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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와 칼”, Ruth Benedict, 요약 정리>, 전중후의 전반부

Hi Yeon 2019. 8. 21. 11:30

<“국화와 칼”, Ruth Benedict, 요약 정리>, 전중후의 전반부

 

국화와 칼 / 1 일본

 

일본은 계층제도를 수립하기 위해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일본은 위로부터 아래까지 계층적으로 조직된 유일한 나라이며, 따라서 저마다의 알맞은 위치를 가져야 할 필요성을 가장 잘 이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천황은 정치적 실권이 없다. 그러나 천황은 일본으로부터 분리시킬 수 없는 존재이다. 천황이 없는 일본이란 생각할 수 없다. 일본의 상징이며 국민의 종교 생활의 중심이다. 천황은 초종교적인 대상이다. 천왕이 싸워라 하면, 죽창 하나 밖에 없어도 주저없이 싸우고, 천왕이 싸움을 정지하라고 하면 즉각 정지한다. 전쟁에 지더라도 천왕은 책임이 없다. 단지 천왕일 뿐이다. 천황에 대한 이러한 무조건 무제한의 충성은, 천왕 이외의 다른 모든 인물과 집단에게는 여러가지 비판이 가해진다는 사실과 현저한 대조를 이룬다. 설령 전쟁에 지더라도, 책임은 내각과 군이 지며, 천황에게는 책임이 없다. 봉건주의 700년 동안 내려온 천황에 대한 태도이다. 

 

국화와 칼 / 2 전쟁 중인 일본인

 

미국은 대국이고 군비도 월등하다. 군비의 싸움이 아니라 미국인의 물질에 대한 신앙과 일본인의 정신에 대한 신앙과의 싸움이다. 물질력은 반드시 지게 마련이다. 일본인 어느 누구도 일본의 목적을 전혀 규탄하지 않는다. 힘의 부족은 우리가 개의할 바가 아니다. 정신은 전부이며 영구 불멸이다. 물질적인 것도 필요하지만 그것은 2차적일 뿐이다. 이 정신에 대한 신뢰는 전쟁의 과정에서 문자 그대로 해석된다.

 

미국인들은 생활 전부를 끊임없이 도전해 오는 세계에 맞게 조정한다. 도전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반면 일본인들은 오히러 미리 계획되고 진로가 정해진 생활양식에서만 안심을 얻을 수 있으며, 예견치 못한 일에는 심각한 위협을 느낀다.

 

서양 군인은 최선의 노력을 다한 후에 중과부적이란 점을 알면 항복을 한다. 그들은 항복을 한 뒤에도 여전히 자기들을 명예로운 군인이라고 생각하며, 군인으로서도 국민으로서도 또 그들 자신의 가정에 있어서도 모욕을 받지 않는다. 그렇지만 일본인들은 사태를 전혀 다른 식으로 규정한다. 일본인에게 있어 명예란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것이다. 기절하여 포로가 된 경우조차도 그는 일본으로 돌아가면 얼굴을 들고 돌아다닐 수 없다고 여긴다. 그는 명예를 잃었다는 것이다. 항복의 치욕은 일본인의 의식 속에 깊이 박혀 있다. 무항복주의이다. 최후까지 싸우는 것이 명예이다. 아무런 공로도 세우지 못하고 죽는 것은 수치이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상대 국가의 군인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군도 일본식으로 최후까지 싸우리라 믿고 포로가 되면 부끄러움을 느낄 것으로 믿는다.

 

그런데 일본인의 행동은 어떤 하나의 행동 방침에 모든 것을 걸며, 만약 그것이 실패할 경우 다른 방침을 취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한번 포로가 되어 전향을 하게 되면 상대국에 최선을 다하여 진심으로 봉사한다.

