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바람 Yeon Dreams

Dream & Create 꿈꾸며 창조하다

꿈을 꾸며 창조하다

2015 겨울 고국으로 돌아와서

술에 취하고 세상사에 취하다

Hi Yeon 2017. 3. 25. 15:55

 

나는 매일 손님들을 만나면서 서비스를 제공한다. 서비스라는 것은 브리핑이고 정보이며 살아가는 방법들이다. 그 옛날 몇 시간 손님과의 대화 후에는 고액의 설계 건을 계약했지만 지금은 모든 것을 무료로 제공한다. 그래서 항상 내 사무실을 찾는 고객들은 박카스나 비타 500 한두 박스는 반드시 들고 온다. 점심때가 되면 밥 먹으러 가자고도 한다. 때가 되었으니 밥을 같이 먹는다. 그렇게 나는 매일 좋다. 마음과 배가 좋으니 어떤 때는 심심하다.

고객이 땅을 사든 건물을 사든 내 알바가 아니다. 사면 나도 좋고 고객은 너무 좋지만(제대로 골라 주었으니까?) 안 사도 그만이다. 기본적이고 알찬 정보 그리고 객관적인  판단과 전문적인 컨설트를 무료로 제공하였으니 말이다. 이제 내 주 업무가 부동산 중개업이니 주 업무와 관계없는 설계, 건축공사, 개발, 단지 조성, 도시계획 등등에 관한 전문적인 투자 이야기를 공짜로 제공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어떤 때는 현장에 가보고 기본 설계도 해 준다.

 

부동산 아저씨같이 이래도 흥, 저래도 흥, 무조건 좋다는 식의 말은 나는 할 수가 없다. 설계사무소 출신으로써 전문가다워야 한다는 것이 내 소신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보통 귀가 앏아서 아양 떨고 좋은 소리만을 널어놓는 사람들을 따르는 경향이 크다. 그럴 경우 중개 성사율이 매우 높다는 것을 나도 잘 안다. 그래서 '그래요, 당신이 다 잘 알고 당신 말이 맞소' 하는 식으로 장단만 맞추고 입을 다무는 버릇을 들어야 하는 데, 그런데 그것이 쉽지 않다. 

같이 일하는 내 친구 법무사는 한술 더 떤다. 그는 법무 고시 출신 고위 공직자 출신이다. 법 이론과 그 처리 과정을 누구보다 더 잘 안다. 하루에도 여러 분들이 꼬인 세상 일을 상의하려 우리 사무실로 온다. 유산 문제로, 증여 문제로, 돈을 못 받았는데, 문중 땅이 넘어가는데, 이혼하고 싶어서, 세금 문제로, 고소 고발 건으로, 불이익을 당했는데, 관공서 불허가 처분에 대하여, 행정소송을, 혹은 소송당했는데 하면서 호소한다. 수백 만원을 들고 찾아가도 변호사라는 사람들은 사건을 비비 꼬는데 그는 십 분의 일도 안 받고도 명확하게 고객 민원을 처리한다.  

고객 대부분 이 도시 주민이다. 친구는 몇 푼 아니 되는 수임료마저 깎아 달라 하면 또 깎아준다. 어떤 때는 막걸리 값만 받기도 한다. 실컷 상담만 받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은 다음 방문 때는 대부분 비타 500 한두 박스를 들고 온다. 그냥 사무실에 들어오기에는 낮이 많이 간지러워서이다. 그는 이렇게 번 돈으로 나에게 밥을 사고 술도 산다. 나는 입만 달고 다닌다.

사실 고국으로 돌아와서는 매일 그가 사주는 점심을 먹었고 그가 사주는 막걸리를 마셨다. 자존심 때문에 가끔 우기면서 내가 돈을 내었다. 물론 그는 털면 떨어지는 것이 많기 때문이지만 그래도 마음을 비우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털어도 떨어지는 것이 별로 없다. 그래도 일에서만  마음을 비운다. 사람이 갈 때는 똑 같이 빈손이다는 것을 나는 잘 알기 때문이다. 

