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710 세인죤(Saint John)의 강과 바다
나는 캐나다에 이민하면서 Saint John에 렌딩하였다. 물론 렌딩 전 어디에서 살아야 하나 하고 고민을 많이 하였다. 고민해 본들 경험적인 정보는 적었고, 있었다 한들 단순하고 심플한 정보밖에 없었던 터라, 실질적인 판단을 할 수 없었다.
그 단순한 정보라는 것이 Monton은 내륙이고, Saint John은 바닷가이며, Fredericton은 강가의 교육도시라는 것, 그리고 몽톤이 가장 크고, 다음이 세인죤, 그리고 프레데릭톤 순이며, 발전성과 돈의 흐름도 이와 비슷한 순서이다 라는 것이었다. (Monton, Saint John, Fredericton은 캐나다 동부에 있는 NB주의 대표적인 도시이다)
나는 단순하게 감성적으로 접근하였다. 세인죤이 바닷가이었기 때문에 살 곳을 그곳으로 찍었다. 왠지 모르게 그 바닷가가 나를 푸근하게 해 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리라. 마치 70 년대 부산 같은 느낌, 즉 부두의 짠맛, 바다의 수평선, 그리고 고가도로의 황량함, 등등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그 유사함이 나로 하여금 세인죤을 선택하도록 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 시절에는 파도가 밀려오는 푸른 바닷가가 항상 내 곁에 있었다. 같은 또래들과 허름한 반바지만 걸치고 부두로 백사장으로 달렸다. 먼 바다의 수평선에 떨어지는 석양을 보고 소리를 지르고 팔을 흔들었다. 놀고 싶을 땐 바다와 함께 했고, 속삭이고 싶을 땐 그 소리와 함께 했다. 야망을 꿈꿀 땐 먼 대양의 수평선을 올려 보았고, 마음이 우울할 때는 짙푸른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배가 고프면 백사장에 흩어진 바다 채소와 마른 생선을 주워 먹었다.
그래서인지 항상 나는 바다를 바라보고 꿈을 꾸었고 바다로부터 절망을 느꼈다. 다가서면 꾸짖고 처다 보면 격려와 감동을 주었던 것이다.
청년기에 들어서면서 가슴이 텅 비거나 술이 고플 때면 친구를 바닷가로 불러냈다. 친구들과 놀래기를 잡아서 회를 쳐 놓고, 백사장에서 소주병 들고 마시고, 노래를 불렀다.
밤이 되면 바닷가에 있는 친구 집으로 막걸리 큰 통을 등에 지고 가져가서 밤새도록 마시며 파도소리와 함께 "울려고 내가 왔든가"를 목이 터지도록 불러 댔다.
방파제에 부딪힌 파도가 빗물같이 흩뿌려져 내릴 때는 방파제 위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소리를 지르며 걷고 뛰고, 그리고 떨어지는 파도에 온몸이 젖어 서로를 향해 깔깔거리며 웃기도 하였고, 파도와 바람이 조용해지면 이때 둘이서 조금만한 배로 푸른 바다를 배 저어 나아가면서 사랑을 속삭여 보기도 하였다.
바닷가에서 일하는 어부, 백사장에서 생선을 너는 아낙네, 그리고 그들을 기다리는 선술집과 아가씨들을 보면서 나는 삶을 보았다. 바닷냄새, 즉 비린내 나는 짠맛이라 할까? 그것은 내 후각을 바꾸어 버렸다.
폭풍이라도 오면 비바람은 밤낮 구분 없이 몰아치고 바다는 미친 듯 춤을 추고 바닷가는 성난 파도로 요동을 쳤지만, 오히려 그것들은 나에게 신기함과 모험심을 느끼게 해 주었다.
폭풍이 지나간 뒤 바다는 다시 조용해지고 다시금 넓게 짙푸른 대양이 펼쳐지면서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수평선은 내 눈 속으로 아른거리면서 들어왔다. 그때마다 나는 야망을 꿈꾸었다.
어른이 되어 도시로 나옴에 따라 바다 대신 산과 강을 더 자주 접하게 되었다. 그래서 바다에 대한 나의 동경은 조금씩 희미해졌다. 그러나 가끔 동료가 나에게 선택을 강요할 때면 나는 초원 위의 하얀 집보다 바닷가 언덕 위의 집을 그리곤 하였다. 그것은 생리적이며 순전이 개인적 취향이었다.
몽상 속에 나는 세인죤에서 정신없이 세월을 보냈다. 정착에 힘이 들 때 부두와 바닷가를 둘러보고 내가 갖고 있는 바다에 대한 특별한 감정을 느껴보려 하였지만 어려웠다. 여기 바다는 마치 여기 언어처럼 여기 사람처럼 달랐다. 바다는 바다이되 내가 느끼는 그 바다는 아니었다.
