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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넘침에 대한 대응

Hi Yeon 2013. 11. 20. 08:38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넘침에 대한 대응

 

Fredericton 다운타운은 Saint John River 끼고 동편을 시작하여 서편으로 펼쳐져 있다. 다시 강변에서 내륙으로 언덕이 지고 언덕 위로 업타운이 형성되어 있다. 다운타운은 강변에 면해 있고 업타운은 높은 곳에서 멀리 강을 굽어 보고 있는 형태이다.

강변과 Ste Anne Point Drive 도로를 사이에 두고 다운타운의 상업중심이 있고 뭍과 강물의 완충지역에는 잔디밭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동편에 다운타운의 오래된 고급주택 지역이 Waterloo Row 도로를 사이로 두고 강변을 따라 자리 잡고 있는데 뭍과 강물의 완충지역에도 잔디밭과 Morell Park 되어 있다. 그리고 잔디밭을 따라 Salamanca Trail 길게 조성되어 있다.

봄이 되어 따뜻해지고 기온이 올라가면서 겨울 내내 쌓인 눈들이 조금씩 녹아 강으로 흘려가면 좋으려만, 세상일이란 그리 순탄하게 되지를 않는 모양이다. 겹겹이 겨울 내내 쌓인 눈은 따뜻한 공기 속에서 서서히 녹는 특성이 있다. 그기에다 겨울의 뚜꺼운 옷와 같이 촘촘히 박힌 숲이 겹겹이 쌓인 눈을 감싸고 있으니 봄이 와도 쉽게 녹지를 않고 오래동안 찔금찔금 눈물만 흘린다.

그리고 어느 봄날 봄비가 며칠 오면 따뜻한 봄비에 쌓인 눈도 견디다 견디다가 없이 한꺼번에 스스로 녹고 만다. 그리고 많은 눈물을 평평한 대지에 동시에 솟아 낸다. 눈물과 빗물이 합쳐져 강으로 모여 드는 , 강은 평평한 대지 사이로 굽이굽이 완만하다 보니 강물은 하류인 Saint John 향해 느릿느릿 흐르게 된다.

물은 불어나는 강물은 세월아 네월아 하고 흐르니 별수가 있나 결국 강물은 뭍을 타고 올라가게 되고, 봄이 때마다 강변에 물이 차오르는 홍수, Flood(넘침) 되는 것이다. 이때 Fredericton 다운타운의 완충지역인 잔디밭에 물이 오르면서 잔디밭이 서서히 속으로 사라지게 되고, 넘침이 심해지면 잔디밭을 따라 길게 뻗은 Ste Anne Point Drive Waterloo Row 마저 물에 잠기게 된다. 어떤 때는 그것도 모자라 불어난 강물은 Ste Anne Point Drive 접해 있는 다운타운 상업중심과 Waterloo Row 접해있는 주택지를 위협하기도 한다.

비가 그치고 눈물도 솟아내면, 느릿느릿 흐르던 강물도 1 - 2주가 지나면서 어느듯 강수면은 낮아지게 되고,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완충지역인 잔디밭이 물밖으로 나타난다. 다시 1주일이 지나면, 언제 그랬나 하듯 예전의 모습 그대로 잔디는 푸른 빛을 발하면서 파릇파릇한 봄날의 햇빛을 받고 있다.

아니? 나무와 잔디가 수생식물도 아닌데 어떻게 물속에 잠겨 2 정도 있어도 예전 모습이네, 참으로 내눈에는 신기하였다. 아니 완충지역에 있는 초목은 아마 수생식물일거야 하고 둘려보고 뽑아 보아도 내집 앞에 있는 잔디와 다를 없었고, 그리고 만약 수생식물이었다면 물이 빠진 더운 한여름에는 말라 죽어야 하지를 않는가?

그래서 한국에 있는 우리의 초목에게 물어 보았다. 전국토는 대부분 경사가 급한 산으로 구성되어 있고 표토는 얇다. 비가 오면 한꺼번에 많이 오고 많은 물이 한꺼번에 경사를 타고 바다로 버린다. 때면 가뭄에 시달린다. 뿌리는 항상 목이 마르다. 그래서 깊이 그리고 넓게 잔뿌리를 만들어서 대지에 남아 있는 조그만한 물이라도 흡혈귀처럼 빨아 당겨야 수가 있다.

