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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일본인, 그들은 누구인가? - “국화와 칼”을 읽고

Hi Yeon 2019. 8. 20. 10:02



 

일본 일본인, 그들은 누구인가? - “국화와 칼을 읽고

 

원제 : 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 Patterns of Japanese Culture (Houghton Mifflin Company, 1946), Ruth Benedict(1887-1948) 인류학자, 1944 6월 미 국무부의 위촉으로 연구한 저서이다.

 

상대를 모르고 나를 알면, 한 번 이기고 한 번 진다.’ 최소한 나를 알면 이길 확률은 50%는 된다는 것이다. 나를 아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며, 또한 어렵다. 승리는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를 알고 상대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고 했다. 상대를 아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나를 아는 것은 선택이고, 상대를 아는 것은 큰 노고이다 라는 생각이 든다.

 

세계는 글로벌 경제 시스템이다. 열강 사이에 끼인 동아시아의 작은 반도 국가인 한국은 세계를 누비며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수입 수출의 경제인 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뿐만 아니라, 나라의 정체성도 필요해 보인다. 경제 개발 시기에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 보였던 것이, 이제는 그런 것이 큰 문제로 떠 오른다.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총을 든 싸움은 아니지만 우리는 항상 모든 면에서 경쟁을 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는 치열한 경쟁이기도 하지만, 또한 상호 협력 관계이다. 무작정 달리기 보다 상대를 알고 달려야 제대로 협력도 하고 경쟁도 할 수 있다.

 

150년전 메이지 유신(1868)을 단행한 일본은 근대화의 길로 나섰다. 자기의 전통을 기본으로 하고 서양의 기술과 이념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그리고 서양 열강과 대등한 위치에 섰다. 물론 미국과 전쟁에 패하였지만 군국주의에서 민주주의 체재로 변경하면서 다시 세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했다. 74년전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한국도 역시 민주주의 체제로 경제발전을 추구하여 아시아의 신흥대국이 되었다. 그러나 36년간 일제 시대의 악몽에서 아직까지 벗어나지 못한 한국은 지금도 스스로 남 탓만 하면서 어린아이 같이 응석을 부리고 있다. 피해망상 정신병자의 히스테리이다.

 

일본은 스스로 유신을 달성했고 스스로 전쟁을 일으키고 실패하였지만 다시 스스로 경제대국으로 달리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스스로 유신하지 못했고 스스로 독립하지도 못했다. 다행이 스스로 경제 발전을 만들었지만 도중에 우리는 허우적거리고 있다. 공산주의, 중국 사대주의, 당파에 찌들린 옛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신경질적이고 무조건적인 반일을 외치며 정신병자처럼 투정과 남 탓만 하고 있다. 이러한 반일은 우리의 생활과 정신 속에서 깊숙히 맴돌고 있다. 무슨 일이든 반일로 사람을 매장시키고, 반일로 여론을 만들고, 반일로 사람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반일로 도덕의 기준을 만든다.    

 

우리는, 우리 자신 한국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아마도 우리 역사라는 것이 일본 제국주의의 피해 망상에 따른 서술일 것이다. 우리의 정신은 일본 제국주의의 피해 망상에 사로잡힌 의식일 것이다. 이 처럼 우리는, 우리 자신도 잘 모르고 있다. 그럼 국제화 시대에 우리는 상대 국가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글세다. 모든 것을 또 다른 피해 의식이라는 막을 덮어쓰고 그들을 감정으로만 바라보고 있지 않을까? 제대로 연구나 해 보았는가? 제대로 공부라도 해 보았는가? 가난하였던 나라에서 탈피하고자 열심히 일하느라 그럴 시간이 없었으리라. 그럼, 이제라도 피해의식과 열등감에서 벗어나서 상대를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짚신창 다 닳아버린 유교의 고집성과 폐쇄성이 여전히 우리의 눈과 마음을 털어 막고 있다.

 

요즈음 막무가내식 어린아이의 투정같은 반일 감정이 전국민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지금의 Groupthink은 우리의 피해 의식과 열등감이라는 정신병을 더 악화시킬 것이다.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고 있을까? 그 답은 우리 자신이다. 그러면, “우리는 왜?” 여기서 나는, 우리를 그렇게 미치게 만드는, “일본 일본인, 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라는 물음을 만들고 상대를 알아보고자 했다. ‘우리는 왜?’라는 물음에 정확한 답을 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소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어럼푸시 알 수는 있을 것이다.

