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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집 - 겨울배추는 달고 향기롭다

130813 동해안 멸치회의 진미

Hi Yeon 2013. 8. 13. 01:44

 

 

 

130813 동해안 멸치회의 진미

 

옛날부터 남동해안에서 매년 3월에서 6월 사이 멸치가 풍어였다. 멸치 떼들이 일년 내내 조금씩 자주 남동해안 연안으로 몰려오면 좋겠지만 봄과 이른 여름 사이 한 철에만 몰려오니 생산량도 그때에 몰린다. 힘들지만 큰 장비 없이 배만 있으면 노동력으로만 멸치를 잡을 수 있다 보니 그때는 멸치잡이가 어촌의 큰 수입원이 되었다. 그래서 부두 판장에는 아무데나 멸치가 쌓여 있었고, 걷다 보면 발에 치이는 것이 또한 멸치였다.

 

멸치는 굵기가 어른 엄지 정도이다. 그 살은 연하고 기름이 풍부하며 그래서 쉽게 무르고 상하기 쉽다. 요즘같이 교통이 발전되었으면 모를까 그 당시에는 어촌에서 육지 도시로 운반도 쉽지 않았다. 말리거나 일정기간 보관할 수 있는 어종도 아니고 또한 우리 입맛을 사로잡는 고급어종은 더더욱 아니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일정기간 한꺼번에 많은 멸치가 잡혀 부두로 들어오면 처치가 곤란해진다. 그래서 어촌에서는 멸치 젖을 담아 왔었다. 이는 멸치 젖이 동해안에서 유명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도 더 많이 잡히면 백사장에 가마솥을 걸어놓고 멸치를 즉석에서 데쳐서 백사장에서 말린다. 아마도 사료로 사용하고자 그랬던 것 같았다.

 

군에 갔다 오고 나서 많은 시간이 남을 때였다. 고향에서 빈둥빈둥 놀면서 어디서 한잔하지 하고 궁리할 시절이었다. 친구들과 부두에서 어슬렁거리다가 많은 배들이 부두에서 멸치를 털고 있는 것을 보고 있던 친구 한 놈이 마침 출출한 차에 멸치회 타령을 했다. 그것은 핑게로 한잔 하고 싶다는 술타령이었다.

 

"야 멸치 회나 먹지 뭐, 내가 막걸리 어디 가서 뚱쳐올테니까, 너는 그것 책임져!"

 

나도 출출하고 심심하다 보니 배도 채우고 술도 마실 참으로 멸치를 터는 부두가로 나갔다. 부두에서는 많은 배들이 길게 일렬로 줄지어 멸치를 털고 있었고, 어부들이 터는 동작에 따라 멸치들이 공중으로 흩어지면서 오후의 햇살에 은빛을 반짝였다.

나는 바구니 하나를 구해 들고 어부들이 터는 곳에서 멀찌감치 떨어져서 서성거리면서 어부 뒷편으로 팅겨나와 바닥에 떨어지는 멸치들을 바구니에 주워 넣었다. 어부들이 부둣가에 일렬로 줄지어 서서 멸치를 털어낼 때 대부분 멸치들은 바닷물 속에 쳐 놓은 그물망으로 다이빙하듯 어부 앞으로 떨어지지만, 간혹 재수 좋은 놈은 어부 뒷편 혹은 옆의 부두 위에 떨어지곤 한다. 나는 그때 그놈들을 주워 넣는다.

30분 주워 넣으니 몇 사람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충분한 양이 되었다.

 

사실 둘려 보면 사방천지가 멸치가 아니던가. 아는 중개인 형님이나 얼굴을 아는 어부들 주위에 쌓여져 있는 멸치 무더기에 가서 한바가지 퍼서 오면 머 큰 대수인가? 몇 바가지인들 어떤가? 먹겠다는 데, 하지만 친구들의 입이 보통 고급이 아니어서 그런 것은 처다 보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멸치그물을 건져서 부두로 오는 시간과 털기까지 시간은 길고 그러다 보면 봄 햇살에 물려질 수가 있고, 그 뿐만 아니라 그물을 먼 바다에서 건져 올려 간판 위에 산 같이 쌓아 올릴 때 멸치들이 그 사이에 첩첩으로 중첩되면서 대부분 짓눌리게 된다. 또한 터는 과정에서 멸치들이 다시 바닷물 속으로 다이빙하여 들어가게 되고 상처받은 멸치 살이 다시 바닷물을 먹으면 또 한번 더 신선도가 떨어진다.

 

아무래도 알고는 그런 멸치로 회를 해먹기가 좀 내키지 않고 신선도 또한 좀 아니올시다. 그렇다고 그물을 건져 올린 배가 부두에 도착할 때 바로 배 간판 위로 올라가서 그물 사이에 끼어있는 싱싱한 멸치를 골라 손으로 일일이 집어내면 되건만, 무슨 통 배짱이라고, 밤에 큰 맘 먹고 몰래 하지 않는 한, 들킨다면 줄 초상날 일이 뻔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상도 차리기 전에 남의 음식에 먼저 손대는 것과 같다.

 

종종 부두에서 아재뻘이나 형님들이 속이 출출한 저녁이 되면 바가지 하나 건내주면서 "야야 멸치 좀 주워오너라" 하고 시키는 이유이고 그것을 보고 도시에서 온 친척이 "그것을 왜 주워서 먹느냐"고 깜작 놀라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쨌든 먹을 만큼 주워 왔다. 그리고 가까운 부두가의 잘 아는 형수님 상가 뒷편 수돗가에서 회 만들기 작업에 들어갔다. 먼저 멸치의 중앙 뼈를 발라내어 몸통 양면 살을 추려내고, 손가락과 손톱으로 머리와 꽁지 지느러미를 제거하였다.

드디어 멸치 몸통 살만 남게 되었다. 그것들을 기름기와 더러움을 씻어 내기 위해서 차가운 어름 물로 살짝 씻어 냈다. 다시 막걸리에 담구고 헹구어 내어 물기를 제거하면 멸치 회 재료는 완성되는 것이다.

막걸리에 담그는 것은 멸치 살이 적당한 막걸리 도수로 인해 소독이 되면서 흐느적거리는 멸치 살이 다소 졸깃해지면서 비린내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하얀 쟁반에 멸치 회를 얹고 촘촘 설은 상추, 미나리, 혹은 쑥갓과 함께 초장을 뿌려 비빈다. 그리고 덤북 젓가락으로 집어서 입안에 넣고는 우물우물 거리면 약간의 비린내와 초장 맛 그리고 허물거리는 연한 살맛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간다. 이때는 막걸리를 먼저 마시고 안주 삼아 멸치 회를 먹기보다 멸치 회를 밥 먹듯이 먹으면서 국 대신 막걸리를 마신다. 왜냐하면 오늘은 이것이 저녁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멸치 회에 많은 야채가 들어가면 멸치 살의 씹는 맛이 사라진다. 그래서 멸치회의 진짜 진미를 맛보기 위해서는 무칠 때 멸치 살과 초장, 그리고 약간의 야채만이 충분하다. 멸치 살을 초장이나 간장에 약간 찍어서 먹으면 멸치 살의 본래의 맛을 알 수 있고 쌈으로 먹으면 또 다른 별미를 느낄 수가 있다. 하나 더 욕심을 낸다면 총총 설은 마늘 혹은 청양고추와 김나는 밥 한 공기 추가하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