나에게는 예전의 바다는 하나의 지속된 생활이었고 지속된 느낌이었다. 힘이 들 때 속삭이면 고향의 바다는 따뜻한 소리로 다가왔다. 그런데 여기 바다는 이해할 수 없는 메아리로 되어 되돌아 왔다. 자주 그 메아리는 돌아 돌아서 변질되기도 하고, 특히 새로이 만나는 이민 사회는 나를 꾀는 악마가 되기도 하였다.
살다 보니 곁에 바다뿐만 아니라 이 도시 중앙을 흐르는 세인죤강이 있었다. 굽이굽이 조용히 흐르는 세인죤강을 처음 접하고는 내 마음은 그곳으로 향해졌다. 그것은 처음은 별로이었지만 자주 보고 느껴보다 보니 조금씩 그것은 내게 안정과 편안함을 주었다. 그 후로는 나는 바다보다 강과 호수를 자주 접하게 되었다.
세인죤강은 하류에는 호수 같은 강줄기가 오밀조밀 그리고 넓게 형성되어 있다. 우리나라 서해안 같다고나 할까. 하류에서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폭은 조금씩 좁아지면서 그 조용함과 넉넉함이 가까운 도시 프레데릭톤으로 이어졌다. 가끔 날씨가 좋지 않을 때에는 거칠지만 바다보다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고 따뜻했다 .
나는 천변으로 조깅도 하고 드라이브도 해보고 연락선도 타 보았다. 천변의 조깅은 나즉막한 도시와 사람들과 그리고 강물과 어울려져 나에게 편안함을 주었고, 드라이브 할 때는 장소와 시간과 계절에 따라 변하는 강물의 흐름과 색깔을 느끼게 해 주었다.
봄가을의 안개속의 수면, 겨울철이 되면 하얀 눈이 소복소복 내리는 미끄러질 듯 너른 빙판의 호수, 여름에는 푸른 강물 위로 요트 등이 내 눈에 투사가 됐다. 그것들이 낮은 초목과 도시의 건물들과 사람들이 함께 하면 나의 느낌은 천만가지로 변했다.
여기서는 많은 사람들이 강에서 배를 즐겼다. 그것은 타는 것만으로 환상에 가깝다. 직접 배는 못 타 보았지만, 호수 위에 배를 즐기는 사람을 보고 마치 내가 파란 바다 위에 배를 띄우는 상상으로 즐겼다. 그러한 감정이입으로 나는 강 물결이 되기도 하고 강바람이 되기도 하였다. 혼자이고 싶으면 혼자가 되고 둘이고 싶으면 둘이 되었다.
그리고는 강 호수 언덕 위의 하얀 집들에도 가 보았다. 많은 집들 중에 최상의 것들을 골라 본다. 그리고 내 집들은 아니더라도 그 집 근처서 강물을 느끼고 여러 각도로 전경을 보노라면, 마치 내가 그 집에 살면서 발코니와 창가에서 푸른 강물을 보는 듯했다.
바다는 나에게 태생적이었고 오랜 세월 누적된 감정으로 나를 지배하는 느낌이었으나 차츰 누그러졌다. 반면 강 호수에 대한 느낌과 친밀함은 세월 따라 깊어 갔다.
보고 느끼는 것도 하나의 생활의 일부분으로 지속성이 있다면 자기의 일부분이 됨을 느꼈다. 매일 매일 보고 느끼고 그래서 몇 해가 지나다 보니 내 고향이 마치 강가이었다는 착각 속에 빠지기도 하였다.
이제, 이제는 누군가 나에게 권한다면 당연히 호수가 언덕 위의 하얀 집을 택한다. 그래서 그림같이 조그마한 집을 호수 옆 초원에 놓을 것이다. 내부는 크고 작은 창문들을 만들어 액자 속의 풍경화를 보듯 그 창문들을 통해 강물과 초원을 바라보리라.
그리고 그대가 즐기는 피아노 소리를 크고 좋은 스피커에 흘릴 것이다. 건반소리가 바람 따라 흐르다 보면 각 실들은 강물이 되기도 하고 초원이 되기도 할 것이다.
사람의 느낌과 감정은 세월 따라 변하는 것이다. 그래서 새로이 접하는 것도 자주 대하여 보고 느끼다 보면, 그것이 세월과 더불어 내 것이 된다는 것을 세인죤강을 접하면서 경험하게 되었다.
그러나 있었던 것이 없어지지는 않는 법, 가끔 자주 저 깊은 가슴 속에서 나를 끌어 당기는 것들이 있었다. 아마 그것은 나를 나아 준 그 곳, 처음 눈 뜨면서 본 그 세상, 그리고 그곳 바닷가에 있었던 사람들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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