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도시 외곽의 어느 아파트에서 콜이 왔었다. 차를 아파트 정문 가까이에 정차시키고 기다리고 있으니 시각장애인인 우리 고객 중 한 분이 아파트 출입문에서 나왔다. 보통 차를 대기할 때는 내 차를 돌리기 쉽도록 정차한다. 그래서 이날도 손님을 태운 후 쉽게 돌려 출발하기 위해서 내 차는 정문과 조금 어긋나 있었다. 즉 손님이 아파트 정문을 곧 바로 나서면 앞좌석문이 아닌 차의 앞범퍼 부분을 만나게 되는 것이었다.
출입문을 나서는 시각장애인인 그분을 발견하고 나는 순간 "아차" 하고는 조수석문을 정문과 일치되도록 차를 앞으로 조금 전진시켰고, 또한 그분을 위한다고 허리를 당겨 가면서까지 조수석 문을 열어 드렸다. 보통 몸이 불편한 노인분이 탈 경우 나는 문을 손수 열어 드리곤 하였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이때 생겼다. 그분는 조수석 문쪽으로 오다가 갑자기 차가 움직이는 것에 당황했고, 더구나 내가 연 차문짝에 더 놀랐다. 그분은 아파트 출입문을 나설 때 내 차의 위치를 눈이 아닌 다른 감각으로 인식하고 걸어나오는 데 갑자기 상황이 변경되었기에 놀랐던 것이다.
그분이 내차에 타고 나서 나는 여러번 사과를 했다. 그분은 쾐찮다고 하면서 내가 접근할 때는 그 자리에서 그냥 기다려 주면 된다고 하면서 웃음으로 넘겼다. 이때 시각장애인과 대화소재로 하기 어려운 사항들이 자연스럽게 나왔고, 그래서 기회다 싶어 나는 평소 궁금했던 사항을 물어 보았다.
"나의 도착여부와 그리고 내 차의 위치를 정확히 어떻게 아십니까?"
그의 대답이었다. "엔진소리로 안다."
그렇다면 안전하면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위치에 정차하여 조용히 기다리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임을 알 수가 있었다. 그리고 보통 스스로 자동차문을 열고 타는 것이 보편적 개념이므로 도워 준다고 문을 미리 열어 놓는 것은 오히려 앞을 볼 수 없는 분들에게는 위험할 수가 있다는 것도 알 수가 있었다.
그리고 하나 더 물었다. 색깔은 어떻게 아십니까?
그의 장황한 설명이 이어졌다. 요약하면 이러했다. 못 보지만 생각할 뿐이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색깔을 시각이 아닌 다른 감각으로 느끼고 나름대로 생각차원에서 상상하는 것으로 나는 받아 들였다.
마지막으로 방안의 창문에 대해 물었다. 내가 학창시절 시각장애인을 위한 주거계획에서 나는 창문을 보통 통용되는 크기 혹은 그보다 작은 크기로 계획 했었다. 교수님은 내 계획안을 검토하시고는 비록 볼 수 없는 분들이라 하더라도 창문을 통해 더 많은 외부경치를 즐기려고 하니 계획을 다시 해 보라고 하셨다.
그 이후 가능한 시각장애인을 위한 건축물을 설계할 때 외부환경이 많이 유입될 수 있도록 설계하였다. 그러나 정확히 그 이유를 지금도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당신에게 물어 본다."당신의 방안에 큰 창문 혹은 작은 창문이 있을 경우 각각 어떻게 느끼는냐?"하고 물었다.
큰 창문은 햇빛, 소리, 바람, 새소리, 나뭇잎 소리 등 외부의 모든 정보가 쉽게 많이 들어오고, 나는 귀로, 코로, 혹은 피부로 느껴서 나름대로 해석하고 상상한다는 식으로 그는 말했다. 이것은 우리가 책을 읽고 그 상황을 나름대로 상상하는 것과 비슷했다. 책을 읽고 상상하는 것은 직접 보고 느끼는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만약 볼 수 없는 사람들이 평소 습관화된 한 장소에서 계속 머물려야 한다면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이때 외부환경, 특히 자연과의 교류는 그들 삶의 질을 풍요롭게 하리라 생각되었다.
나는 평소 노인주거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그분과의 대화 후 시각장애인의 환경이 노인의 환경과 매우 흡사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노인분들이 늙음에 따라 몸이 불편해지고 그에 따라 한정되고 습관화된 한 장소에 계속 머물려야 한다는 것은 앞을 보지 못하는 분들의 경우와 매우 흡사하다. 보통 노인분들이 "늙고 불편한데 가만히 계시지 돌아다니시려고 하는냐" 하고 핀잔을 받을 때도 많다.그러나 몸만 불편할 뿐 보통사람들보다 살아온 경륜 때문에 오히려 마음은 젊은 사람들보다 더 청춘일 수가 있다.
이를 참고 삼아보면, 노인분들이 머물 수 있는 가장 좋은 주거 형태는 아마도 자연과 교류가 쉬운 전원주택이 아닌가 싶다. 그 중에도 외부환경과 쉽게 교류 할 수 있는 개방형 공간구성, 그리고 조용하면서 정원이 딸린 1층의 작은 전원 주택이 노인분들에게 권해진다. 여기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책을 읽음으로서 아름다운 이야기와 나라를 상상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Andr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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