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2017월 11월 22일)에 치인 후 나는 많이 변했다. 육체적으로 목과 팔 그리고 어깨가 아프다. 그래서 마음이 위축되고 일상 생활에서 자주 불편함을 느낀다. 한 달이 지난 지그까지 아직 보험사로부터 공식적으로 도움을 받은 적은 없다. 억울해진다. 그래서 나는 '아무런 죄도 없는데 이런 사고를 당했다'는 푸념을 자주 하게 된다. 그 뿐만 아니다. 도시와 자동차가 무서워지고, 특히 밤길이 무서워진다.
'다쳐서 손해를 보면 나만 손해이다. 내 것은 내가 챙겨야 하지' 하는 생각으로 가끔 안절부절하게 된다. 그래서 걸어도 조심해지고 차를 타도 조심해진다. 바보로 보일 정도로 주변을 두리번 거리게 된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면 가능한 안전한 쪽을 택하게 된다. 더 실망스러운 것은 버스에 치였다고 말하여도 듣는 사람들은 '아,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하고 별 댓꾸도 없다. 보기에는 멀쩡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속은 엉망인데 말이다. 디스크 환자가 다 그렇다. 이제야 '야야, 허리 뼈가 녹는 듯하다'는 부모님의 고통스러운 말씀을 진정 알 듯하다.
재물은 나눌 수 있고 행복도 나눌 수 있다. 넉넉함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자람은 그럴 수 없다. 그중 고통은 특히 더 그렇다. 고통 중에 육체적인 고통은 나누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단지 관심과 염려 그리고 도움을 받아 본인 스스로 이겨 내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도 육체적인 고통은 여전하다. 순전히 본인이 감당해야 할 부분이다.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사고도 빈번하다. 바다와 육지 그리고 도시에서의 사고들이 자주 뉴스를 장식한다. 특히 자동차 사고는 더 그렇다. 이런 현실을 따지고 보면, 내가 겪은 자동차 사고는 별 것이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해 보니 '아프다'라는 말은 한 번으로 충분했다. 더욱이 캐나다에서 생긴 일이니 고국에 갖다 붙일 일도 아니다. 아픔이야 본래 본인이 이겨내야 할 사항이다. 누구보다도 나는 그런 점을 잘 안다. 그래도 가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런 감정을 없애는 방법을 찾았다. "1초 만 늦었더라면 나는 병신이 되었거나, 아니면 이 세상에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산다는 생각으로 아픔을 말없이 혼자 이겨 내고자 한다. 그런데 부작용도 생긴다. 나도 사람인지라 '사고가 나면 나만 손해'라는 생각이 자꾸 들고 모든 면에서 움쳐려지고 조심하게 된다. 또한 나이가 들고 다쳐서 몸이 불편해지자 다시 한번 단순함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그래서 '일을 벌이지 않는 것이 최고'라는 생각에 단순함을 다시 실천해 보고자 한다. 그래야만 모든 시간과 노력이 전적으로 나를 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하여 어렵지만 더 많이 마음을 비워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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