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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집 - 겨울배추는 달고 향기롭다

130810 어여차 어기 차차, 동해안 멸치 털기

Hi Yeon 2013. 8. 10. 08:06

 

 

 

130810 어여차 어기 차차, 동해안 멸치 털기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남동해 연안에서는 멸치잡이가 시작된다. 봄 기온이 오는 것과 동시에 멸치 떼들이 태평양에서 형성된 따뜻한 바닷물을 따라 쓰시마 인근까지 올라오고, 3월에서 6월 사이 우리나라 남동해까지 다가온다. 이때부터 멸치잡이 어부들은 바빠지기 시작한다. 특히 남동해안의 어촌 부두인 감포, 기장의 부두에서 그물에 걸린 멸치를 털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가 있다.

 

보통 5-6명이 한조가 되어 먼 바다에 쳐 놓았던 그물을 건져서 부두로 되돌아오는 데 그 시간도 족히 이틀은 걸린다. 건진 그물을 배 간판에다 싣고 부두로 돌아오면 어부들은 멸치 털기 준비에 들어간다. 보통 한밤중에 도착하면 새벽이 되어야 멸치 털기를 시작할 수 있는 데 그때부터 쉼 없이 어여차 어기 차차, 멸치 털기를 하여도 그 날 오후가 되어야 겨우 마칠 수가 있다.

 

먼 바다에서 오랫동안 고된 노동으로 그물을 건진 후 한숨도 자지 못한 상태에서 부두에 도착하고 그리고 멸치 털기를 시작하여 다시 꼬박 하루를 넘기면 아마 보통사람은 파죽음이 되었으리라. 뿐만 아니라 꼬박 12시간 이상을 부두 끝에 서서 온몸으로 그물에 걸려있는 멸치를 털어야 한다. 더욱이 작업 내내 장화를 싣고 그 위에 고무판 앞치마를 둘려야 하고 바닷물에 젖은 두툼한 장갑마저 껴야 한다.

 

내내 차가운 바다 물바람을 맞으며 그물에서 멸치를 다 털어 내면 그들은 이른 봄 날씨의 차가운 기온에도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고 얼굴과 몸은 멸치 파편과 비늘로 가면을 쓰게 된다. 나는 그때 그들의 모습이 마치 바닷물에서 갓 솟아나온 검은 바다귀신 같다고 생각했다.

 

멸치를 오래 동안 쉼 없이 털다 보면 지칠 때도 있다. 그때는 부둣가에 있는 단골 다방에 커피와 어름 물을 시켜 마시곤 한다. 그리고 그때 담배도 한 모금 한다. 그들은 다방 아가씨가 따라 주는 커피 한잔을 소주 한잔 마시 듯 한 입에 틀어넣고 아가씨 얼굴 한번 물끄러미 한번 처다 본다. 그리고 바로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바로 어여차 어기 차차를 서로 주고 되받으면서 멸치 털기를 다시 시작한다. 그물에 많은 멸치가 달리게 되면 그 만큼 터는 시간도 늘어나고 더 힘들지만 그 만큼 그들의 입가에 웃음이 더해지기도 한다.

 

멸치 털기를 마치면 두 명이 바닷물 속 거물 망 안에 떨어진 멸치를 중앙으로 모은 후 그물 바구니로 들어 올려 박스작업을 하는 동안, 나머지 어부들은 멸치를 털어 낸 빈 그물을 다시 배 간판 위로 정리한다. 그 중 졸병들은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고 기타 여러 가지를 정리하면서 배위에서 바삐 움직인다. 대충 모든 작업을 끝내면 비로소 그들은 배 간판에 둘려 앉아 바로 지은 하얀 쌀밥과 생선 반찬 그리고 된장과 김치로 오랫동안 허기졌던 배를 채운다.

 

멸치를 털다 보면 그물에 멸치가 아닌 다른 물고기가 발견되는데 그들은 그 중 좋은 것만 모아서 찌개를 만들고 회를 치기도 한다. 회는 크게 듬석듬석 잘라 된장에 발라 먹는다. 밥은 최고급 쌀로 짓되 절대로 잡곡은 섞지 않는 것이 그들의 철칙이다. 그것은 쌀밥을 먹기 어려운 그 시절 어부 일이 너무 힘들고 힘들어서 밥이라도 내 놓고 최고로 하얀 쌀밥을 먹고 싶었던 심정 때문이었을 게다.

 

어느 날 나는 부두에서 멸치 털기 하는 곳에 서 있었다. 그리고 멀리 튕겨 나가 바닥에 떨어진 멸치 한두 마리를 주웠다. 한두 시간 이런 멸치를 모아서 멸치 회를 한다. 그물망에 들어간 놈들은 신선도가 떨어지고 이놈들이 가장 싱싱하기 때문이다. 그 시절 어린 애들이 이런 멸치를 모아 어른에게 작은 돈을 받고 팔았다. 선원들은 이런 것에 개의치 않았다. 그 후 세월이 가고 그런 애들도 없었다. 나 같이 필요한 사람이 직접 줍곤 했다. 역시 선원들은 개의치 않았다. 좀 시간이 지났다. 그때는 선원들이 못 줍게 하였다. 세월이 이렇게 변했다.

 

나는 주운 멸치를 하나하나 뼈를 발라 멸치살만 모아 막걸리 물에 담근다. 그리고 그 물기를 완전히 없앤 후 하얀 쟁반에 가지런히 놓는다. 상추, 미나리, 고추, 마늘과 함께 직접 만든 초장으로 비빈다. 친구와 둘려 앉아 막걸리 한잔에 멸치회 한 젓가락을 입에 넣으면 그 맛은 정말로 황홀하다. 우리만 즐길 수 없다. 다방에 커피를 시켜 다방 아가씨를 부른다. 멸치회를 먹고 감탄하는 아가씨의 애교에 우리는 매혹된다. 한잔 후 아가씨가 따라주는 커피는 더 향기롭다. 그때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