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은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달이다. 이때 밤이면 기온이 뚝 떨어지고 바람은 많이 쌀쌀해진다. 비까지 오면 좀 으시시해지기도 하는 때이다. 붉게 노랗게 물든 가을잎은 이때도 계속 떨어진다. 먼저 떨어진 낙엽은 바닥에서 누른 갈색으로 변하고 쌀쌀한 바람따라 딩구기도 한다. 그래도 옷을 벗어 가면서 나무 가지는 차가운 바람에 우뚝 서 있다. 이런 모습을 매년 보지만 겨울을 알리는 찬기운이 몸에 닿으면 어쩐지 나도 모르게 허전해지고 왠지 안절부절 해진다.
11월 2일이었다. 겨울을 알리는 신고식은 예년과 다르게 혹독했다. 보통 12월이 되어야 눈바람이 몰아치곤 하는 데 올해는 한달이나 빨랐다. 특별복장으로 할로윈 휴일을 하루 보내자 들이 닥친 눈폭풍이었다. 눈도 그냥 눈이 아니라 얼음눈, 우리가 말하는 좁쌀눈 같은 것이었다. 아직 모두들 가을 낙엽을 쓸어 담지도 않았다. 그 위로 20에서 30cm의 눈이 내리니 눈덮힌 거리는 아직 가을잎을 머금은 가을 풍경과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아마도 깊어가는 가을도 몹시 놀랐을 것이다.
나도 놀랐다. 가을이 깊어 가면서 정취와 차가움에 어느 정도 순응이 되었다면 다소 견딜만 하다. 그러나 낙엽도 치우기 전에 눈과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면 중년의 고개를 넘어가는 나도 갑자기 섬뜻해진다. 그 기운에 주눅이 들었나 나는 갑자기 기분이 다운되어 버렸다. 살아가면서 마음이 다운될 때도 더러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중년이라는 세월과 차가움이 함께 갑자기 들이치면 나는 아주 바닥에 떨어지는 기분이 된다.
이때는 가까운 지인이나 고객들과 도시 외곽의 촌마을로 나가서 뜨뜨한 방안에서 오리탕 한상에 둘려앉아 소주잔을 나누며 떠들어 대면 좋다. 소주, 따뜻한 방바닥, 그리고 구수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늦은 점심부터 사무실을 제껴두고 그 곳에 가면 더더욱 좋다. 저녁이 아닌 오후의 시골 가을풍경아래 소주잔은 너무 좋기 때문이다. 시간이 느긋하니 또한 푸근하다.
겨울잠바를 꺼내어 입고 털모자도 뒤집어 썼다. 신발도 목이 긴 것으로 갈아 신었다. 찬기운이 쉽게 내 몸에 닿지 않으니 다소 견딜만 하다. 그러나 한번 다운된 기분은 쉽게 좋아지지를 않았다. 짐에 가서 몸을 풀고 뛰어 보았다. 다소 좋아지기는 하였으나 깔끔하지를 않다.
한번 생각이 다운되면 별의 별 생각이 다 든다. 사람은 왜 사는 지? 나는 왜 여기서 무엇을 하는지? 하는 철없는 젊을 때나 할 수 있는 시시꼴꼴한 원초적인 생각들이다. 그리고 그 젊은 시절의 꽃다운 사랑이야기도 들린다. 지가 무엇인가 되는 듯 군중속에서 헤집고 떠들던 모습도 어른거린다. 그러나 정신을 차려서 둘려보니 이미 겨울은 시작되고 있다. 어찌됐던 나는 그랬다. 다 그런가? 나만 그런가?
11월부터 찬바람과 눈이 오고, 그리고 내년 4월까지 가다보면 정말로 겨울은 일년의 절반이 되는 셈이다. 겨울날씨가 별스럽지, 여기 사람살이는 별일없이, 조용히, 그러면서 바쁘게 돌아간다. 마치 이 캐나다 겨울의 생활은 그렇고 그런, 뜨겁지도 차지도 않는, 미지근한 물과 같다. 올해는 시작부터 다르다. 그래서 올해는, 진짜 그러고 싶지는 않지만, 미리 마음부터 단단하게 다잡고 내 마음을 이 미지근한 물에 푹 담구어 두어야만 할 것 같다. Andrew
'살며 생각하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는 곳을 옮긴다는 것은 (0) | 2014.11.12 |
---|---|
중년남자는 가끔 흐트려지는가 (0) | 2014.11.06 |
가을비에 낙엽이 집니다. (0) | 2014.10.18 |
갑작스러운 작은 횡재 (0) | 2014.05.14 |
유연성을 얻을 수 있는 이민생활 (0) | 2014.0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