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와 칼”, Ruth Benedict, 요약 정리>, 전중후의 후반부
국화와 칼 / 11 자기 수양
미국은 자기 훈련을 위한 특별한 전통적인 방법이 비교적 발달되어 있지 않다. 필요하다면 자기 필요에 의해서 한다. 일본인은 누구라도 특수한 자기 수행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인생에서 참으로 중대한 사항이 문제가 될 때 육체적 요구는 아무리 그것이 건강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일지라도 철저히 멸시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떠한 자기 훈련을 해서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구에서는 부모는 아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남편은 아내에게, 아들은 부모에게 등등 가족에서나 사회에서 자기의 자유를 희생한다는 것은 표준적인 신조이다. 그와 다르게, 일본인의 타인에 대한 봉사 배후에 있는 강제력은 상호 의무이며, 남에게 받은 것에 대하여 같은 양의 변제를 할 것 요구하는 동시에 계층적 관계에 선 자끼리 상호 그 책임을 수행할 것을 요구한다. 당사자 어느 쪽도 자기가 수행한 의무를 희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상호 의무관념이 강제력으로 작용하고 있고, 또 자기훈련은 자신의 이익이 된다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인이 도저히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많은 행위가 용이한 일인 것처럼 생각된다.
그들은 유능하게 행동하기 위해 미국인보다도 훨씬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또한 변명을 하는 일도 적다. 그들은 우리만큼 빈번히 생활의 불만을 남에게 전가하지도 않는다. 또 우리만큼 빈번히 자기 연민의 정에 젖는 일도 없다. 그들은 자기 몸에서 나오는 녹에 대하여 미국인보다 훨씬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도록 훈련되고 있다. 능력을 기르는 자기훈련과 더불어 숙달을 함으로서 행위를 제어한다.
일본의 수행법은 인도의 요가에서 유래되었다. 요가 수행은 육의 세계를 버리고 윤회로부터 해탈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일본은 불교국임에도 불구하고 윤회와 열반사상, 인과응보 사상도 없다. 사후 세계는 없다. 사토리(깨달음)는 지금 여기에, 지금 이 시간 한가운데에 있다고 한다. 신분이 낮은 농부조차 죽으면 부처가 된다고 믿는다. 각 가정의 불단에 모셔져 있는 가족의 위폐를 나타내는 말이 바로 부처님이다.
일본인은 정신과 육체를 대립관계로 보지 않는다. 요가 수행은 욕망을 제거하는 방법이다. 일본인은 이런 가르침이 없다. 인정는 악마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관능의 즐거움을 맞보는 것은 생활의 일부분이다. 유일한 조건은 관능은 인생의 중대한 의무 앞에서는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뿐이다. 일본의 교파는 금욕주의지 않다. 아내와 자식도 있다.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성자인 까닭은 명상에 의하여 수행의 공을 쌓는 것과 그 간소한 생활에 있다.
요가 수행에 있어서 신비주의도 없다. 신비주의는 망아 입신(자기를 잊고 신비한 경지에 들어감), 신과 하나, 우주 합일 같은 것이다. 그것은 일점 집중의 태도를 기르는 하나의 훈련법으로 간주한다. 요가 훈련을 초능력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완전한 자기 훈련, 빈틈없는 숙달을 휙득하는 수단으로 본다. 이와 같은 훈련은 승려 뿐만 아니라 무사에게도 유익한 방법이다. 선의 수행법을 강건한 개인주의를 받쳐주는 지주가 된다.
선의 교사들이 가르친 전통적인 훈련은 제자들에게 깨닫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아무리 검술이 좋아도 무아(깨달음)이 없으면 안된다. 칼을 잘 쓰는 것은 능력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무아는 정신 집중으로 얻는다. 이런 깨달음, 정신적 훈련으로 스스로 취득해야 한다. 깨달음을 얻도록 하기 위한 가장 애용되는 방법은 고안(문답)이다. 고안의 한 예이다.
질문 : 어떻게 하면 생사의 윤회를 면할 수 있을까요?
대답 : 너를 속박하고 있는 자는 누구인가?
