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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집 - 겨울배추는 달고 향기롭다

210921 추석 날 아침 등산 길에서

Hi Yeon 2021. 10. 12. 18:10

 

210921 추석 날 아침 등산 길에서

 

추석날이다. 남들은 다 고향에 갔을 것이다. 추석날은 우리의 최대 명절이다. 가족 친지를 만나고 차례를 지내는 추석은 일년 중 으레껏 하는 큰 행사이다. 요즈음은 차례를 지내는 것보다 가족과 만남을 더 중요시 한다. 누구는 가족과 휴양지로 가족끼리 여행을 하면서 그곳에서 간단한 차례를 지내는 사람도 많다.

 

귀신은 다 할 수 있고 다 알 수 있다. 어디에 제사상을 차려도 다 알고 간다. 제사상에 과일과 찌짐을 놓든 초장회나 파스타를 놓든 잘도 드신다. 오히려 귀신도 현대적인 음식을 더 좋아할런지 모른다. 정종보다 소맥이나 치맥을 더 좋아할런지도 모른다. 조상 귀신님은 허구한날 과일과 찌짐, 마른 명태나 생선구이에 소고기국을 추석날마다 드신다. 아마도 요즈음 음식을 한번쯤은 드시고 싶을 것이다.

 

제사나 차례는 다 지내는 이유가 있다. 눈에 보이는 이유는 조상님을 생각하고 추모하는 행사라는 것이다. 사자가 와서 무엇을 먹고 맛보고 하겠는가? 다 산자의 생각으로 만든 하나의 행사이다. 원칙은 그렇지만 그런 행사가 왜 생겼는가 하고 가만히 생각하면 행사의 본래 취지를 알 수 있다. 조상을 추모하는 행사를 핑계로 가족끼리 모여서 만나고 보고 서로 교류하면서 행복하게 살라는 것이다. 그런 취지를 이해한다면 차례나 제사문화가 현대적으로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겠는가 라는 답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우리 가족들이 모여 행복한 시간을 보낼까? 하는 생각을 하면 답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면 추석 명절 며느리병이나 아들병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내가 가고 싶은 고향집으로 준비하면 될 것을 제사 율법이 어떠하니, 형식이 어떠하니, 차례음식이 형식에 어긋나니, 하는 꽉 막힌 어르신(꼰대)이 되면 고향으로 찾아 올 사람은 점점 없어진다. 차례도 형식이 아닌 마음으로 하고, 그리고 고향에 내려가는 것도 자식이나 동생이라는 어떤 상하관계의 마음이 아닌 단지 보고 싶은 마음으로 하면 모두 오지 말라고 하여도 기를 쓰면서 고향을 찾을 것이다. 가장이 절대적인 권력이나 사회 경제를 결정하는 조선시대였다. 옛날에는 시키는 대로 제대로 하지 않으면 가장이 외면하게 된다. 그러면 아래사람들은 살 길이 없다. 이제는 시절에 맞는 추석문화가 되어야 한다. 정부도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서 노골적으로, 사실 그런 방법 밖에 없는지, 그런 만남의 추석을 겁을 주면서 억제하고 있다. 옛날의 가장같이

 

추석 며칠전 형님께 미리 사과배 상자를 온라인으로 보내고 난 후 잘 받았는가 하고 형님께 전화를 드렸다. 잘 받았다 하고는 이번 추석에는 코로나가 유행하니 오지 말라고 하였다. 괜히 다른 말을 하면 큰 소리가 나올까 봐그냥 예 하고 전화를 끊었다. 예전에 가족이 있을 때면 우리 가족끼리 편히 추석을 지내면 될 일이다. 오히려 편해서 좋았겠지. 그러나 지금은 혼자 있으니 좀 난감했다. 추석에 혼자라? 그렇다고 추석날 누구와 만날 수도 없다. 모두 가족과 같이 하는 시간을 가질텐데 말이다.

 

나는 매일 집 근처 산행을 한다. 왕복 2시간 거리이다. 세종 대평동 남쪽과 대전사이에 일출봉이 있다. 예로부터 집근처 산행으로는 유명한 코스이다. 오르막 내리막이 적절히 있어 멀지도 가깝지도 않는 거리이고 코스도 다양하다. 나는 평소 그냥 등반에만 신경쓴다. 그러나 여기 태생의 사람들은 본래 촌생활과 산생활을 하였기에 산속의 생태를 잘 안다. 버섯이 어디 있고, 무슨 나무이고, 열매는 어떻고 하면서 어떤 아주마는 산나물까지 캔다.

