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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배 꼬인 홀래비 선배

Hi Yeon 2020. 1. 3. 12:04

 

배배 꼬인 홀래비 선배

 

 

 

내가 처음 그 집을 방문한 때는 3년 전이었다. 고국으로 돌아와서 빈둥거리며 놀 때였다. 친구 사무실에서 어스렁거리고 있을 때 신도시에서 부동산을 오래한 친구를 만났다. 어느날 그의 자동차에 동승했다. 나는 그때 자동차가 없을 때였다. 동승 중 친구는 나에게 동네 선배 집에 가려고 하는 참인데 같이 가자고 했다. 그렇게 나는 친구의 선배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 선배 집은 신도시 바로 옆에 붙은 농촌 지역이었다. 집은 한국 전통식이었다. 마치 큰 절의 대웅전만큼 거대했고 내부도 그랬다. 집 대문은 절의 일주문보다 더 컸고 본채 옆에 사랑채도 있었다. 본채 앞에는 정원이었고 그 옆으로는 큰 연못이 있었다. 정원이 잘 단장되고 건물에 단청이 칠해졌다면 이는 마치 크고 좋은 절간이었다. 그러나 어수선한 크고 높은 전통 기와집은 마치 유령이 사는 버려진 절 같았다

 

 

 

나와 친구 그리고 선배 셋이서 대웅전 같이 천장이 높은 집 한가운데 앉아서 소주와 작은 안주로 한잔했었다. 그때 그 선배는 나와는 초면이었기 때문에 친구와 선배 사이의 대화 내용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친구과 선배는 알 수 없는 그들의 인생 이야기를 그들만 아는 단편적인 말로 하였다. 그후로 그 집의 방문 기억은 금방 멀어졌다. 단지 내가 이상한 유령의 집에 잠깐 왔었구나 하는 해괘한 느낌만 마음 속에 남았다.

 

 

 

그리고 1년 정도가 흐르고 친구와 자주 신도시에서 어울리게 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다시 그 집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이때도 그 집에서 친구, , 선배, 이렇게 셋이서 선배가 간단히 차린 소주와 안주로 술을 마셨다. 전에 방문하였을 때 들었던 똑 같은 대화가 이어졌다. 선배의 과거와 현재에 관한 것이었다. 이때도 선배의 사사로운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나는 귀담아 듣지 않았다. 첫 번째 방문 때와 마찬가지로, 이 집을 나설 때는 이상한 집 주인이고 요상한 집이라는 느낌만 강하게 쓰쳤다.

 

 

 

어수선한 거대한 절간 같은 집에서 스님도 아닌 70대 남자가 혼자 밥을 해 먹고 지내고 있으니 그런 느낌은 당연했다. 자기 생각대로 사는 사람이구나, 대단한 사람이구나. 별스러운 사람이 다 있네. 돈이 많아서 그랬겠지. 주택 같지 않은 이 전통 목조 건물을 짓느라 5억이란 거대한 돈을 들였다고 하니. 그런데 혼자 산다. 70대 노인이

 

 

 

그 집에서 나오고 나서 궁금증이 발동하여 친구에게 자세히 물어보았다. 듣고 보니 그동안 무심코 들었던 친구와 선배 사이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었다. 선배는 40대에 목제소를 운영하였다. 몇년 동안 큰 돈을 벌었다. 그리고 큰 빌딩를 구입했다. 부동산을 구입할 때는 사업상 아내 명의로 해 두었다. 그때는 사업하는 사람 다 그랬다. 사업에 문제가 생길 때 최소한 가족을 지키고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흥청망청 돈을 쓰면서 남자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좋은 술집에서 신나게 술도 먹고 바람도 신나게 피웠다. 모든 일을 자기 마음대로 처리했다. 세월이 흐르고 어느날 느닷없이 아내가 갑자기 이혼 청구를 하였다. 그는 아내를 억박지르고 무력을 행사하는 인생 말단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결국 이혼에 응하였고 겨우 재산의 반 정도를 찾았다. 그 돈으로 신도시 아주 초창기에 고향인 지금의 땅을 구입하여 본인 말로는 5억을 들여 크고 높은 한옥 주택을 지었다. 그리고 세상을 등지고 이곳에서 은거하며 살았다. 이제 10여 년의 세월이 흘렸다.

 

 

 

그는 그 집에서 아직도 남을 원망하면서 사람을 멀리하고 혼자 살고 있다. 때로는 집안일과 작은 농사로 마음을 다잡기도 하고, 때로는 며칠 계속 술을 마시며 텅빈 대웅전 같은 내부 공간에서 유령이 되기도 한다. 염불소리가 흘려나오면 아마도 도를 닦는구나 하겠지만, 이때는 간혹 흘려간 유행가가 흘려 나온다. 전통 목조건물, 그 형세에 그 가락이라면

 

 

 

물론 건축비 5억은 허풍이리라. 목재상을 했으니 저렴하게 목재를 구하고 목수를 구했으리라. 일반 사람이 했더라면 그 정도는 들었을 것이다. 혼자 살면서 왜 그렇게 무모한 집을 지었을까? 아내에 대한 배반과 증오, 그리고 아내 편만 드는 자식에 대한 미움을 지우기 위한 도피 내지는 이렇게 고생하여 근사한 집을 지으면 가족이 혹이여 알아 줄까 하는 삐뚤어진 옹고집일 것 같다. 대궐 같은 이런 집에서 홀로 살고 있으므로서 나는 이렇게 억울하다고 사람들에게 표현 내지는 시위 같은 것이 아닐까? 도무지 그가 5억을 들여 왜 이렇게 크고 웅장한 목조 한옥을 건축하였는지 도대체 추측이 안된다.

