내내 숨 숙이고 보았으며, 어떤 때는 눈물을 흘리곤 했다. 어른들의 고집, 혹은 기존의 가치관을 앤은 어떻게 헤쳐 나가는가? 한마디로 말하면, 나는 그것은 “열정”이라 말하고 싶다.
나도 어린 시절에는 앤과 비슷했나? 나도 항상 호기심이 많았고 의문을 가졌나? 감성이 남달라 눈과 귀로 남보다 더 많은 의미를 보고 들었나? 내가 그랬다면 앤은 몸소 저항하고 어려움을 헤쳐 이겨나갔지만 나는 숨어 버렸다. 이점이 아쉬워 나는 그 드라마에서 어떤 때는 웃었고 어떤 때는 눈물을 흘렸다.
어릴 때의 큰 열정은 위험한 것으로 어른들은 여긴다. 어른들은 안전하고 품위있고 경제적인 안위를 우선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열정 때문에 자주 부모와 다툼이 생기기도 하고 어떤 이는 가정에서 버림을 받기도 한다. 열정이 남다르면 사회에서는 부적응자로 낙인 찍힐 수 있고, 극복하여 성공하는 자도 있지만 음지에 떨어진 자도 많다. 부부사이에서는 큰 다툼이 된다. 색다른 둘이 만났으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그것에 각자의 다른 열정까지 더하니 정말로 더욱더 힘들 것이다. 특히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획일성을 강조하는 우리의 관습 아래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사람마다 각각의 색다른 열정이 있다. 커기도 작기도 하며 어떤 사람은 별스럽기도 하다. 어떻든 열정은 우리에게 필요하다. 그런데 관습이나 현실의 벽 때문에 작아지기도 하지만 특히 나이를 먹음으로서 줄어든다. 점점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한다. 열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럴 힘이 없기도 하다. 어쩌면 그것이 편하다.
그러나 나이가 먹어도 열정으로 사는 사람도 많다. 나이는 숫자에 불구하기 때문이다. 늙어서도 자기 일에 한 곳에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은 열정이 있다는 것이다. 늙어서도 열정이 있는 사람은 자기 일에서 만큼은 특별하다. 그만큼 삶에 행복감을 느낀다. 상대에게는 이기적이고 불편할 수는 있다. 그러나 열정이 없다는 것은 반은 귀신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도 열정이 있다는 것에 하느님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다.
나는 하는 일에 잘 꼿힌다. 한 번 몰입하면 주변이 잘 안보인다. 주변은 그런 나를 보고 이기주의자라고 몰아댄다. 아마도 ‘하는 일이 별 성과가 없어서 그랬나?’ 하고 스스로 위안하지만 어쨌던 남이 보기에는 나는 이기주의자의 일종일 수 있다. 나는 사물을 볼 때는 전체를 보고 그것을 판단하려 한다. 특히 관습에 관한 한 그렇다. 여기서도 문제가 생긴다. 주변은 기존만 바라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저항아가 된다. 나는 “이기주의자와 저항아”이다. 나쁜 것만의 합이다.
건축설계사인 내가 금속공예로 한동안 세월을 보냈다. 가족은 이런 나를 싫어했다. 그래서 그런가? 앤같이 저돌적으로 밀어 붙여 자아를 실현하기보다 나는 보통 숨었다. 또 미안해 하니 나는 작아져 버렸다. 그래도 열정으로 그럭저럭 잘 지내왔다. 그런데 요즈음은 무엇을 해도 시들하다. 꼿히지 않는다. 이제 겁 먹었나? 이제 나이가 들었나? 이런 생각도 자주 든다. 나에게는 열정이 피워지지 않았지만 그 놈의 열정이 끓었던 젊었을 때가 좋았다고
선배 한 분이 있다. 나 보다 연배인데 본인 일에는 열성적이면서 저돌적이다. 한 곳에 꼿혀 살며 행복해한다. 집짓기에 열성이고 캠핑에 몰입한다. 캠핑카를 마치 우주선 설치하듯 많은 시간을 들여 정밀하게 설치하는 것을 보면 그때는 마치 어린 아기를 보는 것 같다. 보는 이는 답답할 것이다. 그는 무슨 일을 결정할 때에 한 번 꼿히면 그냥 해버린다. 보는 이는 걱정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내가 싫다면 당신은 다른 일에 흥미를 찾으세요”라고 주장한다. 나는 선배가 그렇게 꼿혀 사는 것이 부럽고 그런 말을 하는 용기도 부럽다. “더불어 살면서 자기 열정으로 사는 것”, 이는 젊음을 유지하는 좋은 방법일게다. 할 일 없어 여기 기우뚱 저기 기우뚱 하는 노인네보다 관습에 얶메어 꼼짝 못하는 사람보다 백배 낫다.
드라마 Anne with an “E”은 너무나 재미가 있었다. 내가 이 드라마에 몰입된 이유는 바로 그 열정과 그것을 실천하는 용기를 보았기 때문이다. 입양된, 주변과 좀 다른, 막 자라나는 여자애가 말이다. 나도 열정이 충만했던 때가 많았다. 그런데 내 열정이 이제 사라지고 있다. 나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부끄러움과 미안해 하는 마음 때문에 스스로 억누르기도 하고 몰래 숨었던 탓도 크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내 주위에 눈치를 보아야 할 아무도 이제는 없기 때문이다. “열정”이란 무엇인가? 그 열정을 다시금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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