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226 노년에 능동적으로 산다는 것
사무실에서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부단히 뛰어 다닌다. 이런 경제적인 활동에서는 생각하고 고민하는 일보다 직접 몸을 움직여서 하는 일이 더 많다. 시간이 날 때 혹은 저녁 시간에는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쓴다. 이러한 예술행위는 육체보다는 정신적이 활동이 대부분이다.
여기서 하나의 차이를 알게 된다. 현재와 가까운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이 있어야 돈 벌기 쉽고, 반면 먼 미래를 보고 활동하여야 예술분야에서 영광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즉 오늘 무엇이 가장 유행하고 있는가? 지금 고객은 무엇을 원하는가, 혹은 가까운 내일은 어떻게 변할까를 고민하여야 당장 돈을 벌어 생계를 이어갈 수 있다. 반면 지금까지 보지도 듣지도 못한, 과거에서 현재까지 유행하지 않았던, 혹은 아무도 시도한 적이 없었던 것에 온 정성을 기울려야만 미래의, 아닐 수도 있지만, 영광과 명예를 가질 수가 있다.
전자는 현재 결과의 열매를 따 먹는다면 후자는 알 수 없는 미래의 열매를 얻는다. 하나는 경제성을 기반으로 한다면 후자는 창조성에 기반을 두는 일이다.
어느 부분이 더 중요한지는 사람마다, 살아가는 방식마다, 처해져 있는 환경마다 다 다르다. 사람마다 창조성이 가미된 경제성에 기반을 두는 사람도 있고 그 반대로 경제성이 가미된 창조성을 중요시 하는 사람도 있다. 경제성을 추구하는 사람은 현재의 흐름을 타고 당장의 이익을 추구한다. 그리고 소비함에 만족한다. 창조성을 추구하는 사람은 순수할수록 먼 미래에 기반을 둔다. 유명한 예술가들이 사후에 빛을 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돈을 버는 일에도 먼 미래에 빛이 발하는 예술분야의 상황과 같은 경우가 일어난다. 자본주의에서는 돈이 돈을 벌어다 준다. 버는 족족 써 버리면 성장이라는 것이 없다. 작은 장사일수록 더 그러하다. 절약하고 아낀다. 검소 절약이 장기화 되면 습관이 되고 몸에 밴다. 돈이 넘쳐나도 본인 스스로 폼 나게 쓸 수가 없게 된다. 벌고 모으고 일하다 보면 한 세월 다 가버린다. 결국 당사자는 경제활동 자체의 즐거움으로 살게 된다. 과실은 후손의 몫이다. 이는 예술분야에서 예술행위 자체의 즐거움에 빠질 때 그 결과는 먼 미래에 나타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당장의 효과를 얻기 위하여 돈을 벌면 어떨까? 당연히 돈은 쓰기 위하여 번다. 그러나 발전이 없다. 계속 그 꼬락서니대로 사는 것이다. 그런데 당장의 효과를 보기 위해 예술 활동을 하면 어떨까? 돈을 벌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단순 경제활동이 되는 것이고, 하나의 취미가 되어 버린다.
요즘 가게에서 아무 생각 없이 작은 돈벌이를 위하여 시간을 죽이고 있다. 오래되니 지루해진다. 이렇게 살다가 가면 무엇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죽도록 돈 많이 벌어서 노후에 잘 써야지 하는 생각으로 열심히 일하지만, 그것이 내일 그리고 다시 내일로 반복되면 일만 하다가 가게 된다. 가기 바로 전 무척이나 후회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도중 마음을 다잡고 돈벌이를 중단하고 은퇴를 하면, 많은 시간 속에서 어쩔 줄 몰라 하기도 하고, 혹은 돈을 쓰고 싶어도 습관과 관념 때문에 내 의지대로 소비를 할 수 없다.
60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무엇을 해도 재미가 없다. 돈을 쓰기 위하여 돈을 벌기에는 시간이 아깝다. 내일을 위하여 돈을 번다고 하여도 힘없는 노인네의 넉넉함은 별로 본인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별 볼일 없는 시간을 연장하고 돈으로 편안하게 하는 삶 정도이다.
시간을 내어 작정하고는 그림을 그려본다. 디자인하여 무엇인가 만들어 본다. 취미 삼아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졸졸 굶으면서 이렇게 많은 시간, 정성, 고민을 투자해 보았다. 내 작품이 휴지가 되고 쓰레기가 되면 무엇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안 팔려도 괜찮아, 최고의 작품을 만들자. 그럼, 만족과 자존감이 생기기도 한다. 덤으로 미래에 명예를 얻을 수 있는 작은 가망도 있다.
보통 젊었을 때는 직장을 낭만적으로 생각한다. 능동적이다. 그러나 가족이 생기면 현실적으로 변한다. 수동적이다. 은퇴 무렵에는 어떨까? 다시 젊었을 때로 돌아와 능동적일 수도 있고 그대로 사는 사람들도 있다. 은퇴할 때 그래도 수동적으로 살아야 할 형편이라면 계속 변화 없이 사는 것도 좋아 보인다. 그런데 그럴 이유가 전혀 없는데 은퇴 전과 같이 수동적으로 산다면 이미 오래전에 자신을 잃어 버렸다는 증거이다.
캐나다 동부 작은 도시에서 미술공부를 할 때는 정말로 무엇인가 창조하듯 도전했었다. 그것 자체가 즐거웠다. 내가 세상을 만들고 있는 것처럼 여겼고, 그것이 나에게 큰 가치를 주었다. 탐구한다. 그림을 그린다. 글을 쓴다. 디자인 한다. 금속으로 형상을 창조한다. 이런 능동적인 삶이 너무나 즐거웠다. 아마도 오랫동안 해왔던 건물설계디자인이라는 직업의 습관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고국으로 돌아와 생계를 위하여 사무소를 지켜가니 영 재미가 없고 따분하다. 아침마다 오늘은 무슨 신기한 것을 할까? 하고 저녁이 되어 잠자리에 들 때가 되면 오늘은 무슨 뜻 깊은 일을 했지? 하고 자꾸만 하루를 아쉬워하는 내 자신을 보게 된다. 그때마다 가 본 적 없는 곳에 가 본다거나 누군가 그린 적이 없는 것을 그린다거나, 누군가 하지 않은 것을 해 보는 그런 것을 하고 싶어진다.
살다가 어려울 때는 수동성으로 살면 참으로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한 적도 많았다. 그러나 돌아보면 나는 능동적으로 산 것 같다. 깨지면 붙이고, 터지면 뭉치고, 누르면 일어서면서 내 의지대로 살아왔던 것 같다. 물론 미리 의도하여 실행한 것은 아니었다. 그때 그때 자주 주저했지만 그때 그때마다 내 스스로 생각하고 내 의지대로 움직였다.
그래도 후회가 많다. 노년이 된 지금 다시 젊은 시절과 같이 능동적으로 살고 싶다. 그때는 천방지축이어서 위험했지만 그때의 순수로 돌아가고 싶다. 내 인생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일에 몰두하고 싶다. 나중에 더 나이 먹고 더 힘이 없어 내 의지가 통하지 않을 때가 되면 나는 하늘을 보고 이렇게 말 하고자 한다. 이기지 못할 게임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할 만큼 나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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