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바람 Yeon Dre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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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꾸며 창조하다

하루를 보내는 나의 에세이

오늘의 일탈이 끝나지 않기를

Hi Yeon 2020. 1. 12. 21:35

 

오늘의 일탈이 끝나지 않기를

 

 

 

사람이 다 그런가? 나만 그런가? 가끔 불쑥불쑥 무엇인가 터질 것만 같은 날이 있다. 별일도 없는데 별일을 가지고 나 스스로 별일처럼 여길 때가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다 잘 돌아가고 있는 데 말이다. 남들은 항상 별일 없이 그렇게 살까? 나는 말이다. 스스로 하루 정도는 별일을 만들 때도 있다. 별일 후에는 하루 이틀 앓고 나면 괜찮아진다. 물론 이틀이나 삼일 동안 별일을 벌이면 되지만, 이틀 이상은 몸에 큰 탈이 난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기에 하루 정도만 작은 별일을 만든다.

 

 

 

젊을 때는 한 달을 그렇게 별일 있는 것처럼 일탈하였어도 견딜 만했다. 이제는 하루만 그렇게 해도 몸과 마음이 아프다. 몸이 아프면 마음은 더 쑥시고, 마음이 쑥시면 몸은 더 아프다. 그래서 하루 정도만 일탈을 해도 이제는 덜껑 겁이 난다. 그래서 일탈 속에서도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다잡는다. 그러면 금방 현실이 보이고 나는 제자리를 찾는다.

 

 

 

일을 놀이 삼아 하면 재미는 있으나 흥미가 없어진다. 내 사무실에서 나 혼자 내 멋대로 일하면 뭐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스트레스가 없다고 하면 없다. 그러나 간혹 이렇게 살면 뭐 하노? 하고는 일탈을 꿈꾼다. 평온하게 별일 없이 몇 날이 지나면 지루하다. 그러면, 이 정도야 괜찮지 하고 일탈을 꿈꾼다. 나이 60이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렇다니 한심하다. 나에게만 생기는 병일까 하고 스스로 물어보기도 한다.

 

 

 

어느 날 한번, 작업실에서 디자인과 공예 작업을 해볼까 하다가 동장군이 나를 밀어냈다. 사무실을 등한시하고 작업실을 추가로 난방하면서까지 공예 작업을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갈등도 생겼다. 사무실 유지 관리비가 껌값이 될 정도가 되면 모를까? 그래서 사무소 일을 하면서 공예 작업하기를 포기했다.

 

 

 

에이 모르겠다. 한 가지만 해.”

 

 

 

퇴근 후에는 친구들과 밥 먹고 술을 마시거나 TV를 보며 즐겼다. 그것도 나에게는 일종의 일탈이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해보면 가슴에 구멍만 커진다. 별 볼일 없는 짓이라 느껴진다. 그럴수록 몸과 마음은 더 찌부듯해진다.

 

 

 

인생이 그런거야. 마음을 비우면 지루함이 되고 그런 지루함도 그런 양하면 그것이 바로 천국이고 열반이라고 했던가? 다 생각하기 마련인데, 요즈음은 자꾸만 스스로 바빠지려고 한다. 어찌 보면 조금 바쁜 것도 좋아 보인다. 산 날보다 살 날이 적어서 그럴까?

 

 

 

처음 보는 손님이 오면 브리핑도 하고 현장도 잘 보여준다. 그렇게 그들에게 다 진진하게 대한다. 그것은 내 마음이지 손님의 마음은 아니다. 손님 중 많은 사람들이 정보 수집으로만 나에게 온다. 듣고 보고 난 후에는 전화번호를 남기려 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부터 조금씩 바빠진다. 내가 바쁜 만큼 그런 별 볼일 없는 손님들은 저절로 걸려진다. 손님은 내가 바쁘면 그만큼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며칠 전 친구의 소개로 새로운 소주를 맛보는 기회가 있었다. 맑고 투명하고 촌스러운 모양의 소주 병과 그 소주 맛은 내 입맛에 좋았다. 기존보다 덜 덜지근하였고 가볍고 쓴맛이 일품이었다. 며칠 후 회원분 몇 분과 그 술을 다시 마시는 기회가 있었다.

 

 

 

좋은 분과 좋은 분위기, 그리고 새로운 소주.

 

 

 

그런데 평소 일탈을 꿈꾸었던가. 술 한 잔에 몸과 마음이 축 처지고 왠지 모르게 감상주의자가 되었다. 술 마셨으면 기분이 좋고 잠도 잘 올 텐데. 그와는 반대였다. 일탈을 꿈꾸면 지금의 행복도 행복으로 느끼지 못하는가 보다. 밤새 꿈을 꾸는지 뒤척이면서 긴 밤을 보냈다. 아침에는 뒤숭숭했고 머리도 띵했다.  