 

국화와 칼 / 3 각자 알맞는 위치 갖기 (Take one’s proper station)

 

메이지 유신 1868년 정부 시정 방침은 대다수 사람들의 소망과는 전혀 상반된 것이었다. 그들은 개혁을 싫어했다. 이토록 철저하고 평판 나쁜 개혁을 단행한 정부는 도데체 누구인가? 봉건시대부터 육성시켜온 하층 사무라이 계급과 상인계급의 특수한 연합세력이었다. 즉 그들은 다이묘의 어용인으로서 또 가노(집안의 어른)으로서 정치적인 수완을 닦아, 광산업, 직물업, 판지 제조 등 번의 독점 사업을 경영해 온 사무리이들과, 사무라이 신분을 사서 사무라이 계급 속에 생산 기술의 지식을 보급시킨 상인들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임무를 결코 이데올로기적인 혁명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을 하나의 사업으로 취급했다. 그들이 머리 속에 그리고 있던 목표란 일본을 세계 열강 대열에 서게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우상 파괴자가 아니었다. 기존의 봉건제도의 좋은 점을 바탕 위에 서구의 합리적인 점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던 것이다. 19세기 전반 겨우 타이 정도의 약소국이었던 일본이, 어느 나라도 감히 시도하지 못한, 비범한 정치적 수완이 필요로 하는, 더군다나 놀라운 성공을 거둔 메이지 유신이라는 대사업을 계획하고 수행할 능력을 가진 많은 지도자를 배출한 것이다.

 

정치이든 종교이든 경제이든 상관없이 모든 활동분야에 있어서, 메이지의 정치가들은 국가와 국민 간의 알맞은 위치의 의무를 세밀히 규정했다. 여론에 따를 필요가 없는 위로부터 강력한 지배와 관리가 행해진 것은 물론이다. 국민이 선거한 사람, 의회, 의원, 중의원, 등은 결코 포함되지 않았다. 국민은 전혀 발언권을 가질 수 없었다

 

국화와 칼 / 4 메이지 유신

 

일본의 카스트로 제도

 

1 황실과 궁정 귀족 밑으로 네가지 계층(무사, 농민, 공인, 상인이 있다)

 

2 무사(사무라이) 영주에게 봉록을 받고 칼을 찰 수 있는 계급, 가난한 연금 생활자, 이들의 생활은 절약, 근검 생활의 유래가 되었다.

 

3 서민으로서

 

농민 (토지 소유권 가지며 수확에 대한 현물세(수확량의 40%)를 냄)

공인 (기술자, 공예가)

상인 (자금 축척과 신분 상승으로 일본의 큰 세력이 됨.)

 

1853년 미국과 통상 조약이 체결 될 때까지 일본은 신흥 상인의 재력에 의해 귀족 평민 모두 빚을 지고 있었다. 막부도 파산 지경이 되었고 농민들은 극도로 궁핍해졌다. 그 해결 방편으로 과거로 돌아가려는 부활의 외침이 있었으나, 일본이 선택한 것은 서양의 모범을 따르기로 하는 것이었다. 겨우 그로부터 50년 후에는 서구 여러 나라와 경쟁하게 되리라고는 실로 생각조차 못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러한 일이 그대로 일어났다. 일본의 그 고유한 장점을 이용하여 권력층도 일반 민중도 결코 요구하지 않는 바의 목표를 이루어 냈다. 1860대 서구인은 유리창 넘어 보는 것 같이 미래를 예견했다면 그래도 도저히 그것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뒤떨어지고 계층제도에 억매였던 일본의 민중은 급전회하여 새로운 진로로 행진하였고 그리고 그 진로를 유지했다.

 

4 천민

 

천민 계급이라고 해도 특수한 직업을 독점할 권리를 보증받았고, 각 계급에 가해지는 제한은 컸지만 그 대신 질서와 보증이 있었다. 계급간의 유연성이 있었다. 계급간 결혼은 가능했다. 데일사위 제도, 혼인 등으로 신분을 상승 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계층간의 투쟁은 없었다.

