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321 출산율 저하는 차별받은 여성이 무의식적으로 거부하는 심리현상이다
베이비 부머(Baby Boomer) 세대라는 말이 있다. 우리에게는 625 전쟁 이후 세대이고 미국이나 서방세계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대를 말한다. 전쟁이 끝나고 남자들이 고향집으로 돌아갔다. 정신적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전쟁 이전의 시간에서 갑자기 경제적 시간적 여유로움이 생기자 출산율이 급상승하게 되었고 그때 태어난 애들이 자라서 경제사회의 주역이 되었다. 그들이 베이비 부머 세대이다.
과거 그때보다 요즈음은 훨씬 경제적으로 풍요스럽고 평화로운 시절이다. 그럼 더 많은 애들을 낳아야 할 것이 아니가? 현실은 그렇지 않다. 반대로 출산율은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한국과 일본은 서로 지리적 문화적 인문적동질성을 가지고 있다. 출생율 저하의 근본원인에서 한국과 일본은 같은 배를 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중국에서도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는데, 공산국가의 강력한 산아제한 정책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원적인 원인은 동양문화를 같이 하는 한국과 그 궤를 같이 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경우 출산율이 1 이하이다. 최소 한 부부가 두 명에서 세 명의 아이를 낳아야 인구가 줄지 않는다고 하니 매우 심각한 단계이다. 그래도 우리나라 인구는 늘고 있다. 노령화로 인하여 노인 인구가 늘어 아직까지는 출생자가 사망자보다 많기 때문이다.
한국의 출산율 저하의 원인을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인간도 종족보존이라는 본성이 있어 결혼하고 애를 갖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다. 그러나 사람은 이성 때문에 제어된다. 그것은 문화로 표출되며, 인간은 그 문화적 환경에 좌우된다. 남아선호 사상, 남자우월사상, 봉건제국주의, 성귀족주의, 성배타주의, 지배층의 성독점과 성탄압, 성노예화, 유교의 엄중한 성규범, 등등 이런 문화 속에서 우리는 500년 이상 지배되고 세뇌되었다. 전쟁으로 사람이 많이 죽으면 애를 많이 낳기도 한다. 개체수가 급격히 늘어 먹을 것이 없으면 애기를 많이 낳지 않는다. 이렇게 환경에 의해 반응되는 출산율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그 반대로 경제적 환경이 나아지는데도 불구하고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지는 이유에 대하여는 쉽게 설명하기가 어렵다.
전문가들이 예상하는 원인으로는 애를 키우기에는 많은 돈과 충분한 육아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고 무엇보다도 젊은이들이 육아보다는 자신의 편리와 행복추구를 우선하는 경향 때문이다고 한다. 그래서 공적으로 신혼부부에게 자금을 지원하고 육아시간을 보장하는 정책도 동원되었지만 효과가 없었다. 신혼부부에게 아파트를 제공하는 정책도 나왔다. 물론 눈에 확 띄는 정책이나 실질적인 큰 보상을 하면 어떤 효과를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모든 국가 재정과 시간을 여기에 다 투여할 수는 없다. 애를 낳아라고 평생 공짜로 돈을 주면 출산율이 올라 갈 수 있겠지만 근본 대책은 아니다. 지원하면 낳고 지원하지 않으면 애를 낳지 않는 정책은 미봉책이다. 근본 원인을 파악하고 그것에 맞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
최근 영국 학자가 연구한 한국 출산율 저하의 근본 원인에 대한 자료를 보았다. 그 학자가 제시한 원인은 놀랐게도 문화적인 측면이었다. 오래동안 지속된 남녀불평등이 출산을 막는다는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지적이 아닐 수 없다. 과거 오랫동안 고착화된 남녀차별 문화가 왜 지금 풍요로운 시대에서 출산율을 낮출까?
과거 조선의 남녀문화는 특별했다. 남녀차별은 조선이 유교를 국교로 삼으면서 강화되었다. 성노예문화, 집권세력의 성독점과 성배타성, 유교의 엄격한 성규범 같은 남녀차별 문화는 조선통치 500년동안 우리의 뼛속에까지 각인되었다.
남자는 여자를 지배하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대상이었고 여자는 무조건 따라야만 했다. 계율은 지옥보다 더 무서웠지만 유교와 귀족문화의 계율은 미풍양속으로 포장이 되었다. 단일민족이라고 스스로 자부하면 우리는 모두 부모 형제 자매 사이가 아니든가? 그런데 정복하고 정복당하는 이민족 사이에서 있을 법한 성배타성과 성노예가 단일민족끼리 자행되었다. 지금부터 600년 전부터 계속 있어 왔던 일이다.
평등의 남녀관계에서는 그냥 단순한 사랑으로 자연스럽게 아이를 갖지만 상하 남녀관계에서 여자는 복종과 의무로 아이를 갖는다. 남녀칠세 부동석이어야 하고, 양반을 성으로 섬겨야 하고, 여자 노예의 자식은 노예가 되고, 가문의 대를 위해 남아를 낳아야 하고, 결혼이 아닌 시집을 가야 하고, 정조를 지켜야 하고, 한 아비만을 섬겨야 하고, 여자는 철저한 예법에 따라 행동해야 했다. 여자는 남자의 지배를 받는 특수한 인격인 셈이었다.
