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긴 여름방학이 지나가고 드디어 새학기가 시작되는 가을의 문턱에 들어 섰다. 아침 저녁에는 긴팔옷이 필요할 정도로 서늘하다. 그러나 한낮에는 강렬한 햇빛과 청명한 하늘로 날씨는 다소 덥다. 오늘은 8월 28일 목요일, 내가 다니는 미술디자인 대학교(NBCCD)에서 오리엔테이션이 있는 날이다. 이날은 신입생, 재학생, 그리고 교직원들이 함께 모여 서로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교직원들은 학생들에게 학과와 학사일정을 설명하고 학생들은 새학기를 등록한다. 새학기를 알리는 날이기도 하다.
나는 평소와 다르게 좀 깔끔한 옷으로 갈아 입고 학교에 갔다. 오전 9-10시 (서로 인사를 나눔), 오전 10시-12시 (학과별로 학사일정 설명), 12-오후 2시 (학교에서 제공하는 점심을 즐기는 시간), 오후 2-4시 (학기 등록) 순으로 하루가 지나갔다. 전교생을 다 합져 봐야 250명도 안 되는 작은 대학이고 그나마 아직 참석하지 못한 학생들을 감안하면 오늘 모인 학생들은 교직원을 포함하여 200명도 채 안 되었다. 같이 인사하고 이야기하고 점심을 먹고 하는 과정에서 어느 시골의 늦은 여름을 품는 작은 초등학교 같은 아담한 느낌이 들었다. 오후에는 우리과의 신입생과 재학생들이 한교실에 모였다. 교수를 포함하여 20명을 안 넘으니 그야말로 초미니 학과인 셈이다.
미술디자인대학이라는 특성때문에 학생들은 대부분 여학생이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신입생들 혹은 한두살 더 먹은 재학생들이 최고의 멋으로 꾸미고 있었다. 그들의 옷차림이나 분위기가 이제 별스럽게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두해를 보내고 졸업반이 된 나에게 이제는 그들의 모습이 내 눈에도 많이 익는 모양이었다. 여학생들은 대부분 최신식 스타일이었다. 머리 스타일은 코미디에서 나오는 수준이었고 복장은 패션쇼를 하는 것 같았다.
보통 여학생들의 노출의상은 일상적이다. 그러다 보니 몸 깊숙히 새겨진 문신도 쉽게 볼 수가 있었다. 교수뿐만 아니라 많은 학생들의 몸에서 문신을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한 남학생은 신발을 싣지 않은 맨발에 반바지만 입었고 그 위로는 여자들이 보통 걸치는 작은 솔만 걸쳤다. 오늘은 오리엔테이션하는 날이 아니던가. 이러한 화려함과 별스러움 속에 일부 남자교수들 혹은 남학생들이 헐렁한 티와 반바지 차림을 한 것을 보면 그들의 다양성은 유별나다고 할 수가 있다.
학교의 야외 정원에서 늦여름의 강렬한 햇쌀을 받으며 학교에서 준비한 점심을 먹으면서 서로 서로 모여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는 광경을 보노라면 참으로 정겹고 신기해 보였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젊은 그들이 이렇게 한가하고 자유분망하게 그리고 여유롭게 그들의 장래를 열고 있다고 생각하니 부러운 생각마저 들었다.
주립대학이라고 하지만 캐나다의 작은 도시 그 속에 있는 하나의 작은 미술디자인 대학에 들어 오는 학생들 수준이 오직 하겠는가? 큰 도시의 알만한 큰 대학으로 다들 진학하는 데 캐나다의 동쪽지방의 작은 도시에 있는 미니 대학에 들어가서 그것도 미래가 보장되는 근사한 학과가 아닌 미래가 막연할 것 같은 미술디자인을 공부한다면, 이 학생들 수준이 얼마나 낮을까? 하는 고국의 시선으로 보는 이민자분들의 마음을 나는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넉넉하여 어찌보면 쉽게 허무주의에 빠질 수 있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무엇보다도 중요시 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라는 생각을 해 본다. 뿐만 아니라 태초에서 지금까지 예술분야를 선도하는 이 서양세계를 보면서 그 기초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그리고 우리가 다시 바라 보아야 하는 것이 이러한 것들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오리엔테이션을 마감하고 학교에서 준비해 준 작은 선물을 받고는 새삼스럽게 과연 무엇일까 하고 꼼꼼이 챙겨 보았다. 이제는 나도 여유가 생겼는 모양이었다. 전에는 왜 이런 것들을 줘?하고 방 한구석에 그것들을 쳐박아 두었는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쇼핑용 간이 가방에는 마카로니 일회용 컵 2개, 감자칩 작은 봉지, 삼푸셑, 세탁물 비누셑, 입술 크림과 껌, 머리 스타일링 제품, 면도기와 면도용 겔, 커피믹스와 사탕, 얼굴용 물비누와 얼굴미용 팩, 그리고 AXE Messy Look 와 곤돔 등으로 구성된 Orientation Pack, 그리고 물통, 학교에서 발행한 다이어리, 관광 팜프렛과 학사일정표가 들어 있었다.
학생들의 대부분은 타지방에서 와서 이 도시에서 작은 방을 얻어 혼자 혹은 이성과 함께 사는 그들이다. 뿐만 아니라 이 도시 출신이라 하더라도 신입생이든 재학생이든 모두 부모에서 독립하여 산다. 이들의 물건을 통하여 미래에 억메이지 않는 자유분망한 여기 젊은 학생들의 일상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가 있었다. Andrew
'NBCCD 생활 2013-15' 카테고리의 다른 글
디자인 대학교 2014 가을학기를 마치면서 (0) | 2014.12.19 |
---|---|
고대문명이 새로운 나의 옷으로 갈아입고 바람에 펄럭이다 (0) | 2014.11.02 |
봄 햇쌀을 맞으며 전람회를 둘려보시지 않겠습니까 (0) | 2014.05.02 |
그것은 꿈보다 해몽이 더 좋았다 (Making A Tool Box and Presentation) (0) | 2014.04.20 |
기다려야 하는 캐나다 병원 (0) | 2014.03.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