살아남기 위해서 몸은 가볍고 키가 작다. 더구나 여름에는 태풍 때문에 몸을 낮추어야 하고, 겨울에는 매서운 추위로 몸을 건조시켜야 겨울을 수가 있다. 간혹 여름 장마나 홍수에 몸이 잠기면 넓고 강하게 빨아당기는구조인 나의 뿌리는 쉽게 썩어 버리고, 결국 나는 죽어 버리지. 그것은 간혹 생기는 일부분의 일이나, 지금까지 대부분은 나에게는 어떻게 물을 강하게 빨아 당겨서 수분을 확보하는냐 그리고 작은 물로 더위와 태양 빛을 어떻게 견디어 내는냐 중요하다.

그리고 다시 캐나다의 초목에게 물어 보았다. 나는 평평한 대지위에 물이 빠지는 두꺼운 사질토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 여름, 가을에는 하늘에서는 뿌리가 마를 정도로 자주 비를 뿌리고, 물은 바닥이 평평하다 보니 급히 흘러 가지 않고 이리저리 고이기도 하여 나는 쉽게 목을 축인다. 겨울에 자주 내린 눈은 뿌리를 추위로부터 보호해 주고 항상 젖어 준다. 이렇게 물이 풍부하니 물을 잔뿌리로 힘껏 빨아 먹을 필요도 없다. 그리고 먹고 싶을 뿌리로 떠먹으면 된다. 그래서 풍부한 때문에 나는 굵고 키가 수가 있다.

이러한 풍부한 때문에 뿌리는 항상 젖어 있기가 쉬웠고 따라서 섞기 쉬웠다. 세월이 흐르고 흐르고 이제는 잔뿌리도 적당하게 절제하고 또한 그것에 대하여 내성이 생기다 보니 얼마간 물에 잠기는 것도 견디게 되었다. 대신 여기는 물이 모자라는 경우는 별로 없지만 간혹 물이 모자라면 나의 혈색은 금방 누렇게 변한다.

경우을 살펴 보면, 하나는 모자람으로 다른 하나는 넘치는 환경에서 오랜 세월을 거쳐 자기 나름대로 삶을 개척하고 적응하여 왔었다. 여기서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모자람은 어떻게든 극복하여 살아남지만 넘침은 초목을 쉽게 죽게 있다는 것이고, 캐나다 입장에서 보면, 넘침은 견딜 있지만 만약 모자라는 환경이 오면 여기의 초목은 그것을 쉽게 감당 한다. 넘침은 모자람에 취약하고 모자람은 넘침에 위험하다.

자기 땅에서 오래동안 뿌리를 뭍고 살아 초목이 이러할 진대, 같은 환경에서 초목과 더불어 오래 동안 살아온 사람들은 어떠할까? 사람도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가는 하나의 생물체로, 오래동안 그곳에서 살아 왔다면 그러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초목과 생리가 비슷할 것이다. 우리라는 한국의 사람도 우리 강산의 초목처럼 모자람은 어떻게든 극복하여 살아 남지만, 스스로 넘침을 조절하지 않는 , 넘침은 우리를 쉽게 망가 뜨릴 수가 있을 것이다.

우리의 역사를 뒤돌아 보면 태생기부터 근대화 전까지 자유와 복지와 권력은 몇몇 일부의 소유였고 대부분의 국민은 가진것도 없이 살아야 했다. 그래서 우리 강산에 있는 초목의 예와 같이 우리의 몸과 마음은 모자람으로 끈질기게 살아 남을 있도록 오래동안 적응되고 변화되어 왔었다. 그리고 근대에 와서 50년이란 짧은 기간 동안 산업화와 복지화를 거치면서 자유, 복지, 권력을 일구워 냈으나 대다수 국민들은 가진자는 가진자 대로 없는 자는 없는자 대로 자유, 복지, 권력에 목말라 하면서, “정신적, 물질적 넘침이라는 물속에 잠기기 시작하였다.