 

일본인들은 상세한 행동의 지도(Map)을 좋아하고 신뢰한다. 사람이 규칙을 따르는 한 반드시 보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부당한 침해에 대한 항의를 인정했다는 것이다.

 

일본 헌법(1889)은 서구 여러나라의 각종 헌법을 비판적으로 연구한 후, 각하들의 손에 의해 세심한 심사 숙고 끝에 작성되었다. 백성의 간섭과 여론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서 신성불가침의 장소인 궁내성의 한 부서에서 행해졌다. 이 헌법의 입안자 이토 히로부미(서양 유학을 하였음)로 일본의 전통조직, 계층제를 소중히 지켜나가는 기초에서 개혁을 받아들였다. 그는 서양학자, Herbert Spencer(1820-1902, 영국 철학자)의 의견을 수렴하기도 했다.

 

이와같이 일본인들은 끊임없이 계층제도를 고려하면서 그 사회의 질서를 다듬어 나갔다. 정치, 종교, 군대, 산업 등 모든 분야에서 각각의 영역이 신중하게 계층으로 나뉘어져 있어 윗사람도 아랫사람도 자기들의 특권을 넘어서면 처벌된다. 지위가 높고 낮음과 관계없이 계층에서는 알맞은 위치가 보장되어 일본인들은 불만없이 살아간다. 계층적 특권에 관련된 경우에는 일본인들은 어떠한 결과가 될지라도 그 결과를 감수하는 경향이 있다. 특권의 경계선을 넘어서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계층간 각각의 특권이 보장되기에 그들은 안전하다고도 생각한다. 이것이 일본인의 인생에 대한 판단의 특징을 이루는 것이다. 이것은 평등과 자유라는 신뢰가 미국인의 생활양식의 특징인 것과 같다. 일본인들은 외국을 바라보는 관점이기도 하다. 일본은 그 계층 제도 속에 거대한 부가 차지하는 위치를 주어서 그것과 제휴했다. 그러나 그 부가 영역 밖에서 휙득된 경우에는 일본인은 그것에 통렬한 비난을 퍼붓는 것이다.

 

국화와 칼 / 5 과거와 세상에 빚을 진 사람

 

일본인들은 과거와 세상에 빚을 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최대 채무는 천황의 온(황은)이다. 일본에서 태어나 사는 것은 무한한 은혜라는 것이다. 그 다음은 부모로부터 받은 온이다. 일본인은 또한 교사와 주인에 대해서도 특수한 온을 느낀다. 은혜는 살아가면서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점점 늘어난다. 사람은 온의 만분의 일도 갚을 수 없다고 한다. 일본인은 우연히 다른 사람으로부터 온을 받음으로써 보답의 빚을 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비교적 인연이 먼 사람으로부터 뜻밖의 은혜를 입는다는 것은 일본인에게 가장 큰 불쾌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기노도쿠 Thank You, 때로는 I am sorry, 때로는 I feel like a hell라 번역되지만 온을 받음으로써 느끼는 마음이 편치 않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아리가토’(상점에서 사용하는 감사하다는 뜻, 직역은 이것은 쉽지 않는 일입니다)도 마찬가지로 은혜를 받아 곤란하다는 심정을 표현한 것이다. 스미마센은 직역으로는 이건 끝나지 않았습니다라는 뜻으로 즉 나는 당신에게 온을 입었습니다.’라는 것이다.

 

거리를 거닐다 바람이 불어 날아간 모자를 누군가가 주워 준 경우, 이 사람은 지금 나에게 이렇게 온을 베풀고 있지만 나는 이제까지 한 번도 이 사람을 만난 일이 없다. 나는 이 사람에게 온을 제공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이런 은혜를 받아서 뒤가 꿀리긴 하지만 사죄하면 약간은 마음이 편해진다. 이런 마음으로 일본인은 고맙다고 인사한다.

