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이민 생활을 할 때였다. 나는 매일 택시를 몰았다. 운전석에 앉아 보이는 차창 너머 세상은 매우 신기했다. 택시 운전 일이 힘이 들었지만 마음과 눈을 열었다. 더 많은 인생과 자연이 내 눈에 마구 들어왔다. 그냥 들어오는 세상이다. 담아보자 하고 머리에 마음에 쓸어 담았다. 그리고 고민하고 사색했다. 일을 마치고 대학교를 갈 때 혹은 커피 한잔을 하려 시내로 갈 때는 걸어서 다녔다. 그때는 주변에 펼쳐지는 인생과 자연이 슬로비디오를 켜듯 내 눈에 비쳤다.
택시를 몰면서 보는 눈과 길 위에 서서 보는 눈은 조금 달랐다. 자동차에서는 높은 곳에서 세상을 빠르게 훑어보는 눈이고 길 위에서 걸을 때는 낮은 곳에 임하여 세상을 가까이서 하나하나 보는 눈이었다. 차를 몰 때는 마치 내가 말을 몰 듯 편히 앉아서 눈 아래로 본다. 길이 내 눈 밑에 펼쳐지니 내가 세상을 발 밑에 두고 밟고 있는 듯하였다. 그때는 택시를 몰고 승객을 태웠다. 나를 낮추고 마음을 열고 비웠다. 세상이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겸허해진다. 길 위에서 걸을 때는 옆과 위의 세상을 본다. 세상이 나를 둘려 싸며 덮치니 내가 마치 무엇인가 떠받치고 있는 듯하였다. 저절로 겸손해지고 마음이 열린다.
이민 생활을 정리하고 고국으로 오기 위해서 반년 동안 캐나다 대륙을 걸어서 여행했다. 그리고 고국으로 와서는 지난 한 달 전까지 일년반 동안 걸어서 다녔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걸어서 여행하고 생활해 보니 세상이 정지된 화면처럼 내 눈 속에 속속 박혔다. 눈과 마음이 카메라가 되었던 것이다. 길 위에 서서 사물과 세상을 보니 평소에 느끼지 못한 감정이 생기고 이치마저 보게 된다. 그리고 사물과 세상의 다른 면을 보면서 고민하게 된다. 세상이 내 머리 위에 있다. 세상에 숙연함을 느끼고 그때마다 나를 낮추게 되며 겸손하게 된다.
이렇게 2년 동안 차 없이 지내다가 한 달 전에 12년 된 중고차를 샀다. 고물차라도 내 차가 생기니 너무 좋았다. 신나게 타고 다녔다. 차는 오직 나만을 위해 존재했다. 캐나다에서 택시로 손님을 태우고 차를 모는 것과 다르게 내 차를 내 마음대로 몰고 다니니 감흥이 매우 달랐다. 그런데 내 차를 몰 때 세상이 다가오지 않고 세상이 지나치며 멀리 달아나는 기분이다. 손님을 태우기 위해 중간중간 멈추지 않으니 항상 주변과 사람을 스쳐 볼 뿐이다. 창 너머 전경이 너무나 눈과 마음에 익어서 그럴까, 아니면 고국에 오고 보니 감정이 굳어져서 그럴까 별 감흥이 없다. 사람과 아파트도 보이고 시골집도 보이고 산과 들도 보이건만, 그것들은 그냥 빠르게 스쳐 지나갈 뿐이다.
뿐만 아니다. 자동차에 앉아 차를 몰고 다니니 길 위에 서 있는 사람들과 사물들이 내 아래로 보인다. 그래서 그런가? 내가 무엇인가 대단한 것 같고 세상을 바닥에 깔고 달린다는 기분이 든다. 그런 기분으로 생생 달려 보기도 한다. 밟으면 밟은 대로 차는 달린다. 창밖의 인생과 사물은 그냥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나와는 아무 관계가 없어 보인다. 그냥 심심풀이로 내 망막에 맺힐 뿐이다. 자만심마저 생긴다. 내 아래의 세상이여!
걸어 다니다가 갑자기 자가용을 운전하는 신분이 되어서 그럴까? 스케줄에 맞추어 대중교통을 이용하다가 내 마음대로 편하게 아무 데나 돌아다닐 수가 있어서 그럴까? 아니냐, 세상 별것이여! 내 발 밑에 세상을 깔고 달려서 그런 거야? 아무튼 고물차를 몰고 다니면서도 걸어 다닐 때보다 이렇게 감흥이 특별하니, 나 스스로 놀란다. 더 근사한 차로 바꾸어 봐. 그럴 리가 없지만, 만약에 만약에 내가 어떻게 하여 매우 품위 있는 차를 타게 된다면 내 감흥은 과연 어떨까? 문득 나는 한번 더 깜짝 놀라 버린다. Andr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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