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바람 Yeon Dreams

Dream & Create 꿈꾸며 창조하다

꿈을 꾸며 창조하다

수필집 - 겨울배추는 달고 향기롭다

150624 캐나다에서 택시기사로 일하다

Hi Yeon 2015. 6. 24. 21:40

 

150624 캐나다에서 택시기사로 일하다

 

2006529, 우리 가족은 캐나다 동부지역 NB, Saint John에 랜딩하여 반년을 지낸 후 NB주 수도인 Fredericton으로 이사를 하였다. 나는 이곳에서 Gas station & Convenience & Bar를 구입하여 운영하다가 능력 밖의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다시 되팔게 된다. 그 이후 2008년부터 주에서 제공해 주는 영어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영어 공부와 애들 돌보기를 2년 하였으나 생각 많큼 영어는 늘지 않았다. 말하기도 그렇고 듣기는 좀처럼 늘지 않았다. 경상도 출신으로 한국말도 대충 흘려서 말하는 나로서는 영어는 정말 어려운 상대였다. 2년을 열심히 다녔는데도 불구하고 내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말하는 것조차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대부분 한국 사람은 읽고 쓰는 것은 어느 정도 하지를 않는가. 그 덕분에 Grade 3를 무난히 하고 Grade 4를 넘어갈 무렵 나는 택시기사에 도전했다. 나 자신을 강제로 영어의 바다에 빠뜨리기 위함이었다. 사람이 물에 빠지면 수영을 못하더라도 살기 위해서 몸부림을 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니 그것보다는 나는 먼저 배우고 그 다음 실전 일을 하는 것 보다 실전과 함께 하는 배움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택시운전면허를 취득한 후 나는 여러 택시회사들을 방문하였다. 말도 더듬거리는데다가 이민자인 까닭에 한 순간에 모두 거절당했다. 그때는 이 지방은 이민초기 무렵인지라 동양인 이민자를 받아주는 택시회사는 드물었다. 대부분 현지인이거나 혹은 있다면 아랍계통 이민자들이 조금 있었을 뿐이었다. 한두 달을 할 일 없이 지내다가 마지막으로 나는 한 회사를 찾았다.

 

마침 그 회사 오너가 이민자 출신이고 그래서 그 회사에서는 이민자 출신 기사가 몇몇 있었다. 방문해서 사정을 해보니 단번에 한번 해 보라고 했다. 첫날 주행은 완전했다. 마치 군대에 입대하는 마음으로 했으니까. 그리고 시내와 외곽도로의 형상과 모든 도로 이름을 지도를 보고 미리 숙지하고 암기하였기 때문이다.

 

그때가 20001월 초, 그로부터 주말과 공휴일에 택시 운전을 한 지가 오늘로 (2016621) 5년이 넘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꾸준히 일했고 승객에게 최대한 친절을 베풀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한 덕분에 이민자이고 어설픈 영어 때문에 받은 서러운 괄시를 많이 극복할 수도 있었다.

 

초기 2년간은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하기가 싫었다. 조금씩 좋아지더니 디자인 대학을 다니면서부터 운전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는 주말에 별일 없이 집에 머무는 것보다는 택시운전을 하면서 바깥세상을 보면서 시원한 공기를 마시자" 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떠나는 날까지 운전을 계속 하였다.

 

그러나 이제 결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솔직히 말하면, 밑바닥 인생에서 더 이상 기고 싶지가 않기 때문이다. 설령 환경이나 마음이 변하여 해야 한다 하여도 쉽게 다시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왜냐하면, 여기 면허를 가지고 타 도시에서 택시운전을 할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유효기간이 2년인 면허가 지나가면 택시를 운전할 수 없는 보통면허로 자동으로 변한다. 또한 매년 열손가락 전체의 지문조회를 경찰서에 가서 해야 하고, 또한 4시간의 교육을 마치고 매년 면허를 갱신해야하는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 뿐인가. 최저임금에 항상 노출되어야 하고 아차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가 있으며 그 손실이 고스란히 나의 책임으로 돌아오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지막 손님을 태우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그분이 나의 마지막 손님이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하루 종일 택시로 달리다 보면 얼마나 많은 세상의 이미지가 내 눈이라는 스크린에 영상으로 맺히겠는가. 아마도 셀 수가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많다. 그때마다 나는 생각하였고 고민했었다. 이런 것들이 나 스스로 철이 들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또한 글을 쓸 때 혹은 디자인할 때 나만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창출할 수 있는 통로 같은 것이 되었다.

 

그동안 사고 없이 운전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한다. 그리고 더듬거리는 영어로 끝까지 견디어 준 나 자신에게 격려 한마디를 한다. 마지막으로 캐나다에서 5여년의 택시기사일로부터 다양한 인생살이를 깊이 느낄 수 있었음을 행운으로 생각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