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2017년 가을(9월), Graduate Program에 다니기 위하여 캐나다에 입국하였다. 내가 오랫동안 이민생활을 하였던 캐나다 동부 작은 도시 Fredericton으로 갔던 것이다. 3년전 이곳에서 대학에 다닐 때는 자동차도 있었고 내 집도 있었다. 이제는 모든 것이 없었다. 단칸 렌트방이 전부였다. 끼니는 주로 햄버그와 샌드위치였다. 눈 덮힌 캐나다의 동토는 외로운 나를 더욱 위축시켰고, 춥고 눈 덮힌 도로를 걸어서 학교를 다니고 대충 끼니를 때우니 많이 힘들었다. 그래도 작품활동을 한다는 것과 앞으로 캐나다에서 예술가가 된다는 꿈이 나를 버티게 해 주었다.
겨울학기 막바지인 11월 22일이었다. 겨울 눈이 계속 내리더니 이 날은 눈이 내린 후 차디찬 비가 내렸다. 학교에서 오후 5시까지 일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저녁을 해결하고 집으로 향해 비오는 다운타운을 걸었다. 물론 겨울 잠바에 겨울 모자를 쓰고 가방을 메었다. 춥고 어둡고 비까지 내리니 주변 시야가 좋지 않았다. 사거리에서 길을 건너야 했다. 초록빛 보행자 신호가 들어오자 길을 건넜다. 도로 중앙부분을 넘자마자 내 몸이 공중으로 뜨는 것을 느꼈다. 좌회전하려는 버스가 보행자 신호등 아래에서 길을 건너던 나를 보지 못했던 것이다. 다행이 버스 운전자가 나를 치기 바로 전 발견하고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러나 버스는 완전히 멈추지 못하고 범퍼로 나를 치고 말았던 것이다. 때는 저녁 5시 55분이었다.
아스팔트에 뒹굴고 나서 내 얼굴은 차갑고 축축한 아스팔트에 오랫동안 박고 있었다. 사람들이 나를 꼼짝도 못하게 내 몸을 억누루고 있었다. 잃었던 정신을 차리니 다친 부분의 고통도 컸지만 차가운 빗물이 흐르는 아스팔트에 내 볼과 눈을 대고 있는 고통이 더 컸다. 내 사지를 움직을 수 있는지 알 수도 없었다. 정신을 좀 드는 순간, 우선 나는 내 발가락과 손가락을 몰래 움직여 보았다. 가능했다.
“아 살긴 살았는 것 같은 데… 망할 놈의 세상, 내가 병신이 되는구나”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계속 흘렸다. 응급요원이 도착했다. 그들은 내 몸에서 옷가지 등을 모두 제거하기 시작했다. 나는 벌거숭이가 된 후 들것에 실려 구급차에 옮겨졌다. 차디찬 겨울비에 바람마져 을신스럽게 불었다. 내 몸은 추위에 덜덜 떨기 시작했다. 달리는 차 안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물었다. 다 귀찮았다. 나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병원에서 진통제가 제공되고 온 몸의 X-Ray 검사가 시작 되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지났다. 담당의사가 왔다.
“No Broken, You can go home.”
더 이상 병원에 있을 수가 없었다. 집에 가야 했다. 알 몸에 환자복을 입은 상태이었다. 환자복을 벗으니 입을 옷이 없었다. 간호원이 구해 온 티와 청바지를 입고 그 위에 병원 침대시트를 걸쳤다. 그리고 내 찟어진 옷가지가 든 비닐 백을 들고 택시에 올랐다. 한칸 랜트방에 들어서자 마자 나는 침대에 쓰려졌다. 내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은 머리를 침대에 쳐박는 것 밖에 없었다.
다음 날이었다. 사고 이후 먹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는 배고픔과 외로움, 그리고 사고로 인한 공포심에 시달려야 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사고 날이 목요일이고 그 다음날은 토요일이었다. 도움이 필요했다. 아는 곳은 학교 뿐이었다. 그런데 주말이라 연락을 할 수가 없었다. 월요일까지 계속 허기와 공포에 떨었다.
월요일에 내 몸을 찔찔 끌고 학교로 갔다. 허기를 좀 채우고 상황을 설명하였다. 학교에서도 특별히 해 줄 것은 없었다. 사고에 대하여 이리저리 알아주는 것 밖에 없었다. 절뚝거리며 푸드코드에 가서 요기를 했다. 좀 살 것 같았다. 배고픔도 해소가 되고 몸을 좀 욺직일 수 있으니 계속 학교에만 의존할 수 없었다. 다운타운에 있는 Clinic을 방문하였다. 그런데 그곳에서 Walk-in Clinic에 가보라 하면서 무료 택시 쿠폰을 쥐어 주었다. 내 꼬라지가 보기에도 안스러워 보였던 모양이었다. 택시를 타고 업타운에 있는 walk-in Clinic으로 갔다. 오후 3시였다. walk-in Clinic은 오후 5시부터 문을 여는데 벌써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4시간을 기다려 의사를 만났다. 받은 것은 진통제 처방과 물리치료 처방전이 전부였다.
