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바람 Yeon Dreams

Dream & Create 꿈꾸며 창조하다

꿈을 꾸며 창조하다

감상문-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210816 <일본인과 한국인의 의식구조>(김용운) 줄거리와 감상

Hi Yeon 2021. 8. 16. 15:05

210816 <일본인과 한국인의 의식구조>(김용운) 줄거리와 감상

 

저자 김용운(1927-2020)

1927년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 와세대 중퇴, 고향 나주로 귀향하여 고등학교 수학교사 생활, 미국 캐나다 유학(이학박사), 한양대학교 수학교수 역임, 웅진용운수학 집필, 수학자 철학자 문명비평가로 활동, 우리나라 수학을 대중화하였슴, 150권의 책 집필.

 

근세의 일본과 한국은 에도시대 혹은 이조시대의 쇄국이라는 특수한 정치체제 속에서 문화가 형성되었다. 일본은 칼의 힘천하제일 사상이 중심이 되어 백성은 제 분수대로 최선을 다하면 한 만큼 혜택이 돌아오는 사회였다. 농민은 농사, 무인은 무사도, 상인은 상업에만 몰두하여 돈을 벌거나 명예를 얻었다. 그리고 서로의 분수에 영향을 주는 일은 없었다. 예를 들면 대부호 상인이 정치권력에 접근하는 일은 없었다.

 

간섭이나 외침을 받아본 적이 없는 세계 유일의 나라가 일본이다. 그래서 일본 권력자의고민은 단지 내부적 권력체제 유지였다. 그 답으로 칼의 힘천하제일 사상이었다. 내부적으로 자기의 직분에 최선을 다하는 일을 보람으로 생각하게 하는 사상은 전국민을 하나의 계층에 안주시키는 정신적 요소가 되었다. 그럼으로서 칼의 힘으로 사회를 지배자의 뜻대로 고착시킬 수 있게 되었다. 즉 근대 일본사회는 칼의 힘과 천하제일 사상, 이 두 이념으로 세워졌고, 그 사회 안에서 국민들은 성취감에 의한 보람을 찾으려는 신념이 정착되었다.

 

여기에 항거하는 사람은 모조리 제거되었다. 예를 들면 일본 초기 기독교도로 처형된 신자수는 무려 28만명에 달한다. 모두 제거되었다는 말이다. 반봉건세력이나 농민반란도 마찬가지였다. 엄격한 사회에 반항하는 자들에게는 전부 제거만 있었던 것이다. 반체제의 싹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철저히 없애버리는 것이었다. 무가집단의 잔인성이다. 즉 칼의 힘으로 일본전체가 영원불변의 상태가 된 것이다.

 

한국은 대륙에 붙은 반도의 특성으로 거의 1-2년마다 외침이 있었다. 고려시대에서 외침은 거의 연중행사였다. 고려시대 몽고침입 후 정권을 잡은 무인체재가 약화되고 그때부터 문약시대로 들어갔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강대한 외세 앞에 굴복해야 했던 좌절감을 유교적 신념, 동방예의지국 사상으로 외유내강을 실천하게 되었다. 여기서 유교와 정치가 일체화 되었다.

 

세계제국 몽고에 대하여 저항한 것은 낭불사상(화랑+불교)이었고 무력의 한계를 인정하고 대국과 타협을 꾀한 것이 유교의 유가였다. 침략을 받으면 손들면 된다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생성되기 시작했다. 신라시대 해상력은 중국해까지 세력을 넓혔다. 고려시대까지는 막강한 군대로 외침에 항거했다. 그러나 조선는 타협이 안되면 도망갔다. 적으로부터 숨는 방침으로 일관했다. 반도의 특성상 언젠가는 침략자들이 돌아갔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 댓가는 컸다. 침략자가 지나간 곳의 백성들은 대부분이 죽었거나 사라졌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폼만 잡고는 외침에 굴복해야 하는 좌절감과 공포감을 마음 속에 으로 품으면서 작은 복수도 못하면서 입으로만 오랑케, 왜놈이라 깔보았다. 세상에 군대가 없는 나라가 어디 있겠는가? 있었다. 조선이었다.

 

그 당시 일본은 전국 어디에나 세계에서 가장 잘 정비된 도로와 관개시설이 있었으나 조선은 사람만이 겨우 다닐 수 있는 오솔길 뿐이었고 농지는 대부분은 천수답이었다. 한국은 지구에 남겨진 최후의 오지(1895년 프랑스 기자의 표현)였고 자존의 정신만 가슴깊이 간직하였다. 좋게 말해서 은자의 나라, 신비의 나라였다.