가진 자들은 이러한 커다란 넘침이라는 강물속에 빠져 있고,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그러한 넘침을 쫓아 부나비처럼 뛰어 들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미래를 보지 않고 당장의 넘침을 위하여 서로를 향해 으르렁 으르렁거리고 있다. 그리고 대다수 국민들은 옛날 시절 보다 한층 자유롭고 풍요스러운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들은 최상위를, 출산율은 최하위를 달리는 것을 보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초목이 넘치는 물에 잠겨 있는 것과 같이 우리 모두 깊은 넘침에 이미 잠겨 있는지도 모른다.

서양에서는 여기 캐나다의 초목처럼 우리보다 좋은 환경에서 오래 동안 역사를 지내 왔었고, 뿐만아니라 산업화와 자유화에 따른 넘침의 기간을 200년이상 오래동안 적응과 변화를 하여 왔기에 우리보다 넘침인데도 불구하고 넘침에 대한 피해는 우리보다 적었다.

좋은 예로 우리의 먹을거리에 대하 살펴보면, 오래전 선조때부터 지금까지 오래동안 우리는 작은 먹을거리에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리의 몸은 가볍고 재빨라야 했고 마음은 끈질겨야만 했다. 어떻게든 모자람에 대비할 있는 몸과 끈질긴 마음가짐으로 적응되어 왔었다. 그래야만 살아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근대를 거처 우리는 우리 역사에서 한번도 경험하지 못하였던 산업화를 이루었고 그리고 이제 자유복지 사회의 문턱에 있다. 먹을 거리는 지척에 널려져 있고 칼로리는 넘쳐나고 있다. 잘사는 만큼 미각을 유혹하는 식품도 많아졌고 공장에서 찍어내는 인스턴트 식품은 우리의 식탁을 채우고 있다. 그래서 초목이 물에 잠기 우리는 칼로리에 젖어 있다. 그리고 그에 따른 마음과 정신도 멋도 모르고 넘침을 향유하고 있다.

수천년 동안 칼로리의 넘침에 노출이 적이 없었던 우리 몸이 짧은 기간동안 산업화와 복지화 과정을 거치면서 갑자기 그것에 노출되었다. 그리고 그에 따라 몸도 마음도 칼로리의 넘침에 느슨하여 졌다. 그리고 보면 역사이래 우리는 모자라는 물에 적응하여 왔던 초목과 같이 칼로리의 모자람에 적응되어 왔던 터라, 우리의 초목이 물에 잠기면 쉽게 죽듯이 우리도 칼로리의 넘침으로 인하여 우리의 몸과 정신이 쉽게 망가질 것이란 생각이 든다.

칼로리의 넘침에 따라 우선적으로 나타나는 병폐는 당뇨와 심혈관계 질환이다. 한국과 서양사람의 체중과 칼로리 섭취를 비교하여도 아직도 절대량이 우리는 적은 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당뇨병과 심혈관 관계질병의 발병율이 서양보다 높은 것은 영양학적으로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넘침의 좋은 예가 되겠다.

예로부터 넘침은 모자람보다 못하다고 했던가?” 무릇 적응과 변화라는 것은 오랜 세월이라는 약을 먹어야 넘침에 따른 피해가 없다. 매년 Saint John 강변의 넘침에서도 파릇파릇하게 초목들이 살아 남는 것을 보고는 살아 있는 것들에게는 적응과 변화라는 오랜 세월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단시간에 이루어지는 것은, 그에 대한 많은 넘침의 댓가가 수반되기에, 그래서 혁명이라고 하는가 보다.

그리고 하나 중요한 것은 세월이라는 약을 줄이기 위해서는 가진 자들이 스스로 넘침의 물속에서 변화하여 나오는 것이다. 두가지가 바로 우리 모두가 넘침에서 당당해 질수 있는 길이다. 여기서, “우리가 지금 직면하고 있는 자유, 복지, 권력이라는 넘침을 어떻게 대응하여야 하는가?” 라는 물음에 이것이 답이 되지 않을까 한다.

 July 25, 2012.  Wednesday, Sunny Cloudy Shower, Andr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