 

한층 더 강한 감사의 말은 가카지케나이로서 이 말은 모욕(욕될 욕, )이다. 감사와 모욕 두가지의 의미를 가진다. 각별한 은혜에 의하여 욕을 당하고 모욕을 받았다는, 까닭은 그런 은혜를 받을 가치가 없기에, 사실을 의미한다. 그런데 바로 이 치욕, 하지()라는 것은 일본인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다. 즉 나는 모욕을 당했다는 뜻의 그 말은 지금도 옛날풍의 상인이 손님에게 예의를 나타낼 때 쓰고 있다.

 

사랑, 친절, 너그러운 마음 등은 미국에서는 어떤 부수적인 대가가 요구되지 않음으로 해서 한층 존중되지만, 일본에서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국화와 칼 / 6 만분의 일은 은혜 갚음

 

온이란 갚아야 할 부채이기 때문에 갚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의 채무()은 덕행이 아니다. 변제가 덕행이다. 덕은 사람이 적극적으로 보답 행위에 몸을 바칠 때 시작된다. 모든 사람은 태어남과 동시에 자동적으로 큰 채무를 진다는 관념을 일본인은 가지고 있다. 일본인의 이러한 덕행은 미국에서 재산상의 채무관계 이행과 비슷하다. 

 

(일본인들의 의무와 반대의무에 대한 요약)

 

(, ), 수동적으로 입는 의무

 

고온 (皇恩) : 천황으로부터 받은 온

오야 노 온 : 양친으로부터 받은 온

누시 노 온 : 주군으로부터 받은 온

시 노 온 : 스승으로부터 받은 온

생에 중에 접촉에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는 온

 

기무 (義務), 아무리 노력해도 다 갚을 수 없고 시간적으로 무한한 의무

(, )= 천황, 법률, 일본국에 대한 의무

(, )=양친, 조상, 자손

님무(任務, 임무)=자기 일에 대한 임무

 

기리 (義理), 받은 만큼만 갚으면 되고 시간적으로 유한한 의리

세상에 대한 기리 = 주군에 대한 의무, 근친에 대한 의무, 타인에 대한 의무, 먼 친척에 대한 의무

이름(명예)에 대한 기리 = 오명을 씻는 의무 (보복, 복수, 이 갚음은 불법적이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자신의 실패, 무지를 인정치 않는 의무

예절을 다하는 의무

 

중국으로부터 도입된 진(, 인을 일본에서는 진으로 발음)은 일본의 윤리 체계에서 추방된 덕이고, 단지 그 변형으로 진기(仁義)를 행한다는 것이다. 그 뜻은 법의 범위 밖에서 행해지는 것을 말한다. 진기는 공갈이나 폭력단의 세계에서 성행하는 도적간의 의리를 가르키는 것이다. 중국의 체계에서 가장 중요한 덕을 완전히 달리 해석하여 그 지위를 저하시키고 일본화 하였다. 효는 천황에 대한 의무와 충돌할 경우에만 폐기할 수 있는 것이다. 천황은 신성하며 침범될 수 없는존재이기 때문이다.

 

메이저 초기의 정치가는 서양 여러 나라를 시찰과 공부를 한 후, 이들 서양나라에서는 모든 역사가 지배자와 인민사이의 투쟁에 의해 형성되어 있어, 이것은 일본 정신에 부합되지 않는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헌법에 천황은 신성하며 침범될 수 없는 존재로서, 국무 대신의 어떠한 행위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내용을 넣었다. 천황은 국가의 원수가 아니라 일본 국민 통합의 최고 상징이며 또한 정신적인 영역의 통일이었다. 실권은 쇼군이 담당하였지만 그 실권자는 변동될 수 있지만, 일본 정신적 영역의 통일은 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의무이고 기무였다. 중요한 역활을 한 것은 실권이 있든 없든 일본 역사의 모든 시기에 걸쳐 유일한 황실이 계속하여 황위에 등극하였다는 사실이다. 서양의 God과 다른 가미(, )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인 그들 계층 제도의 정점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천황에게 주()를 바치는 것에 아무런 의문을 품지 않았다.

