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329 경주 불국동으로 가다
내 사무실을 당분간 친구에게 맏기고 경주로 향했다. 경주에 마련한 전원주택지를 개발하기 위해서였다. 내 땅에서 작은 개천을 건너면 경주에서 조성한 택지가 있고 그곳에는많은 원룸빌딩과 상가가 있다. 그곳 원룸 하나를 후배 사업자를 통하여 전화로 예약해 놓았다. 사실 예약이라기보다 여기에는 원룸 빌딩이 지천에 깔렸는데, 울산 부산 경기가 코로나로 침체되다 보니 그 많은 원룸이 현재 텅텅 비어 있어 적은 돈으로 말만하면 만사형통이었다.
내 작은 차에 의자를 접고 짐을 실으니 딱 한 살림이 되었다. 그리고 아침 일찍 경주로 달렸다. 3월 29일의 회창한 봄날이다. 고속도로를 달리며 창문을 여니 시원하면서 따뜻한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어찌 이렇게도 날씨가 좋단 말인가? 너무 좋으니 괜히 짜증이 났다. 이런 날에 자동차에 가재도구를 싣고 달려야 하나 하는 질투 같은 것이었다.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이상한 생각이 마구 들었다. “마음으로 원하면 모든 것이 저절로 되면” 하는 생각이었다. 누군가 내 옆에 있으면 좋은데… 그러면 누군가 내 옆에 있고, 커피 한잔이 먹고 싶으면… 그러면 바로 아메리카노 커피 한잔이 바로 내 옆에 김이 모락모락 하고, 이 봄날에 꽃구경하고 싶은데 하면… 그러면 내가 벗꽃이 만발한 경주에 가 있고, 피곤하다 하면… 그러면 좋은 호텔 라운지 소파가 내 옆에 있다. 감정만 있고 내 의지가 필요없는 세상이라면 참 좋은 세상일텐데 하는 부질없는 생각들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내 차를 보았다. 짐들이 알차게 들어 앉아 있었다. 2006년 캐나다에서 한국에 올 때는 배낭 한 개였는데 이제는 자동차에 가득하다. 그때는 메고 걸었지만 지금은 자동차에 싣고 달린다. 제법 발전했다. 다음에는 비행기에 싣고 날아 볼까
이제부터 더욱 내 인생에서 서둘럴 것 없었다. 빨리 달려 보았자 별일 없다. 바로 고속도로 휴게소를 들렸다. 너긋이 휙 휴게소 안밖을 둘려보고는 호두빵 한봉지를 쌌다. 한봉지에 2000원이었고 봉지 안에는 10개 정도의 호두빵알이 있었다. 호두빵알은 고속도로를 달릴 때 먹고 싶은 것 중의 하나였다. 하나를 입에 넣었다. 달콤했다.
다시 경주를 향해 달렸다. 차창 너머 보니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너무너무 화창하고 기분좋은 봄날이었다. 핸드폰에 저장된 전유진이가 부른 “훨훨훨”이란 노래를 털었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띠없이 살라 한네
사랑도 벗어 놓고 미움도 벗어 놓고, 물같이 바람 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최근 경주에 자주 다녔다. 겨우 한 달에 1번 정도였지만 아마도 내 평생 이렇게 경주를 자주 들락날락 한 적은 없었다. 학창시절에는 돈이 없어 고향를 못 찾았고, 가족이 생겼을 때는 빠쁘다는 핑계로 고향을 못 찾았다. 이제는 고향에 부모는 없다. 이제 고향으로 몸과 마음이 쏠리니 나도 이제 철이 드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행이 형제들이 있으니 많이 좋다. 그때 그때 했어야 했는데 이제 그나마 자주 간다. 나도 그렇고 사람 다 내 필요에 따라 찾아보는가 보다.
경주IC를 나와 불국사 불국동으로 향했다. 활짝 핀 가로수의 하얀 벗꽃이 도로를 꽉 채웠다. 나를 반기는 것인가. 벗꽃은 나무에서 춤을 추고 아스팔트 바닥에서 꽃잎은 흐날리면서 춤을 추었다. 벗꽃 동굴을 이리저리 지났다. 천국같은 봄날은 이런 모습이던가? 봄햇살에 눈이 부시고 하얀 꽃잎무리에 마음이 부셨다.
도착하여 후배를 찾았다. 그리고 원룸으로 안내 받았다. 방+작은 거실+작은 부엌+화장실(약 전용 8평, 주차장, 엘리베이트)로 구성된 1.5원룸이었다. 보증금없이 언제든지 나갈수 있는 조건으로 월 30만을 지불하는 것으로 약속했다. 후배에게는 슬쩍 5만원 2장을 접어서 그의 주머니에 넣어 주었다. 쉽게 방을 얻었고 다음에 또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자동차 안에 있었던 짐을 다 방으로 옮겼다. 짐을 여기저기 놓고 보니 내가 마땅히 앉거나 쉴 곳이 없었다. 아직 방은 냉골이었다. 도시가스 회사에 전화를 걸어 가스밸브를 열어 달라고 하니 내일 가능하다고 하였다. 그럼, 오늘 밤에는 냉골에서 자야 한다. 다행이 건물 주인이 전기 장판을 갖다 주었다. 그래도 전기장판으로 냉골방에 잘 수 없었다.
밖으로 가서 건물을 둘려보았다. 여러 다발의 도시가스관이 벽에 지나가고 각각 관에 계량기가 있었다. 계량기 옆에 가스차단기가 있었고 내 방 차단기는 잠겨 있었다. 차단기는안전을 위하여 아무도 열 수 없도록 잠물쇠로 잠궈져 있었다. 잠물쇠는 프라스틱이었다. 나는 손으로 만져서 잠물쇠를 풀었다. 그리고 가스관 밸브를 열었다.
방으로 들어가서 보일러를 켜니 돌아갔다. 그리고 사워도 했다. 그래도 방은 따뜻하지 않았다. 바닥이 데워지기에는 한두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앉을 공간도 마땅치 않았고 으시시추웠다. 있지 말아야 할 곳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이 공허하고 축 내려 앉았다. 그냥 방에 서 있었다.
갑자기 나는 밖으로 나갔다. 나도 모르게 나왔다. 정말로 갑작스러웠게 나왔다. 보니 저 옆에 편의점이 보였다.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무심코 소주 한병을 들었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왔다. 빈 속에 그냥 마셨다. 목이 마르기도 하고 마음도 마른 것 같아서였다. 목이 시원하고 안절부절 하며 공딱거리던 마음이 가라앉는 듯했다. 그 사이 방도 따뜻해졌다. 문득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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