 

일 년 반 전이었다. 우리는 세종에서 같이 돌아다닐 때 많이 고민했다. 시골로 들어가서 일하면  너무 한가하고 비전이 없다. 세종이나 서울에서 사업을 벌이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다. 그는 그것에 대하여 심하게 고민하며 우왕좌왕했지만 나는 흔들리지 않고 도서관에서 내 할 일만 했다. 나는 이미 마음을 비웠기 때문이었다. 인생포기 정도 되었다. 가진 것이 없으니 오히러 그러한 포기는 쉬웠다. 그러던 중에 그는 자꾸 사업을 벌였고 나는 반대로 계속 칩거했다. 어느 날 우리는 서로 양보하여 중용을 택했다. 그는 법무 업을 축소하고 나는 작은 중개 업을 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우리는 대전 세종의 위성 도시인 계룡에 작은 사무실을 열게 되었다. 

 

작은 신도시 계룡는 아무도 거들도 보지 않았던 20년 전 내가 무작정 연필 한 자루만 들고 설계사무소를 차렸던 곳이고, 친구는 은퇴 후 계룡산 신기에 미처 15년 전  법무사를 차렸던 곳이었다. 그후 나는 고국을 11년 동안을 떠났고, 친구는 잠깐 법무 일을 서울로 옮겼다. 이제 다시 돌아왔다. 다른 점은 과거 그때는 치열하게 먹고살기 위해서 일을 했지만 이제는 즐기기 위해 계룡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지금은 사무소 임대료만 겨우 내고 있지만 그래도 좋다. 얼마나 좋은가 하면 그도 나도 사무소에 앉아 있기만 하여도 좋다. 자연 속에서 시간이 가는 것을 모를 정도이다.

 

세상 일 여러 가지 다 해 보았다. 직장 생활도 해 보았다. 개인사업으로 설계사무소를 하면서 우리나라 관공소를 다 다녀 보았고 높고 낮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 보았고 공사 현장에서 몸으로 때우며 일하는 밑바닥 사람들을 두루두루 보아 왔다. 장사도 해 보았고 실패도 해 보았다. 돈도 막 써 보았고 피 같이 아껴도 보았다. 굶어도 보았고 턱 벌어지게 차려진 한상을 먹어 보기도 했다. 천국이라는 캐나다에서 11년 동안 살아도 보았고 그곳에서 팔자 좋은 사람들만이 하는 예술이라 것에 파묻어 살아 보기도 했다.
 

고국으로 돌아와 보니 이제 육순이 다 되어 간다. 몇 달 전 작은 도시 계룡으로 돌아와 친구와 함께 법무 중개 사무소를 열었다. 사무소에 찾아오는 고객들, 부동산을 사고자 하는 사람들, 팔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매일 듣는다. 그리고 내 친구 법무 고객들의 희한한 세상사 이야기들을 듣고 보고 또 듣고 본다. 

 

매일매일 그러한 시간이 흐르고 나면 나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인간사를 저절로 보고 듣게 되는 셈이 된다. 주로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들의 욕심 이야기이고 허상의 이야기이다. 가끔 나는 그곳에서 세

의 이치를 캔다. 일이 끝나고 저녁이면, 내 친구 법무사와 함께 막걸리 한잔을 걸칠 때가 있다. 가끔 나는 술에 취해 세상사에 취해 미쳐서 헛소리를 지껄린다.

 

"세상은 요지경."

 

그때는 내 친구가 3개의 이상하게 생긴 다각형 구슬을 던진다. 세상의 운을 보는 것이다. 그는 오래 전 주역을 통달하고 주역에 빠졌다.

 

좋아? 

괘가 좋군. 

이보게 친구, 그럼 됐다네. Andr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