 

국화와 칼은 인류학 학자인 루쓰 베네딕트가 미국 정부의 위촉으로 연구한 자료이다. 그녀는 일본을 직접 가보지 않고 일본을 연구했다. 보는 것은 편견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그녀의 고집이었다. 미국은 2차 대전을 이끌어가면서 적국인 일본을 알고 이해해야만 이길 수 있고, 또한  전후 처리도 성공적일 것이다. 그것이 미국을 위하고 일본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으리라. 그런 생각에서, 어떻게 하면 일본을 제대로 알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서 이 책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아주 객관적이다, 한국인으로서 공부해 볼만하다 라고 판단한다. 또한 나를 알고 상대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를 제대로 실천한 미국이라는 나라는 정말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연구 자료는 매우 힘든 시간과 노고가 필요하지만 읽기는 매우 쉽다. 그래도 하나의 선택이다. 읽어 보아야 선택이 되는 것이고 미래가 있는 것이다. 나는 아주 정독하면서 그 알맹이만을 추출하여 다시 기록해 보았다. 일본은 미국과 함께 자유, 민주, 복지를 이루면서 국제 평화를 선도할 것이다. 우리도 그런 물결에 적극 동참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이 책을 읽고 생각나는 나의 언어이다.

 

이 책을 읽고 느낀 점이다. 일본의 신분제도는 매우 특별했다. 각각의 계급에서는 자기 할 일을 하면 권한이 보장됐다. 각각의 계층에서 각자가 자기 이름을 걸고 최선을 다하였던 것이다. 무사 계급이 중심이 되어 일본 정신이 뿌리를 내렸다. 당연 강병(강한 나라)한 나라인 것이다. 상인 농민, 공민, 등등 지배층 계급에 의한 천대나 멸시가 없었다. 당연 상업과 기술이 발달하였다. 천민이라 하더라도 자기에게 주어진 소임만 한다면 권리를 보장받았다. 당연 생산성이 높았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계급간의 이동이 자유로웠다는 것이다. 당연 계급간의 알력은 없었다. 훨씬 경제적으로 풍부하고, 훨씬 안정적이고 민주적이며, 훨씬 역동적임을 알 수가 있다. 그 바탕에 일찍 봉건주의가 발달하였음도 알 수가 있다. 조선과 비교해보면 너무나 많은 차이가 있었다.

 

<일본인 가장 즐기는 조그만한 육체적 쾌락의 하나는 온욕이다. “아무리 가난한 농부라도, 또 아무리 천한 하인일지라도,” 부유한 귀족과 조금도 다름없이 매일 저녁 뜨겁게 데운 탕에 몸을 담그는 것이 하나의 일과이다.> 이 예을 보면 일본인의 생활을 쉽게 상상할 수가 있다.

 

일본인은 이름을 더럽히는 것을 최고의 오명으로 여긴다. 주어진 임무는 이름을 걸고 책임을 다한다. 만약 결과가 잘못되었다면 흔쾌히 Open Mind로 상대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한다. 나라가 얼마나 역동적이고 진취적인지를 잘 보여준다.

 

1946년 출판된 이 책에서 연구자의 분석은 예리했다. 2019년 현재 일본을 보고 있노라면 74년 전 그녀의 판단은 정말 정확했다는 생각이다. 지금 일본은, 74년 전에 미국이 예상했던 대로 또한 바랐던 대로, 자유, 민주, 복지국가로 가고 있다. 타의가 아닌 스스로 일본은 가고 있는 것이다. 침략을 버리고 평화라는 이름을 위하여.

 

일본인에 대한 표현이다.

 

<옷칠은 몇 년을 걸쳐 덧칠하면 고가품이 된다. 일본인을 깍아서 칠을 벗기면 해적이 나타난다. 그러나 잊어서는 안될 것은 일본에서 옷칠은 값비싼 제작품으로서 수공업의 보조 수단이라는 것이다. 옷칠에는 속임수가 조금도 없다. 흠을 감추기 위한 덧칠이 아니다. 그것은 적어도 미화된 나무결과 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