 

한국의 관리는 불필요한 악적인 존재였음에 비해 일본에서의 무사단은 적어도 필요한 악이었다. 동족부락이야 말로 안심할 수 있는 유일한 거처였다. 그래서 우리는 나가 아닌 우리라는 말을 어디에나 쓴다. 이조에는 사농만 있는 사회이며 이마저 사농구별이 애매했다. 사가 되는 것 외에는 보람을 찾을 길이 없으므로 정성을 다할 정열이 생기지 않았다.

 

손으로 하는 기술을 천하게 여기고(군자불기) 관념적 유교사상과 말, 그리고 청백리를 이상으로 여겼다. 생산을 잘 하면 착취의 대상만이 되기에 누가 하려고 하겠는가? 모두 권력자 계급으로 뛰어 오를 일만 꿈꾸어 독서 이외는 모두 천하다고 생각되었다. 상층과 하층의 차이는 단지 노동을 하느냐 안하느냐의 차이였다. 한국의 개화기에도 조차 유학생 대부분은 법률 혹은 정치학을 공부했다.

 

그런데 일본은 각분야에서 천하제일이면 되었다. 그래서 서양의 기술을 흡수하면 일은 끝났다. 사상의 마찰이 없었다. 법도를 지키고 열심히 장사하면 천하의 거부가 될 수 있고 농민은 정해진 세금만 내면 되었으므로, 백성은 이처럼 편한 인생은 없다고 느꼈다. 선비는 체면, 무사는 자존, 상인은 금력, 농민은 농사, 기술자는 생산품, 이렇게 각각 층에서 천하제일이 되면 그만큼 대우를 받았다. 영주는 일정량만큼만 거둬가는 세금에 만족하는 반면에 수확이 많으면 그만큼 더 털리는 조선와 상반되었다. 백성이 침체와 무기력에 빠지는 것은 당연했다.

 

일본은 칼의 사회이지만 그 만큼 백성에게 당근도 많았다. 반면 조선의 왕과 권력자는 잦은 외침에 숨고 도망갔다. 그만큼 백성들은 죽어갔다. 할 것이라곤 가슴에 한을 품는 것, 그리고 청빈을 찬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백성의 피를 더 빨았다. 백성은 열심히 하여도 자신에게는 이득이 없는 사회였다.

 

일본인은 행복하지 않을 수는 있었으나 살아가는데 고난은 없었다. 조선은 가난했다. 핍박과 외침에 의하여 일할 의욕이 없었다. 당연 가난했다. 가슴에 남는 것은 한 뿐이었다. 가족을 챙기면서 마음으로는 행복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희망마저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일본은 작은 것을 죽여 큰 것을 살리는 복종의 길이었지만 조선은 나라가 망해가도 핏줄을 먼저 챙기는 동방예의지국이었다. 조선은 백성이 하늘이라는 평등의식이 강했고 일본은 계급의식이 강했다. 조선시대에 연이은 왜란 호란 때 왕은 우선 제일 먼저 챙기는 것이 조상의 위패였다. 영주, 무사단의 우쭐함을 인정해 주는 일본은 실리를 챙길 수 있는 사회였다.

 

우리는 한의 문화이다 보니 눈물의 문화였다. 정의 사회이며 눈물을 흘리면 대부분 감동했다. 민주화 사건에서 죽은 학생들을 눈물로 추모하는 이유이다. 정의 세계에 빠지면 주관적이 되기 쉽다. 그래서 한국은 법보다 눈물이 세다.

 

일본은 작은 벌레를 죽여 큰 벌레를 살린다. 반면 조선은 법이나 사회정의보다 집안과 친구를 더 감싼다. 이는 관의 보호를 받는 기회가 적은 사회였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사병은 하사관이나 장교들에게 기합이나 괴롭힘을 당해도 만족한다. 그러나 그것은 싸움터에서 선두에서서 그 대가를 지불해줄 것이라고 생각될 때 뿐이다. 우리의 집권층은 오히러 백성을 더 멸시하고 더 탈취했고 전란이 생기면 먼저 가족을 챙기고 숨었다. 어느 편에 있는 백성이 더 괴롭웁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학구열이 높은 이유이다. 각자 도생하라는 것이다. 선비는 얼마나 시비(是非)를 따졌길래 시비가 욕이 되었다. 당파 싸움하는 유학자나 타락한 선비들은 비속한 십(시비)보다는 못하다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똑 같이 유교를 받아들였지만 한국은 효를 강조하였으며 일본은 충을 강조하였다. 각각 자기 식으로 이용한 것이다. 효는 자연적 논리이나 충은 인위적 논리이다. 그 결과, 정반대의 길을 만들었다. 칼의 세계였기에 문학이나 예술에서는 일본인은 순수미만을 찾았다. 무상의 철학, 부질없는 세상을 말했다. 그 길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미의 세계는 어느 나라 예술보다 월등했다.

