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812 캐나다에서 고등어조림 한상
Sobeys에 잠깐 들렸다. 과일과 채소 그리고 음료 등 몇 가지를 챙기면서 상가 내부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문득 내 눈에 상가 한 구석에 있는 어물전이 들어 왔다. 가만히 보니 그 곳에 눈에 익은 어물이 있었다. 고등어였다. 굵기가 내 주먹보다 약간 작고 길이는 한자 정도 되는 놈들이었다.
세 마리를 주문하여 고등어를 카트에 넣자 왠지 나는 싱글벙글 해졌다.
사실 내가 캐나다의 소도시에 와서 살면서 '여기서 무슨 어물을 먹어 볼 수 있겠는가?', '굳이 여기까지 와서 고등어 같은 어물을 구하려고 법석을 떨어야 하나' 하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아니 억지로 구하면 먹을 수 있었겠지만, 그 흔해 빠진 고등어와 꽁치를 젊은 시절까지 지겹도록 먹었는데 여기서 내 손으로 찾아가면서 먹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인지도 모른다.
세월이 흐르다 보니 마음도 변했는지 이제는 어물전을 지나칠 때, 어릴 때 많이 보았던 가자미, 고등어, 문어, 꼴뚜기들이 가끔 진열대에 누워 있으면 나는 그들을 금방 알아차린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고등어를 꺼내 도마 위에 놓았다. 잘 생긴 놈들이었다. 동해안 연안에 나는 차디찬 가을철 물 오른 고등어만큼 토실하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괜찮았다.
동해안 겨울 초입에 나는 고등어는 살이 올라 통통하고 기름이 졸졸 흐른다. 그것에 소금을 쳐서 연탄불 위의 적쇠에 구어 막걸리와 함께 먹으면 제격이다. 여기서 동해안의 제철 고등어와 같은 것을 바랄 수는 없었다.
"그 놈 잘 생겼네" 하고 외치고는 사정없이 머리를 잘라 냈다. 그리고 꼬리와 지느러미, 그리고 내장을 도려내고 남은 몸통을 물로 깨끗이 씻었다. 또한 몸통에 묻은 물기를 완전히 훔쳐 내고는 몸통을 비스듬히 가로 질려 토막을 내었다.
다음 냄비 바닥에 무우 대신 양파를 설어서 깔고 그 위에 고등어 토막을 가지런히 놓고 된장과 고추장, 등으로 미리 만든 양념을 토막 사이사이에 골고루 바른 뒤 냄비뚜껑을 닫아 냉장고에 넣었다.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려면 아직 3시간이 남았다. 그 동안 냉장고에서 고등어 살이 양념에 기가 죽겠지. 그 동안 할 일이 있겠지 싶었다.
고등어의 머리, 내장, 등 쓰레기들은 위험천만의 물건이다. 이중으로 봉투에 넣어서 우선 그것만이라도 특별히 버렸다. 그리고 고등어를 손질하기 위해서 오염된 싱크대, 도마, 칼과 그릇을 비린내가 가실 정도로 꼼꼼히 씻어 냈다. 마지막으로 내 손도 씻어 내어 비린내를 제거했다.
이제 상추를 준비할 차례였다. 상추를 흐르는 수돗물에 씻어 물기를 훔쳐 내고 좋은 쟁반을 받침으로 하여 먼저 식탁에 놓았다. 고등어와 상추는 서로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쌉살한 양념이 발라 진 고등어살을 상추에 얹어 먹으면 고등어살의 단백한 맛과 된장고추장 양념의 짭살한 맛, 그리고 상추의 씹는 맛과 어울려져 입 안에서 침이 저절로 흘려 내린다.
그러나 나는 상추 대신에 막걸리를 더 좋아한다. 왜냐하면 막걸리 한잔을 먼저 마시고 나서 고등어살에 양념을 푹 발라 입에 넣으면 저절로 황홀하게 되고, 조금 후 다시금 목구멍은 막걸리 한잔을 더 달라고 하기 때문이다.
어느 듯 저녁을 준비할 시간이 되었다. 냉장고에서 냄비를 꺼내어 불 위에 얹었다. 약한 불에 어느 정도 둔 후 김이 나고서 나는 스위치를 강한 불로 돌렸다.
쿰쿰한 된장고추장내와 야릇한 비린내가 김이 되어 내 코를 찔렸다. 뿜어내는 김과 냄새로 보아 고등어조림이 다 되었는 것 같았다.
냄비를 들어내고 하얗고 좋은 쟁반에 양념과 함께 고등어 서너 토막을 얹었다. 이제 정식으로 식탁에 앉아 먹을 차례였다.
김이 모락나는 하얀 쌀밥을 한 숟가락 퍼서 그 위에 양념을 바른 고등어 살을 살짝 얹어 먹어 보았다. 쌀밥과 고등어살이 씹기도 전에 침에 녹아 목구멍으로 내려가 버렸다.
다음은 상추에 얹어서 먹어 보았다. 비린내와 상추의 씹는 맛이 서로 어울려 한마디로 일품이었다.
어느 방법이든 된장과 고추장으로 어울려진 짭조리한 맛, 그리고 고등어 그 비린내가 합쳐져 나를 옛날의 추억 속으로 밀어 넣었다.
추운 겨울 언저리 어느 날, 어머님께서 손수 김이 무럭 나는 하얀 쌀밥과 고등어조림을 한상으로 차려 오셨다. 내가 숟가락으로 밥을 퍼면 어머님께서는 고등어 살을 발라서 그 양념을 조금 바른 후 내 숟가락 쌀밥 위에 놓으셨다. 그리고 어머님은 내 먹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웃으셨다.
이제 고등어조림을 내가 손수 만들어 먹어 보니 그 맛은 옛날 그때와 제법 비슷하였다. 그래서 내가 해 왔던 모든 조리 과정을 더듬어 보니 어머님께서 하신 것과 거의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철이 좀 들면서 나는 어머니 곁에서 장을 보는 것, 어물을 손질하는 것, 그리고 양념을 만드는 것을 가끔 무심코 보았다. 아마도 그때마다 그것도 입과 눈이라고 어머님이 만들어 주신 고등어조림 맛과 고등어 조림방법을 입 속에 눈 속에 박아 두었던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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