자연스럽지 않는 것에는 항상 반대급부가 따른다. 이는 세상의 이치이다. 남녀차별의 부작용은 가족관계에서 우선 나타났다. 남녀는 사랑관계가 아니라 상하종속관계이다. 그 반대급부로 여자의 모든 사랑은 자식에게 솔렸다. 지아비가 아닌 자식을 잘 키우고 자식을 바라보고 자식에게 의존하는 것은 여자의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었던 것이다. 내가 어떻게 낳고 키운 애들인데… 임신하고 낳는것이 얼마나 힘들고 아픈 것이지… 라고 하는 말을 잘 들어 보면 뼈 있는 말이다. “남자, 다, 너 때문이다”라는 말과 같다. 자연스러운 사랑의 결과라면 이런 말이 필요없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보기에는 신세대 같은데 속은 부모 영향아래 자란 이들이다. 겉으로는 남녀평등으로 보이지만 뼛속과 무의식속에는 불평등이 여전하다. 아직도 남자위주의 문화가 이 땅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고, 기존세대이든 신세대이든 자신도 모르게 옛날 문화에 젖어 살고 있다. 지금도 우리에게는 임신과 출산은 자연스럽지 않다.
다행이 요즈음 여성우위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여권이 신장되면서 여자는 우선적으로 출산거부라는 심리가 작용하는 것 같다. 여자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애기 갖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여권이 회복되면서 핍박의 600년 세월의 인고로 인하여 오늘날 여성에게 무의식으로 나타나는 것이 여성의 아름다운 능력에 대한 거부이다. 여권신장이 되면서 과거 남녀차별에 대한 여자의 반대급부적인 심리가 지금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인가 혹은 누군가가 원해서가 아니라 성관계가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일 때 우리의 출산율은 자연스럽게 올라갈 것이다. 이는 애를 낳고 기르는 것이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행복이 되는 문화에서만 출산율이 올라 간다는 뜻이다. 캐나다에서 살 때였다.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이 애를 낳았다는 기사가 지역신문 1면을 꽉 채웠는데, 행복해 하는 큰 사진의 엄마 얼굴이 있었고, 그 엄마의 엄마와 가족들 그리고 이웃들의 웃는 얼굴도 있었다. 애기 아빠는 같은 학교 학생이다고 신문은 소개하고 있었다. 서로 사랑했으니 좋은 일이고 기쁜 경사라는 것이다. 신문 내용을 보면 당사자들 역시 그랬다.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고 우리의 행복한 일상 중의 하나라는 뜻이었다. 나에게는 정말 큰 문화적 충격이었다.
우리나라 출산율 저하의 원인을 제기한 영국학자의 연구논문을 참고하면 우리는 출산율을 끌어 올리기 위한 정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는 인본적인 남녀평등으로 가는 문화적인 변화이다. 그러나 문화변화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조선 500년 동안 우리를 지배해 온 문화이기에 그런 문화에서 자유롭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스스로 변해야 하지만 쉽지 않다. 아무리 발부등 친다고 하여도 남녀차별의 문화를 완전히 지우기 위해서는 지배되고 세뇌된 시간만큼이나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그 변화를 앞당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문화혁명이다.
문화혁명과 더불어 이민과 외부문화를 적극받아 들여 인종적 문화적 단일민족이라는 틀을 없애는 것이다. 인본주의적 이민자와 외부문화가 들어오면 급속도로 우리 문화의 편협성은 희석될 것이고, 우리의 노력과 함께 자연스러운 인본주의적 남녀의 문화는 보편적 진리가 될 것이다. 그러면 자연히 출산율은 올라갈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의 정체성이 훼손된다고 보지 않는다. 지혜로운 집권세력의 현명함으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단일민족, 성노예, 성차별, 쇄국과 배타성, 집권세력의 부폐와 암투, 남성위주의 가문적인 국가로 인하여 조선이 망한 것처럼, 과거의 남녀차별로 인한 오래된 피해의식으로부터 유발되는 출산율 저하라는 망령 때문에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 우리는 지금 많이 여권이 신장되고 있지만 피상적이고 간헐적이며 임기응변식이다. 인본주의적 자연스러운 남녀문화가 아직은 요원해 보인다. 우리는 점점 더 단일화와 동질성, 쇄국과 배타성, 부폐와 암투, 중앙권력화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문화적으로 매우 비슷한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남녀차별 문제에서 일본은 한국과 1등을 겨루는 정도로 비슷하다. 한국과 일본 정도는 아니지만 중국도 남녀불평등차이는 매우 크다. 그래서 동양 세 나라가 향후 과거 남녀차별 문화가 존속하는 한 잘 살아도 출산율은 점점 떨어지면서 인구가 줄어들 것이다. 세 나라의 특징은 이민족에 매우 배타적이라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중국은 이민족에 많이 노출되어 그들의 문화가 많이 융합되었다. 반면 한국과 일본은 이민족과 섞이는 경험은 거의 없었다. 단일민족을 덕으로 삼고 있을 정도로 지속적으로 한 방향만을 달리는 나라였다.
나라의 기틀이 잡히는 시대에 잘못된 내 문화를 스스로 버리기는 어렵지다. 그래도 우리는 혁신을 하여야 한다. 더불어 문화를 개방하여 우리 문화를 인본주의 관점에서 다양화 하고 세계화 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미래는 없다. 여성이 애를 안 낳으면 망하는 것이 아닌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출산율 저하는 오랫동안 차별받고 학대받은 여성이 무의식적으로 거부하는 심리현상이다. 이는 장기간의 치유로만 해소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남녀차별 문화에 젖었던 한국과 일본의 미래는 비슷해 보인다. 애를 낳지 않는 나라는 망한다. 그 선두에 우리가 있는 것 같다.
'하루를 보내는 나의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210417 소나무 숲과 바위, 그리고 유적이 함께하는 경주 서남산 (0) | 2021.05.17 |
---|---|
210330 내 사랑, 누님이 가셨다 (0) | 2021.05.17 |
210329 경주 불국동으로 가다 (0) | 2021.05.17 |
210404 누님이 남겨준 사진첩 (0) | 2021.05.17 |
210515 누님, 여동생과 함께 부모님 산소에 가다 (0) | 2021.05.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