우리는 소를 탄 채 소를 찾는다. 필요한 것은 그물이나 덫이 아니고 그런 도구로 잡을 물고기이나 짐승이다. 아직 어린 아이였을 때 일본인들은 자기 행위를 관찰하고 타인이 무슨 말을 할까 하는 것을 기준하여 그 시비를 판단하도록 철저히 훈련받는다. 그의 ‘보는 나는’ 매우 상처 입기 쉽다. 무아 삼매경(자기를 잊는 몰입 상태)에 몰입할 때, 그는 이 상처 입기 쉬운 자아를 배제한다. 그는 이제 지금 내가 하고 있다고 느끼지 않게 된다. 그때 그는 이로써 자기는 마음의 수양이 되었다고 느낀다.
그것은 검술을 배우는 사람이 자기는 이제 겁먹지 않고 1미터의 기둥 위에 서는 훈련이 되었다고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화가도, 시인도, 연설가도, 무사도, 마찬가지로 이 무가(무아)의 훈련을 이용한다. 그들이 습득하는 것은 무한이 아니고 유한한 미를 명료하게 방해받음이 없이 지각하는 것인데, 혹은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지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꼭 알맞는 정도의 노력을 할 수가 있도록, 수단과 목적을 조화시키는 일이다. 좋은 예로는, 다른 일에는 일체 정신을 팔지 않고 오직 적기의 동태를 살피는 고사포의 사수는 무가의 땀을 흘린다. ‘보는 나’를 잃었다. 이런 상태에 놓여 있는 사람은 최상의 컨디션에 있다, 즉 “무가에 있다”고 생각되고 있다.
이와 같은 생각은 일본인이 자기 감시와 자기 감독을 얼마나 중압적으로 느끼고 있는가를 웅변으로 말하고 있다. 그들은 그런 제약이 없어졌을 때 자유로워지고 마음껏 일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죽은 셈치고 사는’ 사람을 매우 높이 평가한다. ‘죽은 셈치고 산다’고 하면, 인간의 자아가 사멸하여 남아 있는 ‘산 송장’인데, 일본인은 ‘숙달된 무아’로 산다는 의미로 쓴다. 이러한 무심의 표현은 이미 방해받지 않게 된 인간을 의미한다. 습관에 있어서 의식을 배제하는 것이다.
행위에 대하여 죄의식을 느끼지 않게 된 인간을 말하는 미국에서는 악인의 뜻이고 일본에서는 선인, 즉 수행을 쌓은 인간이다. 미국인에게 선행을 하도록 요구하는 강력한 강제력은 죄의식이다. 일본인은 인간은 본래 선이고 하지(치욕)의 자기 감시에 의해 제어되고 숙달의 수행을 쌓아 ‘방해하는 나’를 극복하는 것이다.
국화와 칼 / 12 어린 아이는 배운다
서구에서 양육은 어려서는 엄하다가 자라면서 차츰 완화되어, 드디어 스스로 생활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지고 가족을 거느리고 자력으로 생활을 영위하는 나이가 되면, 거의 타인의 간섭을 받지 않게 된다. 나이가 들고 늙어서 기력이 쇠하거나 남의 신세를 지게 되면, 다시 구속의 그림자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일본의 갓난아이는 사려 깊은 서구인이 상상하는 것과는 아주 다른 방법으로 양육되고 있다. 일본에서 양육방법은 정반대이다. 유아 시기에는 제멋대로에서 점점 구속이 커지면서 결혼 전후의 시기에 이르면 자신의 자의대로 누릴 수 있는 자유는 최저선이 된다. (U Type) 이 최저선은 장년기를 통하여 몇십 년 계속되는데, 그 이후는 다시 상승하여 60세가 되면 다시 유아와 거의 마찬가지로 수치심이나 외부의 소문에 구애받지 않게 된다.
인간은 장년기에 그 체력이나 돈버는 능력이 정점에 도달하게 되지만, 일본인은 자신의 생활을 자신의 취향대로 누릴 권리를 인정받지 못한다. 그들은 장년기에서 속박이 가장 좋은 정신적 훈련(슈요)이고, 그리고 자유에 의해서 달성될 수 없는 성과를 만들어 낸다고 굳게 믿는다. 대신 유년기와 노년기에는 자유로운 영역이 된다.
이처럼 아이들에게 대해 관대한 국민은 아이를 원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아이를 원하는 이유는 아이를 사랑한다는 일이 즐겁기 때문이다. 그것보다 더 큰 이유는 자신의 혈통을 잇는 데 있다. 만일 혈통이 끊긴다면 그들은 인생의 실패자가 되기 때문이다.
