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가 흔하니 공기의 중요성을 모른다. 숨이 막혀 보아야 그때서야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다. 자기 몸이 아프면 그것이 실제 고통이 되지만, 남이 아프면 알 수가 없다. 안다 하더라도 하나의 사실로만 받아 들인다. 사람이 얼마나 자기 중심적인지를 알 수 있을 때는 이와 같이 흔해 빠진 것과 아픈 사람을 간과할 때 인것 같다.
왼손 가운데손가락과 오른손 집게손가락을 쓸 수가 없으니 답답하다. 그래도 나머지 손가락을 쓸 수 있고 양손을 같이 사용할 수가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무엇을 할 때마다 매우 꿈뜨다. 각각의 손가락은 나름대로 각자 기능이 있는 데 못쓰는 손가락 대신 다른 손가락이 그 역활을 대신 하자니, 시키는 머리는 항상 짜쯩을 부린다. 누가 그 불편함을 알아주냐? 그래도 일을 해야하고, 밥을 먹어야 하고, 샤워를 해야 하고, 눈를 치워야 하고, 운전을 해야한다
사람 손가락이 인류의 번영을 이룩하는 데 결절적 역활을 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소중함을 모르고 막 사용할 때도 있다. 불편함을 알고 나서야 살아가는 데 손가락이 얼마나 매우 소중한 지를 알게 된다. 없어 봐야 그때 확연히 불편함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없으면 없는 대로 또 살아간다.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그리고 형편에 맞추어 잘도 적응하는 것도 또한 사람이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고 하질 않는가.
나는 작업을 하다가 절단기에 두 손가락 끝을 다쳤다. 그래도 일과 작업 그리고 일상생활을 해야 했다. 그래서 두 손가락을 못 쓰니 나머지 손가락으로 해 보았다. 꿈뜨지만 가능했다. 처음은 불편하지만 언젠가는 낫게 되고 설령 영영 못 쓴다 하더라도 차츰 익숙해질 것이다. 사람은 다 살아가게끔 되어 있다. 특히 어려운 환경에도 오뚜기처럼 살아온 사람들이나 긍정적인 사람들은 그 적응이 훨씬 빠를 것이다.
내일이면 4월인데 밖은 얼음과 눈으로 덥힌 시베리아 벌판보다 더 혹독하다. 그래도 그위로 뛰는 사람을 자주 본다. 나는 운 좋게도 내 집 근처에 시설이 좋은 YMCA가 있어서 그곳에서 자주 몸을 푼다. 운동을 좋아하다 보니 손가락을 다쳤지만 달리기는 할 수 있어서 그곳에 가서 달린다. 그런데 그곳에서 정말로 정말로 신기한 사람을 보았다. 자주 운동을 그곳에서 하였지만 내가 관심이 없어서 못 보았는 모양이었다. 즉 손가락을 다친 후 불편을 겪으니 바로 오늘 그 사람이 보였던 것이다. 불편한 내 손가락이 내 마음의 눈을 열게 한 것이다.
탈의실에 옷을 벗고 운동을 준비를 하는 그는 난쟁이다. 난쟁이도 그냥 난쟁이가 아니다. 양팔이 없다. 어깨에서 뻣어나온 팔은 내 눈에는 전혀 안 보인다. 그런데 어떻게 보조인 없이 운동을 할까. 아니 내 생각으로는 옷도 혼자 못 벗을 것 같았다. 답은 그의 턱과 어깨에 있었다. 그 사이에 어떠한 물건이라도 집어 넣고, 집어 내고, 그리고 날랐다. 모서리가 둔탁한 턱과 어깨로 집을 수 없는 수건이나 옷, 혹은 가방은 어떻게 집을까 궁금하였다. 자세히 보니 그의 목에 요상한 기구가 있었다. 작은 활 같이 생긴 물건에 양쪽에 갈고리가 달려 있었다. 목과 턱, 그리고 어깨로 그 활을 잡고 물건을 집어내고 돌리고 하였다. 갈고리는사람의 손가락 역활을 하는 것이다. 활은 우리의 손이고, 턱과 어깨는 우리의 양팔인 것이다.
가방을 메고 와서 옷을 벗고 운동복으로 갈아 입는 것은 그렇게 한다고 하자. 그러면 운동을 어떻게 한다 말인가? 아주 짧지만 두다리가 있으니 돌아다니는 것은 자유롭다. 탈의실이 있는 1층에서 계단을 이용하여 모든 운동기구가 있는 2층으로 올라가는 것은 쉬웠다. 자세히 보니 손과 손가락 역활을 하는 갈고리도 없이 맨몸이었다. 그는 역기에 다가 가더니 턱과 어깨를 이용하여 역기봉의 한쪽을 바닥에 두고 다른 쪽을 들었다. 그리고 미리 들고 온 바벨을 턱과 어깨로 봉에다 집어 넣고 고정했다. 그 다음, 역기봉 한쪽을 턱과 어깨로 잡고, 그리고 들고 내리고 하면서 운동을 하는 것이었다. 이것 뿐만 아니다. 모든 종류의 운동기구를 턱과 어깨를 이용하여 스스로 그리고 자기 방식으로 운동하였다. 물론 운동 준비가 실제 운동하는 것 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였다. 또한 양팔없는 절반의 키를 가진 그가 남의 도움없이 스스로 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그의 모든 동작은 신기에 가까워야 했다.
나는 멀리서 운동기구와 사람들 사이로 새어 나오는 그의 모습을 지켜 보았다. 멀어서 잘 보이지 않는 그의 모습을 놓치지 않으려고 나는 시선을 고정시켜야 했고 확대경을 달아야 했다. 아픈 내 손가락이 내 마음을 요동시키며 꿈틀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이었다. 나는 그가 운동을 마치고 베낭을 어깨를 메고 현관을 나서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갈고리로 이리저리 베낭을 홀치기 하듯 들어 올려 그의 어깨에 얹고는 그리고 그는 유유히 걸어나가는 것이었다.
그가 여기서 그렇게 노련하게 운동을 하는 것을 보면 주기적으로 운동하는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볼 기회가 많았슴에도 나는 못 보았던 것이다. 당해 보니 그때 보였다. 이때 아픈 내 손가락이 "이제 보여" 하면서 내 머리를 쳤다. 손가락의 아픔이 밀려 온다. 아픔이 말한다. 두 손가락을 못 쓴다고 운동을 못해, 작업을 못해, 운전을 못해, 그리고 짜증을 부려, 애라 이놈아, 뻔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기는, 나이살은 먹어가지고. 아파도 싸다, 싸.
며칠 후 시내에서 운전을 하고 있었는 데 그를 발견하였다. 차창넘어 그를 발견하고는 나는 반가웠다. 그는 눈덮힌 시내에서 가방을 메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팔이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키가 아주 작은 것만이 두드려졌다. 문득 양팔이 없는 운동하는 그의 모습이 떠 올랐다.
YMCA에서 운동을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는 분명 정상인보다 더 열심히 사는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눈과 얼음으로 덮인 시베리아 겨울보다 더 혹독한 이 겨울의 거리에서 저리도 싸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분명 그는 범인은 아닌 것 같다. 이 글을 빌어 그가 세상의 모든 영광을 누릴 수 있기를 빈다. Andr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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