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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집 - 겨울배추는 달고 향기롭다

170228 이보게 친구, 한잔 하게

Hi Yeon 2017. 2. 28. 14:04

 

 

 

170228 이보게 친구, 한잔 하게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은퇴한 친구와 함께 작은 도시의 시청 앞 건물에 사무실을 열었다. 다행히 지인들과 친구들이 심심찮게 들렸다. 빈손으로 오라고 하였으나 몇몇은 화분을 보냈다. 처음 시작하는 일인데 생각보다 사무실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같이 일하는 내 친구는 마당발이다. 그는 이 도시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 비슷한 또래는 다 그의 친구이다. 나와 그는 절친이고 동문이다. 같이 일하고, 같이 밥을 먹고, 같이 놀고, 같이 막걸리를 마신다. 자연히 그의 지인은 내 지인이다. 복잡한 대도시를 벗어나 전원도시의 시청 앞 사무실에서 친구와 함께 자유롭게 일을 즐길 수가 있으니 나에게는 큰 행복이다. 그는 개방적이고 적극적이다. 반면 나는 그렇지 못하다. 주로 그가 나를 선동한다.

 

오늘 모임이야. 친구들이 우리 환영식을 술로 한단다. 가자.

어디에서?

모임의 회장인 친구가 사는 촌 동네에서.

 

자동차는 시골 오솔길로 한참을 달리고 나서 시골 들판에 있는 최신식 비닐하우스에 멈추었다. 안에는 큰 방과 홀이 있었고 홀에는 주방시설이 잘 되어 있었다. 저녁 시간이었다. 이미 친구 마님 두 분이 방에 상다리가 휘일 정도로 한상을 차려 놓았고, 먼저 온 친구들이 둘려 않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는 저편에 나는 이편에 자리 잡았다. 잔에 동동주가 채워지고 모두들 큰소리로 위하여를 외치며 목을 축였다.

 

빈속에 술이 매끄럽게 넘어갔다. 내가 마시고 싶었던 집에서 빚은 동동주가 아니던가. 박상도 있었다. 친구들이 있고 동동주가 있는데 아무리 술을 절제하여야 한다고 하여도 오늘은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그만 취하고 말았다. 동동주가 마시기가 부드럽지만 그것이 얼마나 쉽게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지 나는 잘 알면서도 마셨다.

 

어머니는 맏며느리이었다. 8형제인 아버지의 대가족을 돌보았다. 한 달에 한번 꼴로 제사도 모셨다. 어머니는 명절과 제사 때마다 술을 빚었다. 쌀을 안방 큰 솥에 안쳐서 아주 꼬들꼬들한 밥을 지었다. 술누룩을 물에 개어 꼬들밥과 함께 독에 넣었다. 밥을 하는 큰 불 덕분에 안방은 따끈따끈 했다. 따뜻한 안방 아래 목에서 밥은 조금씩 술이 되었다.

 

제삿날과 명절날마다 따뜻한 안방에 들어가 보면 큰 독은 주둥이만 조금 열어 둔 채 겨울 이불을 덮고 있었다. 무엇이 어떻게 되고 있을까? 어린 마음의 호기심이 발동했다. 독 입구를 가리고 있는 이불을 살짝 비집고 들어다 본다. 공기 방울이 수면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작은 소리가 난다. 야릇한 냄새도 난다. 콧구멍을 가까이 해보았다. 코를 톡 쏘는 요것이 무슨 냄새일까?

 

그때 방 안으로 들어오시는 어머니께서 툭 한마디 던졌다. "코끝이 새빨개진단다." 그 말에 놀라 얼른 밀어 넣었던 코를 빼고 독 입구를 이불로 둘려대었다. 어머니는 독이 추울까 독을 감싸고 있는 겨울 이불을 다시금 정리하였다. 그렇게 독은 따뜻하게 하루 밤을 지새우고는 어머니 손에 어디론가 옮겨졌다. 이후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독 안에 밥알이 동동 떠 있는 동동주였다.

 

어릴 때는 동동주를 어려서 맛보지 못했다. 청년이 되었을 때는 나는 술 찌꺼기만 조금 맛보았다. 어려웠던 살림에 어른들이 마시기에는 그때는 충분한 양이 못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어른이 되고서야 어머니는 나를 위하여 동동주 한잔 정도를 주셨다. 내 가족이 생겼을 때는 큰 형님이 제사를 지냈기에 어머님은 술을 빚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고향을 찾아 홀로 계시는 어머니를 뵈는 때에는 어머니는 가끔씩 나를 위해 술을 빚었다. 옛적과 다른 점은 누룩 한 조각을 아는 분에게 얻어 와서 전기밥솥으로 한 밥으로 작은 독에 술을 빚는 것이었다. 어머니와 나 둘이니 동동주는 넉넉했고 어떤 때는 맑은 동동주를 맛보기도 했다.

 

어느 날이었다. 어머님이 차려주신 동동주를 연거푸 마시고 취했다. 팔순의 어머니 얼굴이 주름지고 머리는 하얗다. 손은 거칠고 손목은 억세고 굵다. 그런데 어머니 옷깃 사이로 보이는 가슴골은 뽀얗다. 깊고 높다. 나는 내 머리를 그곳에 파묻고 말았다.

 

"내 애기가 술에 취했네. 고놈이 앉은뱅이 술이 맞긴 맞네. 내 아들마저 요렇게 만드니."

 

오늘은 작정하고 술을 마셨다. 얼른하다. 목 넘김이 좋다. 요놈의 술, 안주도 없이 술술 잘도 넘어간다. 내 앞에 이렇게도 좋은 음식이 있건만 나는 빈속에 술만 마신다. 핑 돈다. 친구들이 자꾸만 따라준다. 기분이 너무나 좋다. 그만 나는 취하고 만다.

 

그런데 문득문득 초점 흐린 눈으로 나는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다. 상 위에는 그때와 같이 비슷한 동동주와 박상이 보이지만 나를 지긋이 쳐다보는 그분을 찾을 수가 없다. 떠들썩하다. 술 취한 눈을 부릅떠 본다. 대신 정다운 친구들이 보인다. 덥석 옆 친구의 손을 잡고는 한잔을 청한다.

 

"이보게 친구, 한잔 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