모든 일본 남자는 아들을 얻지 않으면 안 된다. 그는 자신이 죽은 후 매일 불단의 위패 앞에서 명복을 빌어 줄 자식을 필요로 한다. 그는 가계를 영원히 전하기 위하여, 또는 가문의 명예와 재산을 유지하기 위하여 아들을 필요로 한다. 여자도 아이를 원하지만 그것은 정서적 만족을 얻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여자는 어머니가 됨으로써 비로소 지위를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여자는 아이를 많이 낳기를 바란다. 1930년대 일본의 평균 출생율은 동부 유럽 다산국보다 높았다.
일본인은 젖 먹이는 것은 여자의 가장 큰 생리적 쾌감의 하나라고 믿는다. 그리하여 갓난아이는 쉽게 어머니의 즐거움에 동참하는 것을 배운다. 1개월이 지나면 갓난아이는 어머니등에 업힌다. 좀더 큰 어린이가 갓난아이를 업기도 한다. 이처럼 일본의 갓난아이는 등에 업혀서 사람들 가운데에서 생활한다. 일본 아이는 대체로 다음 아이를 낳을 때까지 젖을 떼지 않는다.
아이는 자라면서 어머니, 또는 할머니가 집안 일을 담당하고 훈육한다. 아이들은 어머니와 할머니가 아버지를 받드는 것, 가정의 계층제도에서 연장자의 특권, 남자의 특권, 형의 특권을 가정에서 알게 된다. 그리고 아이들은 유아기 동안 가족 중의 누구로부터도 관대한 취급을 받는다. 일본 아이는 누구나 장남감을 가지고 있다. 큰 아이와 작은 아이가 다투게 되면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 하고 큰 아이에게 양보할 것을 권한다.
여자 아이들이 배우는 중 하나는 자는 것을 배우는 일이다. 일본 여인이 나체로 목욕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지만, 자는 모습을 남에게 보이는 것을 매우 부끄럽게 여긴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이나 또 학교에 들어간 후에도 사내아이와 계집아이는 함께 논다. 일본인은 좋지 않는 장소나 좋지 않는 친구와 함께 행하는 경우가 아니면 아이의 성적 유희를 꾸짖지 않는다. 수음도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어릴 때는 마음껏 부담없이 자랑, 주장, 등등 무엇이든 말하고 싶은 말을 맘대로 한다. 그러나 점점 자람에 따라 그들은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을 전부 말할 수는 없음을 알게 된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또는 가장 뿌리 깊은 종교적 경험을 하는 것은 항상 자기 집 불단과 신토의 신단(가미다나)을 중심으로 행해지는 가정예배에서다.
초등학교시절부터 품행에 잘못이 있으면 가족으로부터 또한 주변 친구로부터 비난과 공격을 받는다. 한 사람이 집단의 구성원으로부터 비난이나 공격을 받을 경우, 그 집단은 일치 단결하여 보호에 나서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그 정반대의 일이 벌어진다.
6세에서 9세에 이르는 사이에 점차적으로 세상에 대한 기리를 배운다. 계집아이는 9세가 되면 학급은 남녀로 구분이 되고, 여자가 걸어가야 할 길로서 ‘자중에 자중을 거듭하는’ 말을 계속 듣는다. 사내아이는 ‘자중’과 ‘세상에 대한 기리’를 배우면서 10살 무렵부터는 ‘이름에 대한 기리’를 배운다. 6년제 국민학교를 마친 후 학업을 계속하는 소년(인구의 약 15%)는 차츰 이름에 대한 기리를 발휘한다.
중학생의 상급생은 하급생을 여러가지 방법으로 괴롭힌다. 중학교를 진학하지 않은 소년은 군대교육에서 그와 같은 경험을 한다. 근대 일본의 중학교나 군대에서 볼 수 있는 상급생의 하급생에 대한 학대는 조소와 모욕에 관한 옛날부터 일본에 내려오는 습관에 기인한다.