일단 내 돈을 내면서 물리치료를 받았다. 한번 받는데 80불 정도였다. 그리고 나의 Family Doctor에게 전화를 하여 예약을 하였다. 겨우 2주 후에 예약이 가능했다. 변호사를 알아 보았다. 온라인으로 검색해 보니 이 도시에서는 자동차사고 전문변호사는 3군데 있었다. 아무런 인맥이나 관련도 없는 내가 그중 하나를 그냥 고르기란 어려웠다. 그러면서 며칠이 지났다. 학교를 쉬면서 렌트방에 머물렸다. 방에 머무는 것은 고통이었다. 먹고 마시고 것이 문제였고 그리고 혼자 하는 일 없이 멍하게 있으니 더 고통이었다. 온몸은 아프고 자꾸만 사고의 순간이 생각나니 미칠 것만 같았다. 세상을 탓하면서 나 자신을 놓을 것만 같았다. 생각을 바꾸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학교로 갔다. 수업에도 참가하고 작업도 시작했다. 몸이 아파 고통스러웠지만 나 자신을 잊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났다. 별 소식이 없었던 둘째 녀석에게 마침 카톡이 왔다. 이런저런 말을 주고 받다가 내 사고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 둘째가 초등학생일 때 우리는 캐나다로 이민을 왔다. 내는 테니스 메니아였다. 둘째와 함께 자주 테니스를 치려 테니스 코트에 갔었다. 이 도시는 캐나다 NB주 수도이다. 많은 공무원이 사니 테니스 메니아도 많았다. 테니스장에서 둘째가 어릴 때부터 주립대 CEO 여자분을 잘 알면서 지냈다. 나도 그녀와 몇 번 테니스를 쳤다. 그녀는 정말 테니스 메니아였고 그의 남편도 그랬다. 그의 남편은 변호사였다. 부부는 이 지역의 유명인사였다. 둘째가 그분에게 가보라고 했다. 이리저리 연락을 하니 그 여자분이 직접 나를 데리고 변호사와 같이 이야기해 주겠노라고 하였다. 며칠 후 그녀와 함께 변호사를 만났다. 3명의 변호사와 함께 일하는 그는 나이가 나와 비슷하였고 알고 보니 테니스장에서 가끔 만났던 분이었다. 그리고 보니 그의 이름은 내 이름(Andrew)과 같았다. 그는 보상에 관하여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분명 자동차 사고 보상에 많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보상은 Section A, Section B 두 종류가 있는데, B는 사고 부상과 손실에 대한 것이고 A는 향후 피해에 대한 보상이었다. 본인의 귀책사유가 있다면 A는 해당없다고 하였다. 변호사 수임료는 치료비와 손실비를 제외한 보상금의 30%이고 경비는 별도였다. 이것저것 다 통틀어 넣어면 아마도 총 보상금의 50%정도까지 될 것 같았다.
변호사 문제를 해결하고는 나는 사고 보름 후인 12월 15일 긴급으로 한국으로 왔다. 정형외과에서 물리치료를 받으면서 다시 검사를 의뢰하였다. 목뼈 부분에 부종을 제외하고는 별 이상이 없었다. 그러나 자유자재로 못 움직이는 문제, 몸이 허약해 진 문제, 그리고 정신적인 문제는 심각하였다. 그것보다는 학업과 작업에만 열중하여야 하는 나의 상황에서 차동차 사고는 무엇보다 더 큰 재앙이었다. 하고자 하는 일이 중단되니 미칠 것만 같았다.
“미친 놈, 더러운 세상”
나는 시도 때도 없이 저절로 중얼거리게 되었다. 몸을 다쳤다고 가만히 쉬거나 소일하면서 지내는 것이 오히려 힘이 들었다.
나는 바로 캐나다로 다시 돌아왔다. 모든 것을 잊고 평소와 같이 생활하려고 하였다. 규칙적인 재활훈련과 나를 잊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사고 전보다 더 훈련과 창작작업에 몰입했다. 사고 기억을 디자인 구상으로 메꾸었고 일에 몰두함으로서 잡념을 없애 버렸다. 대학원을 마치는 여름까지 여러 전시회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 계획해 놓았던 작업을 하나하나 차질없이 계속 진행하였다. 세상과 하늘을 욕해 보아야 내 성질만 더러워질 것이다. 아니 그것은, , “너에게는 절대로 지지 않아” 하는 오기였다. Andr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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