 

 

 

초기에는 여자를 구해서 같이 살았다. 2년만에 파탄이 나서 작은 돈을 주고 쫒아 버린 경력도 있다고 한다. 자주 술을 마신다고 한다. 그는 입만 벌리면 억울하고 세상과 사람이 밉다고 한다. 나는 얼마나 많이 그들을 도워주고 지원했는데 나를 이렇게 배반하다니. 그래서 나는 사람도 자식도 절대로 만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렇게 그는 이상하고 을씬스러운 대웅전 같은 전통 목조건물에서 유령같이 반짝이는 눈빛을 발하면서 스스로 마음을 찟고 있다. 10년째 늙어가면서 말이다.

 

 

 

며칠 전 세 번째 방문이 있었다. 친구가 그곳에서 저녁을 먹자고 하였다. 저녁을 먹는다고 하니 나야 뭐. 시장끼도 있고 해서 얼른 그가 모는 자동차에 올라탔다. 우리는 그의 한식 대문을 지나 넓고 높은 그의 집 홀로 들어갔다. 작은 앉은뱅이 상이 넓은 대웅전 같은 홀 중간에 덩그렁 있었다. 혼자 사는 늙은 호래비가 차린 한 상이 오직 했겠는가? 술을 마시면서 친구와 선배 사이에 별 이야기가 있겠는가? 역시 친구가 선배에게 시비조로 이야기를 건네기 시작했다.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둥, 남 탓하지 말고 자기 탓을 하라는 둥, 늙은 호래비가 무슨 이런 궁상을 떠는냐는 둥되돌아 오는 선배의 반응은 여전했다. 어떤 때는 언성이 높고 어떤 때는 한탄조였다.

 

 

 

건물 포함 전체 땅은 시세 18억인데 2년 전에 16억에 사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선배는 팔지 않았다. 헐값에 구입한 그 땅은 무진장 올랐다. 팔 의사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선배는 몇 년을 기다리는 한이 있더라도 18억에 팔겠다는 것이다. 땅의 정가가 있는가? 필요한 사람이 가격을 메기면 그것이 현재 가격이다. 신도시의 분위기는 많이 가라 않았다. 그런 사람이 다시 온다는 것을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5억을 들인 집이라 하더라도 보편성이 없으면 건물 가격은 없다. 그건 그렇다 하더라도 그는 지금도 한탄과 원망 그리고 술과 함께 외부와 담을 쌓고 산다.

 

 

 

친구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또 다시 쏘아댔다.

 

 

 

과거가 무슨 대수인가? 이만 했으면 됐다. 나이 70이다. 이제 내 인생을 살아야지. 다 본인 탓인데 아직도 남탓하는가? 땅값이 이렇게 크게 올라준 것만도 천복이다. 18억 받겠다고 기다리다 원망과 술만 늘고, 더 늙고, 그러다가 한방에 가면 누가 좋을까?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절반을 가족에게 강제로 빼앗기더니, 이제는 욕심부리다 한푼도 못쓰고 가족에게 통채로 받치는 꼴이 된다.”

 

 

 

친구가 아무리 말하여도 그의 귀는 원망으로 이미 막혀 있다. 그의 입에서 한탄과 욕설만 나온다. 아마도 우리가 없으면 한 동안 혼자 사는 유령의 집이 되겠지. 누굴 붙잡고 말할 사람도 없겠지. 사람은 살아야 하겠지. 그래서 스스로 며칠 견디겠지. 그러나 순간 순간 스스로 자빠져서 또 술독에 빠지겠지. 몽롱한 세상을 맛보면서 스스로를 위로해 가면서 말이다.

 

 

 

나는 일어나야만 했다. 그리고 한마디 거들었다.

 

 

 

친구 가세나. 안타까워서 친구가 말하겠지만 친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어 보이네. 간단한 술 한잔으로 이렇게 잠깐 있는 것도 이렇게 들어주는 것도 됐다네. 자기 세계에 갖힌 노인은 힘이 빠져야 그때 마음이 변한다네. 그때는 후회해도 늦지만, 어쩌겠어.”

 

 

 

우리는 그 집을 떠났다. 뒤로 보이는 그 집은 전번보다 더 요상하게 보였다. 선배의 이야기를 알게되니 더 을씬스러웠다. 사람 사는 것이 뭔지. 사람 다 마음 먹기에 달렸는데 그 마음이라는 것이 이렇게 요상스럽게 배배 꼬이다니 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친구는 왜 가끔 그곳을 방문할까? 그리고 자꾸 안스러운 말투로, 혹은 비꼬는 투로, 어떤 때는 아랫사람 대하듯 선배에게 함부로 그런 말을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선배는 왜 가끔 음식을 준비하고는 친구를 오라고 할까? 물론 친구도 부동산 일을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고향 선배이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오라고 하니 갔을 것이다. 그러나 친구가 그곳에 장시간 주저앉아 쓸데없는 말을 주저리주저리 하면서 별볼일 없는 안주에 소주잔을 비울 때는 단지 일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럼 그 선배는 모든 것을 잊고 지금이라도 팔아서 편히 살지 왜 그럴까? 굉장히 많이 올랐는데 말이다. 팔아서 돈으로 쓰기에는 아깝고, 아직은 인생 청춘인 것 같고, 안 팔고 이렇게 노랭이 같이 살고 있으면 가족이 혹이여 자기를 불쌍히 여겨주고 다독거려 줄까 봐 그럴까? 아니면 그래도 이대로 죽으면 나중에 가족이 아비를 좋게 생각하겠지 라는 기대감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