여자는 ‘이름에 대한 기리’의 법도를 배우지 않으며, 사내아이처럼 중학교나 군대교육이라는 근대적인 경험을 하지 않는다. 철이 든 시기부터 그녀들은 어떤 일에 있어서도 사내아이가 우선이며, 사내아이에게는 계집아이에게 부여되지 않는 보살핌과 선물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여자들은 새로운 헤어 스타일로 머리를 땋고 좋아한다. 여자아이는 갖가지 구속에 따르지 않으면 안 되지만, 그 의무를 이행하는 책임은 바로 여자아이 자신에게 있는 것이지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부모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다. 가정 분위기와 부모의 부드로우면서 강인한 기대, 그리고 반복되는 습관에 의한다는 것이다.
남자는 결혼 후 공공연히 밖에서 성적 쾌락에 빠지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조금도 아내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결혼 생활의 안정에 위협을 하지 않는다. 아내는 이와 동등한 특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녀의 의무는 남편에게 정숙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자도 남편 이외의 남자와 정을 통할 수 있지만 비교적 소수에 불과하다. 여자는 남편이 주는 성적만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남편이 다른 여자에 빠져서 조금도 자기를 돌봐 주지 않을 때는 아내는 일본인이 일반적으로 용인하고 있는 자위행위의 습관에 호소할 때가 있다. 그리하여 밑으로 농촌에서부터 위로는 고귀한 사람들의 가정에 이르기까지 부인은 이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전통적인 도구를 비장하고 있다. 그리고 시골에서는 아내는 아이를 낳은 뒤라면 상당히 분방한 에로틱한 언동을 하는 것이 허용된다. 이와 같이 일본의 여성은 성적인 사항에 관해서 어떤 종류의 자유가 인정된다. 출신이 천하면 천할수록 더욱 많은 자유가 인정된다.
남자 친구와 함께 특히 게이샤를 옆에 앉히고 술을 마시는 것이 일본 남자가 가장 좋아하는 즐거움이다. 일본인은 술을 취하는 것을 즐긴다. 그리고 술을 마시고 주정을 부려서는 안된다는 법도도 없다. 그들은 두세 잔의 사케(정종)를 마시고 딱딱한 자세를 풀어 편안히 앉는다. 그리고 서로 기대어 아주 친근하게 구는 것을 좋아한다. 술에 취해도 소수의 상종하기 힘든 인간은 시비를 걸어 올지 모르지만 대개는 난폭한 행동을 하거나 싸움을 거는 일은 좀처럼 없다. 음주와 같은 자유로운 영역을 제외하고는 사람은 절대로 기대어 어긋난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태어나서 유년기까지 자유롭게 자라다가 예닐곱 살이 지나면서 차츰 주의 깊은 행동과 부끄러움을 아는 책임이 부과되는데, 만일 그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가족으로부터 배척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는 가장 강력한 강제성이 되는 것이다. 보상은 세상 사람들에게 승인을 받고 받아 들여진다는 것이고, 벌은 세상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다. 가장 빠른 시기에 형성되는 측면은 부끄러움 없는 자아이다.
거울은 일본인은 소지품이며, 예배의 대상으로서 모셔져 있다. 일본인은 거울에서 자신의 ‘부끄러움 없는 자아’를 보고자 하는 것이다. 특권적인 유아기에서 구속적인 장년기로 넘어가지만 그들은 유아기에서 누렸던 특권을 박탈된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들 자신은 자기를 희생시키고 있다고 생각지 않는 것이다. 주나 고, 기리의 부채를 갚기 위해서 자진해서 죽는 것이라고, 혹은 희생이 아니고 이렇게 스스로 죽음으로서 자기가 원하는 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만일 그렇지 않는다면 그것은 개죽음이 된다. 개죽음이란 그들에게 있어서는 가치 없는 죽음이라는 의미이다.
어느 일본인은 다음과 같이 일본인을 표현한다.
<옷칠은 몇 년을 걸쳐 덧칠하면 고가품이 된다. 일본인을 깍아서 칠을 벗기면 해적이 나타난다. 그러나 잊어서는 안될 것은 일본에서 옷칠은 값비싼 제작품으로서 수공업의 보조 수단이라는 것이다. 옷칠에는 속임수가 조금도 없다. 흠을 감추기 위한 덧칠이 아니다. 그것은 적어도 ‘미화된 나무결’과 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일본 남성은 자유의 유아기와 구속의 청년기라는 이원성을 가지고 있다. 어른이 된 후, 연애에 빠졌는가 하면 가족의견에 복종하고, 겁이 많기도 하면서 저돌적이고, 계층제도의 복종 요구에서 순종하면서 때로 위로부터 통제에 쉽게 따르지 않으려 하며, 은근하면서 때로는 오만 불손하다. 군대에서 광신적인 훈련에 복종하지만 그러면서 순종하지 않는다. 그들은 열렬한 보수주의자이지만 그러면서 중국의 습관이나 서구의 학문 등 새로운 양식에 마을을 쏠린다.
