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603 작은 항아리
캐나다에 이민 올 때는 큰 가구들은 다 버렸으나 대부분 살림살이는 가져 왔었다. 10년 후 애들은 커서 타지로 떠났고 나는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가방 한 개만 남기고 캐나다 살림살이를 모두 다 정리하였다. 이때 아깝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 모두 처분하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무엇보다도 정든 물건을 정리한다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 그중에 자꾸만 생각나는 것이 항아리이다.
내가 어릴 때 어머니는 된장, 고추장, 간장, 그리고 갖가지 젓 종류를 직접 항아리에 담가 만들었다. 자연히 뒷마당에는 크고 작은 항아리들이 많았다. 특히 어머니는 대가족의 큰 며느리이다 보니 우리 집에는 항아리 종류가 많았고 그 크기가 컸다.
가족 중에 내가 마지막으로 가정을 가졌고, 그때쯤에는 우리 집에서는 더 이상 큰 항아리가 필요가 없게 되어 그대로 몇몇은 빈 항아리로 남아 있게 되었다. 그것마저 시골에서 어머니 혼자 관리가 어려워서 큰 것들을 정리하였다. 그리고 어머니는 작은 항아리 몇 개로 손수 간장, 된장, 고추장, 젓 종류를 담가 드셨다. 이때 어머니는 크기와 색깔이 같은 작은 항아리 두개를 나에게 주셨다.
서울에 살면서 아파트에 항아리 2개를 장식용 혹은 음식보관용으로 발코니에 두니 그 멋 또한 별났다. 뿐만 아니라 볼 때마다 고향 맛이 나서 좋았다. 그래서 캐나다로 이민할 때 이것을 가지고 왔었다.
여기 캐나다 작은 아파트에는 발코니가 흔하지 않았다. 그래서 항아리를 거실에 혹은 방에 처박아 두다가 주택을 마련하게 되었을 때는 마당 잔디 구석에 두었다. 그 후 이제까지 잊어버리고 살다가 귀국하고자 집을 팔고 살림살이를 정리할 때 잔디구석에 있는 바로 그 항아리를 발견했다.
항아리는 그 오랜 세월동안 캐나다 정원 잔디 구석에서 혼자 비바람을 맞고 지냈던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분명 똑같은 것 두 개를 가지고 이민 왔는데 그곳에는 하나만 있는 것이다. 어디에서 언제 그 하나가 없어졌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캐나다에서도 여러 번 이사를 하였고 그때마다 항아리는 항상 구석에 치워졌으니까 말이다.
항아리, 집 마당 한 구석에 홀로 처박혀 있었던 그 항아리를 봄볕이 화사한 잔디마당 한가운데 가져왔다. 오래만의 외출이었다. 나는 벤치에 앉아 오랫동안 처다 보았다. 갑자기 감정이 미묘하게 변하더니 마침내 고개를 돌리고는 나는 일어서 버렸다.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짐정리를 하면서 며칠을 두고 항아리를 보면서 어머니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데 어머니 생각이 누그러지자 이제는 그 항아리를 볼 때마다 알 수 없는, 아니 가슴 저 밑바닥에 눌려 있는 감정이라 할까. 무엇이라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올라 왔다. 무엇일까? 글쎄, 좌우간 이국에서 보는 항아리의 느낌은 매우 특별했다.
집과 나무 그 속에 둘려 싸인 정원 잔디 구석에 홀로 있는 항아리
이리보고 저리보고 되돌아보아도 너 신세 애처롭구나 나도 너를 떠나니
무빙세일 하던 휴일 날이었다. 오후에 한 한인부부가 방문했다. 오래전에 여기 정착한 분이었다. 그분은 물건을 사기보다 휴일이라 놀기 삼아 들렸던 것 같았다. 사모님은 초면이었다. 그 사모님이 이리저리 무빙세일 품목을 둘려보면서 항아리에 눈길을 멈추었다. 그리고 너무 좋아라했다. 나는 얼른 그분에게 그 항아리를 선물로 드렸다. 항아리 두 개 중 하나만 이리 남았는데 이것마저 없어지면 어떻게 하나? 차라리 너를 좋아하는 한국사람 품으로 가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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