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NON G12 AV, Andrew, New Maryland NB, October 13, 2012
단풍이 드는 가을에 고향생각
단풍이 드는 계절입니다. 집 앞뒤 마당은 단풍잎으로 포장되었고, 따사로운 가을 햇빛이 그 위를 비춥니다. 누가 더 붉은 빛을 낼까 내기하는 모양입니다. 오래간만에 혼자 가을 햇살을 등에 지고 아무도 없는 거실에서 떨어진 단풍을 보면서 앰프의 볼룸을 높여 봅니다. 고향의 뒤뜰에 와서 사랑 칸에 앉아 베에토벤의 합창을 듣던 그 젊은 시절로 돌아간 듯합니다.
똑같은 선율이 흐릅니다. 여기가 내 고향 그곳인지 헷갈립니다. 하늘을 보아도, 단풍드는 나무를 보아도 잘 모르겠고, 집 둘레를 보아도, 잔디 위에 뛰노는 아이들을 보아도 잘 모릅니다. 얼굴 위로 내리는 햇살의 따사로움도 그러합니다. 고향 그곳과 다른 무엇인가 있을 진대 꼭 찍어서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냥 눈에 익숙해져 갑니다.
여기 온지 여러 해, 그래서 시간이 지나감에 사람도 따라 변하는가 봅니다. 이웃집과 이웃사람, 그리고 나를 아는 주변사람들이 이제 생소하지도 않고 당연히 그르려니 합니다. 다른 것은 좀 더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다는 것과 그래서 가족과 같이 지내는 시간이 좀 더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바삐 살았다가 이제 여기서 바쁘지 않으니, 저절로 나도 모르게 불안해지는 것도 여기서 느끼는 새로운 점입니다. 별일이 없는 데 말입니다.
주변을 한번 둘러봅니다. 평일 오후와 휴일, 많은 사람들이 도로에서, 공원에서, 그리고 강변에서 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도 가을의 정취를 마음껏 즐기면서 달려봅니다. 달리면서 도시와 공원을 지나고 강물을 건너 가을 숲에 들어서니, 여기는 온통 붉게 물들고 있습니다.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여기가 내 고향인가 하고 또 헷갈립니다.
가을 하늘이 높아지고 살결에 차가움을 느낄 때면, 물들은 나뭇잎은 하나씩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붉은색과 노란색이 있고, 어느 것은 연분홍색이기도 합니다. 단풍이 주변으로 번져 나가면서 내가 먼저이다 하고 경쟁하듯이 떨어지면, 어느 듯 넓은 벌판에는 불에 타듯 원색의 물감들이 흘러내리고 바람에 날립니다. 어느 듯, 바람이 불고 찬 가을비가 내립니다. 낙엽은 도로와 잔디에 뒹굴고, 가을의 붉은색은 갈색으로 변하면서 세월을 안고 사라지겠지요.
나뭇가지들은 옷을 벗은 채 다시 겨울을 맞이하면서 또 다른 봄을 기다릴 것입니다. 올 겨울은 좀 더 인내의 세월과 좀 더 많은 양식이 될 것을 기대하면서 그들은 따뜻한 봄이 오기까지 차디찬 땅바닥을 더 깊게 더 넓게 더듬을 것입니다.
겨울이 오면, 누군가는 하얀 눈으로 덮힌 도시와 들판을 보고 추억에 잠기기도 하고, 혹은 그 위로 하염없이 내리는 눈발을 밟으며 걸어 보기도 하겠죠. 어느 날에는 옷깃을 세우고 눈 위를 총총 걷기도 하고, 어느 날에는 혼자 하얀 긴 밤을 하염없이 보내기도 하겠죠. 그래도 바삐 오가는 촘촘한 도시공간의 차디찬 공기보다는 낫고, 한 줄로만 가야 하는 그때 경쟁사회의 딱딱한 분위기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눈 덮인 정원이 내 눈앞을 가리고 하얀 눈 조각들이 소리 없이 내 눈앞을 채울 때면, 그때는 온기가 도는 따뜻한 거실에서 그것에 어울리는 바이올린 선율이나 피아노 선율을 앰프에 나직이 올려 볼까합니다. 아마도 그것은 그 옛날 찬바람 불던 겨울, 따뜻한 고향집 뒷방에서 누이가 피아노로 쳤던 ‘아드리느를 위한 발라드’ 선율로 변할 것이고, 그러면 나는 이 겨울에도 여기가 고향 내 집인가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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