일본인은 옛부터 천진한 즐거움, 벛꽃이나 달, 국화, 첫눈을 바라본다든지, 정원을 가꾸다든지, 꽃꽃이, 차를 탐닉하든지, 등등을 즐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즐거움을 즐기는 것은 깊은 불안감과 반항심을 품고 있는 행동이 아니다.
일본인은 스스로에게 많은 것을 요구한다. 세상사람 일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의 개인적 요구를 버린다. 부끄러움을 알고 한없이 신중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이야 말로 자기 가정에, 자기 마을에, 또한 자기 나라에 명예를 가져오는 사람이다. 그것은 일본을 동양의 지도자로 만들며, 세계의 일대 강국으로 만드는 그러한 고상한 대망으로 나타난다.
이와 같은 긴장은 개인에게는 무거운 부담이다. 실패하지 않도록, 누구로부터 자신이 행하는 바가 업신여겨지지 않도록 주의한다. 때로는 참고 참았던 울분을 폭발시켜 극도로 공격적인 행동을 취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한 공격적인 태도는 모욕 당했거나 비방당했다고 인정된 때이다. 그때 그들의 위험한 자아는 만일 가능하다면 그 비방자에게, 그렇지 않으면 자기 자신을 향해 폭발한다.
일본인은 그들의 생활양식 때문에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여 왔다. 그들은 미국인이 호흡하는 공기와 같이 매우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단순한 자유를 스스로 거부해 왔다. 이제 일본은 패전이래 민주화로 향하고 있다. 일본인도 새로운 시대를 맞아 옛날처럼 개인의 자제의 의무를 요구하지 않는 생활양식을 수립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국화는 철사고리를 떼어 버리고 그처럼 철저히 손질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답게 피어 자랑스러울 수 있다. 그들은 과도기에 오랜 전통적인 덕에 의지하여 평형을 잃지 않고 무사히 거센 파도를 넘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신체와 칼을 동일시 한다. 칼은 공격의 상징이 아니라 자기 행위에 책임을 지는 상징이다.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시대에 있어서 이 덕은 가장 훌륭한 평형의 역활을 할 것이다. 칼은 보다 자유롭고 보다 평화로운 세계에 있어서 그들이 보존할 수 있는 상징이다.
국화와 칼 / 13 패전 후의 일본
전승국 미국은 고민했다. 일본의 천황을 포함한 기존 정부를 이용할 것인가, 아니면 타파해야 하는가? 이탈리아, 독일에서 사용된 방식은 전투부대의 필수요건으로 각지에 연합군 정부 본부를 설치하여 지방 행정권을 연합군 행정관의 수중에 장악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방식은 일본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일본 국민은 자국의 행정 및 재건의 책임을 지고, 그리고 일본국 정부의 기구와 천황을 포함한 여러 기관을 통하여 그 권력을 행사하도록 하였다.
미국은 일본인이 불복종 태도를 보일 것이며, 호시탐탐 복수할 기회를 엿볼 것이고, 일체의 평화 계획을 방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가지고 있었다. 강화 조약을 엄격히 할 것인가, 관대히 할 것인가, 끊임없는 논의를 되풀이 하였다. 문제는 엄격이나 관대가 아니고, 낡고 위험한 침략적 성격의 틀을 타파하고 새로운 목표를 세우는 데 꼭 알맞는 적당한 양의 엄격함을 구사하는 것이다. 어떤 수단은 그 국민의 성격이나 그 나라의 전통적 사회 질서에 의해 정해진다. 일본인은 전통적인 덕을 기준해 볼 때 사리나 부정에 대하여 반항하기는 하나 결코 혁명가는 되지 않는다. 일본인에게 스스로의 손으로 자기 나라를 재건하도록 요구 제시하였던 것이다.