 

어느날 등산길에 밤이 여러 개가 보였다. 아니 이 등산길에 밤이…. 그것이 내 눈에 보이다니가만히 보니 등산길 주변에 밤나무가 늘어져 있었다. 평소 무심코 보며 지나쳤던 것이다. 관심이 있었더라도 나는 굳이 밤을 줍지 않았다. 그것 여러 개를 주워 뭐하려고 보니 등산객 아주머니들이 봉지 봉지 밤나무를 주워서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도 밤을 주워 보았다. 그러나 내 눈에는 빈 밤송이만 보였다. 그럴 것이 아침 동트자마자 아주마 아저씨들이 주워 갔으니 있으리 만무했다. 그런데 간혹 내 눈 앞길에 굵은 밤송이가 자주 반짝거리며 보였다. 아침 일찍 남들이 다 훝고 지나갔는데 내가 등산하는 아침 8-9시 경에 왜 등산길 바닥에 굵은 밤들이 제법 있을까? 그들이 훝고 지나간 다음에 그때 밤들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마침 내가 그때 지나가기 때문이다.

 

 

밤은 수시로 익으면 바람에 떨어진다. 남들이 다 훝어 주워도 등산로 주변을 쓸쩍 보면 미처 발견되지 못한 굵은 밤들이 있다. 내가 가기 전 바로 전에 떨어진 것들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 주워도 주머니에 꽉찾다. 20개가 되었다. 이틀 분을 모아 삶아 먹으니 그 맛이 특별했다. 내가 주워 내가 삼아 먹으니 그랬다. 친구 말로는 산밤은 특히 더 맛있다고 하였다.

 

추석날 나는 예전처름 산행을 했다. 추석날 아침 누가 산행을 하는가? 아무도 없었다. 등산로는 조용했고 나만이 산속에 있었다. 등산로를 무심코 보니 밤들이 지천에 깔려 있었다. 아침 이른 시간부터 지금까지 미리 밤을 주운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등산길 바닥에만 보아도 밤 투성이다. 추석날 아침 혼자 산행이다. 애써 늠늠하였다. 그냥 무심히 지나치고 싶었다. 그냥 말이다. 그런데 그놈의 밤들이 나를 멈추어 세웠다. 보이는 것이 밤이었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손이 갔다. 등산길 주변이 아닌 등산로에서만 주워도 양 주머니가 가득하다. 그것도 굵은 놈들로주워서 길옆 숲속에 모아두고 또 가면서 모아두고그러면서 정상까지 갔다.

 

되돌아 오면서 수거해보니 주머니에 넣어서 올 양이 아니었다. 등산 모자와 겉옷으로 그놈들을 넣고 싸서 들고 힘들게 집으로 왔다. 귀찮았지만 해보니 재미가 있었다. 그렇게 오전의 추석은 생각없이 지나갔다. 그놈의 밤을 두세번 나누어서 며칠동안 까먹었다.

 

그전에 여기 토배기 친구에게 밤나무에 대하여 들은 이야기이다. 군데군데 자생하는 밤나무가 많다는 것이다. 여기 등산길은 다 사유지이다. 주인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줍는 자가 임자이다. 등산로는 이미 공공의 장소가 된지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밤송이가 떨어지기 전에는 나는 모든 나무는 그냥 도토리 나무로만 여겼다. 나무 종류라 해 봐야 난 소나무, 도토리나무 정도만 안다. 친구의 설명을 듣고 보니 그때 밤나무가 눈에 보였다. 바닥에 밤송이가 있고 그 위로 처다 보면 그것 또한 밤나무이다. 친구의 설명을 듣고 보니 밤나무 줄기의 색깔은 떡깔나무보다 다소 연했다.

 

이렇게 현장에서 토배기 친구를 통하여 산속 환경을 알게 되는가 싶었다. 산꾼이나 약초꾼도 그렇게 익혀가면서 배우는 것이리라. 아침마다 산행은 운동과 함께 여러가지 임산물과 채소를 배우고 현장 경험을 하는 시간이 된다. 밤 뿐만 아니라 대추, 호박, 브루베리, 고추, 들꽃, 소나무, 산짐승 등등 보고 듣는 이야기가 많다.

 

아래 사진에서 앞에 있는 밝은 색깔의 나무가 밤나무이고 뒤에 있는 짙은 색깔의 나무는 떡깔나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