 

 

 

그날은 평소보다 아침 일찍 사무실로 나갔다. 이럴 때는 모든 것이 나를 그냥 내버려 두면 좋을 것을사람들이 오전 내내 불려댔다. 오후가 되었다. 점심 먹자고 또 불려댔다. 나는 그때 평소 하지 않는 고집을 부렸다. 어제 먹었던 재래시장 안의 그 식당으로 친구를 마구 이끌었던 것이다. 동태찌게를 주문하고는 작은 객기를 부렸다.

 

 

 

아주마, 진로 그 소주 한 병

 

 

 

왜 갑자기 점심에 소주를?

 

그냥, 마시고 싶어서.

 

 

 

친구는 오늘따라 삑 다리 쳤다.

 

 

 

마시자고 할 때는 안 하고 오늘은 왜?

 

그냥이지 뭐. 동태탕에 소주 반주로 점심을 이것도 괜찮잖아?

 

 

 

점심때 고집대로 소주 한 잔을 걸쳤으면 되었지 않나? 사무실에 돌아와서 조용히 라디오 클래식 음악에 마음을 맏기니 술기운이 약간 요동쳤다. 문득 평소 생각해 놓은 것이 떠 올랐다. 별도의 작업실에서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고 사무실 한쪽 책상에서 공예 작업을 하는 것이었다. 손님이 보면 무엇을 하는지 모르게 살짝그럼 간단한 장치와 작은 작업대가 필요했다.

 

 

 

그래 그것을 만들자

 

 

 

나는 목공 작업에 들어갔다. 갑자기 바빠졌다. 장치와 작업대의 디자인을 순식간에 하고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목재를 사무실로 가져왔다. 그리고 눈금을 하고, 톱으로 썰고, 맞대고, 붙이고

 

 

 

한잔 술에 난방이 된 사무실에서 낑낑대면서 일을 하니 몸에서 열이 났다. 상의를 벗었다. 작업에 재미를 느끼자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일을 했으니 간식이 있어야지. 작업 간식은 술이 제격이야. 옛적에 그랬잖아. 내 사무실인데 뭐. 스스로 좋은 구실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편의점에서 오늘 점심때 마셨던 그 소주 한 병을 사왔다.

 

 

 

한잔 술과 함께 목재 작업을대낮 사무실에서

 

 

 

그 와중에도 가끔 손님이 들어와서 자꾸 물어댔다. 사무소 바닥이 작은 목재로 어질려 있는 것을 본 손님들이 문턱에 서서 물어댄다. 앉아서 대화하시지요하고 정중히 권해도 사양한다. 그렇다고 막대고 무시할 수도 없고바쁜 나를 붙잡고 실껏 물어보고 내 명함 달라고 하고는 자기들의 전화 번호는 남기지 않는다. 부동산 눈띵 같은 것이다. 한잔 하니 확실히 대담해진다. 그런 손님에게는 내 일탈은 아주 괜찮았다.

 

 

 

 

 

 

 

 

 

대충 목공 작업을 끝냈다. 사무실에서 공예 작업을 할 준비가 조금 되었다는 생각이 하니 작은 흐뭇함이 생겼다. 소주 한 병도 마셨겠다, 기분 째진다. 좋네. 요 정도면 됐다. 그럼, 집으로 Go. 그런데, 자동차 운전은 틀렸네.

 

 

 

내 자동차를 사무실 앞에 두고는 외투를 하나 더 걸치고 집으로 향하는 시내버스를 타기 위하여 삼거리 방향으로 걸었다. 겨울 찬바람이 불어댔다. 땅거미가 지면서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불 켜진 편의점 앞에서 웅성거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가만히 보니 편의점 앞 파라솔에서 젊은이들이 둘려 앉아 소주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들의 낯짝을 유심이 보았다. 동남아 외국인이었다.

 

 

 

 

 


 

 

잔돈 몇 푼으로 대로변에서 대놓고 음주를 하다니.

 

대한민국 만세!

 

 

 

사무실에서 대낮에 대놓고 소주를 마시다니.

 

대한민국 만세!

 

 

 

낮술 먹고 퇴근길에 걷노라니 갑자기 시인이 된 기분이다. 갑자기 화가가 된 기분이다. 갑자기 철학자가 된 기분이다. 눈에 들어오는 사물이 별스럽고 생각이 별스러워진다. 도로에서 지나가는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건물이 나를 지나간다. 이 기분이 계속 되기를 빌어본다. 시내 버스를 탔다. 도시와 세상이 나를 지나간다. 이 기분이 영원하기를 빌어본다. 어디선가 이 버스가 멈추는 그곳에는 999 은하열차가 나를 기다리겠지. 그것을 타면 오늘의 일탈이 끝나지는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