일본인은 어떠한 일정한 행동방침을 취해 목표 달성이 불가능해지면 잘못을 범했다고 판단한다. 실패로 끝나면 졌다고 주장하면서 물러난다. 언제까지나 집요하게 패배했다는 주장을 고수하는 성질이 아니다. 일본이 평화 국가로 출발함에 있어서 참된 장점은 어떤 행동 방침에 있어 그것은 실패로 끝났다 라고 말하고, 그 뒤로부터는 다른 방향을 향해 노력한다는 점이다.
일본이 러시아와 전쟁에서 승리하였을 때 일본은 러시아가 모욕을 느끼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를 하였다. 일본이 미국을 상대로 선전 포고를 한 것은, 일본인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미국이 일본을 깔보는 것, 일본을 배설물로 취급한다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욕이 개재 되었는 것이다.
맥아더 장구의 점령정책은 모욕을 주는 일을 피하고 단지 일본인의 눈에 당연한 결과로 비춰지는 일만 이행하도록 한다는 태도를 견지했다. 이것은 효과적이었다. 그는 적어도 일본인에게 굴욕을 주지는 않았던 것이다. 일본인은 모욕을 당한다는 것과 항복 조건에 따라 군비를 빼앗기고 더욱 가혹한 배상의무를 담당한다는 내용을 포함한 당연한 결과, 그 두 영역을 확실히 구별하였기 때문이다.
패전 후 맥아더 장군이 천황을 방문한 것이 아니라, 먼저 천황 쪽에서 맥아더 장군을 방문했다. 맥아더 장군이 천황에게 신성을 부인하라고 요청하자 거절했다. 천황 입장에서, 처음부터 가지고 있지도 않은 신성을 포기하라는 것은 난처하다는 것이었다. 서구인들은 아직도 천황이 신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일본의 국제적 평판이 좋지 않다고 설명했다. 천황은 신성 부인의 성명를 낼 것을 승락했다.
많은 일본인은 그들이 지금 이렇게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자기 생활 상태를 개선할 수 있게 된 것은 일본이 이번 전쟁의 결과로서 무언가 얻은 증거라고 생각한다. 일본 옛날 농민 파업의 탄원은 항상 그들이 물던 세금과 부역이 생산에 지장이 되었다는 데 있다. 현제 일본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파업 또한 그렇다. 그래서 파업은 생산 속도를 둔화시키지 않는다.
지금 일본인은 귀환 군인이나 입대자에게는 냉대하다. 또한 명예에 대한 기리를 허용하는 폭력이나 비밀 결사대를 억제하고 있다. 일본은 국민이 남녀 할 것 없이 모두 각기 자기 자신의 생활을 누리며 자기 자신의 양심을 신뢰하도록 장려될 것이다. 일본인은 누구나 부끄러움(하지, 치욕)의 역활에 의문을 품고 있다는 것, 그리하여 그들이 국민 가운데에 새로운 자유가, 즉 세상의 비난과 추방을 두려워하는 공포로부터의 자유가 자라나기를 바라고 있다.
일본인은 침략 전쟁을 하나의 오류 및 실패한 주장으로 간주함으로써 사회적 변혁을 향한 최초의 큰 걸음을 내딛고 있다. 현재 일본인은 군국주의를 실패로 끝난 한줄기의 광명으로 여기고 있다. 그들은 만약 군국주의가 다른 나라에서도 실패한 것인가를 알기 위해서 다른 나라의 동정을 살피리라. 그렇다고 판단이 되면, 일본은 제국주의적 침략 기도는 결코 명예에 이르는 길이 아니라는 교훈을 얼마나 뼈져리게 체득하였는가를 증명할 것이다.
<일본 일본인, 그들은 누구인가? “국화와 칼”을 읽고>
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 Patterns of Japanese Culture (Houghton Mifflin Company, 1946)의 한글 번역 책을 읽고 요약 정리한 것이며, 지은이는 Ruth Benedict(1887-1948, 인류학자)이다. 1944년 6월 미 국무부의 위촉으로 연구한 저서이다. 70여년이 지난, 2019년 8월에 이 책을 읽었다. 1946년에 발행된 책으로 1946년을 기점으로 하여 읽고 이해함이 맞다는 생각이다. Andr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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