 

효는 충을 앞설 수 없다, 더구나 임무도 당연하다. 일본의 효는 현재 살고 있는 사람에 한정된다. 자신이 받은 사랑과 보호를 자식에게 베풂으로써 조상의 은혜()를 갚는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의무와 부채의 갚음이며 연장자는 중요한 책임을 맡게 되고 아랫사람에게 필요한 희생을 반드시 치르도록 하는 것이다. 연장자의 결정에 복종치 않으면 기무를 태만히 한 것이 된다.

 

일본인의 입장에서는 법률에 복종하는 것은 그들의 최고 의무, 즉 고온(황은)을 갚는 일이다. 국민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느낌의 법규에 대하여 서양에서는 개인적 자유의 간섭이라고 할 때, 일본인은 그런 이유로 미국인은 준법정신이 결여된 국민이라고 판단한다. 서양의 관점에서 일본인은 민주주의의 관념이 결여된 굴종적인 국민이라 판단한다.

 

서양에서는 그것은 자신의 일은 자신이 처리하는 태도에 의존하고, 일본에서는 은혜를 갚음을 한다는 것에 의존하는 것이다. 이 두가지 태도에는 각각의 난점을 가지고 있다. 서양의 난점은 국가의 전체에 이익이 되는 경우에도 국민의 승인을 얻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고, 반면 일본은 무엇이라 하더라도 어떤 한 사람의 생애 전부가 그 그림자에 의해 뒤덮힌다는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상황이 1945 8 14일 일본이 항복했을 때 나타났다. 서양에서는 일본이 전멸할 때까지 항거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것이 일본의 기무였다. 그러나 천황이 입을 열자 전쟁은 끝났던 것이다. ‘천황의 마음을 편안케해 드리기 위해서 죽창으로라도 싸워서 몸을 바칠려고 하였지만 이제 천황의 마음을 편안케하기 위해서 평화의 길을 따랐다. 천황의 항복 목소리에 모든 총을 치워 버렸던 것이다. 이와 같은 태도에는 조금도 일본인에게는 불가사이한 점은 없다. 천황에 대한 은을 갚는 것은 최고 정점의 기무이기에, 천황이 가라고 하면 그냥 가고 천황이 서라면 그냥 서는 것이다.

 

국화와 칼 / 7 기리처럼 쓰라린 것은 없다

 

일본인이 잘 쓰는 말에 기리(義理)처럼 쓰라린 것은 없다는 말이 있다. 기리는 중국 유교나 불교에서 나온 것이 아닌 일본 특유의 개념이다. 기리를 고려에 넣지 않으면 일본인의 행동 방침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리는 두 개의 아주 다른 부류, 세상에 대한 기리(동배에게 온을 갚는 의무)와 이름에 대한 기리(명예 같은 것으로, 이름이나 명성이 어떤 비난에 의해 더럽혀지지 않도록 하는 의무)로 나누어진다.

 

주군이 가신에게 무엇인가 모욕을 주었을 때 가신은 자기의 봉직을 버리고, 또 적과 손을 잡는 일 조차 있었다. 충절은 주군에 대한 기리이고, 모욕에 대한 복수는 자기 명예에 대한 기리인 것이다. 기무는 태어나자마자 생기는 당연한 의무의 수행이며, 세상에 대한 기리는 계약 관계의 이행이라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이 기리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까닭을,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들로부터 기리를 모르는 인간이라고 불리고, 세상 사람 앞에서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기리의 갚음은 정확히 같은 양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만일 갚는 일이 기한보다 늦어지면 마치 이자가 느는 것처럼 커진다. 가능하면 언제나 노력이든 물건이든지 간에 서로간에 주고 받는 복잡한 관계를 기입한 기록이 만들어진다. 선물에 대해서 말하는 가장 심한 욕은, 증정하는 사람이 피라미 한마리를 도미 한 마리로 갚는다고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