 

칼로 벤 자리가 직선이 되듯, 칼로 규제된 사회체제도 선이 분명하다. 조금이라도 위계질서를 조금이라도 어지럽히는 행위는 용납이 안된다. 이런 인위의 선은 자연의 선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자연의 세계는 선은 있으나 직선은 없다. <그러나 인위의 선은 스스로 강하게 살 수 있지만 자연의 선은 순응하며 살아야 한다. 순응은 참아야 하고 약해지며 어떤 때는 없어지기도 한다. 직선과 곡선이 크게 다르 듯 인위의 선과 자연의 선은 이렇게도 다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지만 한국은 자연의 선이다. 사상, 예술, 건축, 인문, , 통치에서 자연적 아름다운 미라고 그렇게 스스로 자랑한다. 이는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일본의 천황은 신화와 군사력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지만 조선왕조는 신화는 없고 가진 것이라고는 약한 왕권보호 군사력이었다. 조선의 신화는 가문이 가지고 있었다. 동시에 가지고 있는 사람은 김일성이다. 일본에서는 공자 맹자라 하더라도 내 적이 되면 칼을 뽑고 싸워라. 그것이 공맹의 가르침이다라고 하지만 우리는 절대로 그럴 수 없다. “나라가 망하는 일은 있어도 왜놈에게 항복할 수는 없다고 하는 최익현의 절규는 참으로 명분만 내세우는 말이다.

 

조선에서는 나라를 구하는 충보다 가문을 살리는 효가 우선이었다. 믿을 것은 내 가족 내 문중이라는 것이다. 항상 충보다 효가 앞섰다. 그렇기에 전란 때는 우리는 항상 가족을 챙기고 숨거나 도망을 갔다. 가족이 죽고 찍기고 하면 그때 저항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에게는 충이다. 우리나라가 개화기에 기독교가 그렇게 확대된 것은 그만큼 비인간적인 사회였기 때문일 것이다.

 

칼의 힘으로 돌아가는 사회는 간단(심플)하며 붓이 만드는 사회는 복합하다. 민주의식 평등사회이다. 나를 지켜줄 것이 자기 자신밖에 없다고 자각될 때는 아무리 힘이 없어도 적에게 덤빌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어미새가 새끼를 품고 있을 때 무서운 뱀으로부터 습격 당했을 때의 대항하는 태도와 같다. 모두가 귀족이 될 수 있다는 자부심 그것이 공생이고 민주정신이다. 그것만이 한국인의 심금을 울리고 신바람을 내게 했다. 그래서 그런가 일본에서 죽음은 끝, 체념, 무상으로 여기지만 한국은 원래로 돌아가는 새로운 창조로 여긴다. 사람이 죽으면 돌아가셨다고 말하는 연유이다.

 

한국과 일본의 기질을 함께 구비힌다면 세계적 이상적인 인물상을 만들 수가 있지 않을까하는 물음을 저자는 던진다. 이는 이렇게 두 나라가 다름을 말하는 것 뿐이다. 한국은 가진 것도 힘도 없는데 보편성을 찾았다. 한편 일본은 가진 것과 힘을 가졌으나 보편성을 갖지 못했다.

 

저자는 책에서 아리랑을 예로 들어 우리의 정서를 추론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글 끝내면서 나는 생각해 본다.

 

아리랑이다. 한 구절 두 구절 음미해 보면 느낌은 한마디로 이다. 그리고 결과론적이고 매우 수동적이다. 어린애 응석같은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이 노래를 부르면 마음이 치유된다. 나도 그렇다.

 

나는 아리랑 가사를 이렇게 바꾸어 보았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가서 행복난다.

 

과거는 그랬다. 현재 우리는 많이 합리적이고 선진화 되었다. 과거의 기질도 많이 변했다. 그러나 폼생폼사로 권력을 챙겨 여기저기 기웃하면서 입만 갖고 설치고, 사리사욕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재단하며, 권력유지에만 열을 올리는 사회는 아니었으면 한다. 문은 우리나라가 강해지는 근사한 백년대계의 계획표을 세우고, 그냥 말없이 조용히 솔선수범 하는 것이 최고다. 그것이 바로 문이 해야 할 의무이고 명예이다. 조선을 말아 먹은 문이었지 않는가? 한반도라는 지리적 강점이 우리를 지켜주는 시대는 지났다. 지금은 대충 넘어갈 수 있는 평화의 시대이지만, 멀지 않는 미래에는 과거보다 더 약육강식적 열강세계가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