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수요일, 매주 이날에 학교에서는 Drawing class가 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참가비는 보통 한번에 10달라이다. 이런 수업은 일반적으로 쉽게 접할 수 없는 기회이다. 왜냐하면 실제로 모델이 나오고 관객은 그것을 보고 연필로 혹은 색깔로 그리기 때문이다. 즉 실제 사람의 여러 제스처를 보고 그 순간, 그 모습, 혹은 그 영감을 종이에 표현하는 것이다. 나는 학생신분이기 때문에 무료이다. 그래서 가능한 이날은 그곳에서 그림을 그리곤 했다.
건물이나 자연물 혹은 고정된 정물은 쉽게 마음만 먹으면 접할 수가 있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지 않다. 만약 모델이 전라이면 더더욱 쉽게 접할 수가 없는 것이다. 사실 움직이는 모델은 그때마다 순간마다 감정, 실루엣, 혹은 흐르는 선이 변화되기에, 인체를 모델로 하여 그리는 수업은 그림공부 혹은 실연에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 과정에서 가끔 인생의 깊은 속을 보거나 느끼기도 한다. 그때는 남자 혹은 여자가 아니라 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내가 존경하는 Drawing 교수는 그것을 한 순간에 쓱 훌터서 그려낸다. 그의 그림을 보면 그 곳에 감정과 느낌이 줄줄 흐른다. 가끔 한국의 Drawing을 온라인으로 감상해 보면 정말로 그 묘사는 신기에 가깝웠다. 정말 사실적으로 잘 그렸다고 생각한다. 다른 여러 사람의 그림을 보면 또한 그러 하였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는 내 교수의 그림이 나에게 더 잘 다가온다. 좀 어설프지만 그곳에는 그만의 분위기가 있고 그때의 그만의 감정과 스타일이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제도적, 교육적, 표현적인 차이때문인지는 몰라도 세계적인 작가가 서양에서 나오는 것을 보면 내 생각은 전혀 틀리는 것은 아니라고 나는 본다.
그래서 나는 자주 그곳에 참석한다. 그러나 나는 오늘 그곳에 아니 갔다. 기분이 다운 되었고 이리저리 해보아도 그곳에 갈 마음이 전혀 생기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을 하면 무엇하나?" 하는 허무주의가 발동하였던 것이다. 아마도 그곳에서 만약 기분을 업 했더라면 예술가로의 기질을 계발했을 수도 있으리라. 그러면 그렇치, 나는 평소와 다르게 다운타운의 양조장 그곳에서 맥주 2병을 사서 들고 집으로 일찍 귀가하고 말았다.
우리 학교는 이 도시의 다운타운 중앙에 있다. 예전에는 몰랐는 데 오래 다니다 보니 학교 건물 앞에 맥주를 직접 제조하여 판매하는 상가 겸 술제조장이 있었다. 우리의 옛적 시골 막걸리 양조장 같은 것이다. 용기를 가져가면 2000 cc에 10달라 하고 병으로 사면 500cc 병 하나에 3달라 80센트 한다. 아시는 바와 같이 캐나다는 국가가 직접 술매장을 운영할 뿐만 아니라 지정된 시간에만 판매한다. 나는 이제까지 캐나다에 살면서 그런 줄만 알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술 담을 용기를 들고 와서 이곳에서 우리가 옛날에 막걸리를 사 듯 퇴근시 맥주를 사들고 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도 기분이 다운된 김에 그곳에 가 보았다. 초저녁이라서 그랬나 한산했다. 몇 사람들 틈에 끼어 맥주 2병을 사서 등에 메는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빈 속에 나발을 불었다. 어찌 되었나? 한병에 술기운이 돌아 버렸다. 나이가 들어서, 술을 가까이 한 적이 별로 없다 보니 그랬나? 몸과 마음이 늘어져 버렸다.
모든 것이 다 축 늘어져 버렸다. 어쩌면 중년의 꿀꿀한 이때, 발광을 쳐가면서 벗어나는 것 보다는 간단히 한잔의 술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사실 그것까지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마침 다운타운의 맥주 양조장이 보이는 김에, "에라 ? Drawing 수업이 별 것인가 ? 나도 한번 사 마셔보자" 하는 마음이 발동하였고 나 스스로 그냥 동조를 했던 것이다.
처음 살짝 취할 때는 좋았다. 그러나 젊을 때와 다르게 무엇인가 가슴은 찝찝한 것 같고, 머리는 흐리멍텅해 지는 것 같았다. 마음은 더 텅 비어 갔다. 내침 김에 지하방에 내려가서 설치된 노래방 기기를 틀고 마이크에 소리를 질려 보았다. 그래도 영 아니었다.
다시 방으로 올라왔다. 나는 무심코 방안을 이리저리 돌았다. 그리고 "내가 왜 이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간혹 젊은 시절 더러 그래 본 적도 있었으나, 이때 만큼 심각하지는 않았다. 그때는 젊은 혈기에 괜히 저항할 때였다. 그런 생각이 들다보니 "그리고 보니 지금도 그렇나?" 하는 생각이 퍼덕 떠 올랐다. 즉 아마도 중년혈기 아닌 혈기에 내가 앓기라도 하나, 그래서 괜히 저항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같은 것들이었다.
자꾸 생각해 보아야 뱅뱅 도는 생각, 결국 원점으로 돌아왔다. 해 봐야 다람쥐 체바뀌 도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그래, 그냥 평시로 돌아가자. 평사시와 같이 그냥 열심히 살아가지 멀! 그러면 아마도 중년의 허무주의를 이길 수 있겠지... 내일은 겨울속 늦가을 햇살이 쨍쨍하려나.
무작정 그렇게 하겠다는 것은 지속성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더 붙여 보는 생각에, 남에게가 아닌 나에게 더 적극적으로 살아 가자는 것이다. 여기서 괴테의 말인 "위험하게 살아라" 라는 말이 제격이다. 그의 말을 빌면, 허무주의 세상에 그냥 수동적으로 세월을 보내는 것보다는 내가 내 세상이라도 창조해 가면서 살아보는 것이다. Andr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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