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고통을 어찌 자식이 알 수 있을까
어제 밤, 지방에 일을 보던 차, 혼자 시골에 계시는 어머님을 잠깐 뵙기 위하여 시골집에 들렸다. 어머님은 나를 보자 “야가 웬일이고” 하면서 내손을 잡고는 놓지를 않으셨다. 홀로 주무시고, 드시고, 그러다 보니 사람 보는 것 자체가 반가웠는지도 모른다. 말 잘 받아주는 막내 아들이 갑자기 왔으니, 또 얼마나 좋으리. 밤새 했던 말씀을 하고 또 하고는, 자정을 훌쩍 넘기고는 조용해지셨다.
다시 아침이 열리고, 어머님은 정성스럽게 한상을 차려 냈다. 어머님은 아버지를 대하듯 내 숟가락에 생선살도 얹어 주고는 가끔 고개를 숙이시곤 하였다. 그리고 갑자기 물 묻은 목소리로 나를 물끄러미 처다 보면서 불렸다.
“보래이… 애비야.”
그래, 막내아들을 보니 기쁘기도 하던 차에, 매일 매일 외로웠고 몸은 아파서 울컥 하셨을 거야. 나는 어머님이 무슨 뜻으로 그 말씀을 하셨는지를 바로 알아 차렸다. 어제 밤 잠결에 신음소리와 뒤척거리는 소리를 문득문득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어머님은 밤이 새도록 끙끙거렸으리라.
7남매의 막내를 두시고 바로 다친 허리는 그 이후로 어머님을 고통으로 몰아넣었다. 그렇다고 방안에서 쉴 형편은 아니었다. 한 달 한두 번의 제사에, 종손의 맏며느리에,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9형제나 되는 삼촌과 고모를 돌보아야 했고, 그나마 내가 어릴 때는 아직까지 삼촌 두 분들이 미성년자였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 씀씀이가 많아졌고, 어머니마저 가정일과 더불어 장날에 콩나물이며 깻잎을 만들어 팔아야 했었다. 또한 집 귀퉁이 칸에서 조그마한 가게를 스스로 만들어 쌀을 사기도 하였다.
7형제 중 6째인 나와 막내를 미성년으로 두고, 아버님은 큰 대가족을 두고 먼저 하늘로 가셨다. 어머님은 이 큰 대가족을 나에게 두고 먼저 가셨다고 하시면서 자주 숨어서 눈물을 보이셨다. 아버지께서 돌보아 주던 삼촌들, 그 많은 사촌들, 그리고 우리 가족들, 이제 어머님이 아버님대신 어른 노릇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 후 세월이 흘려 막내까지 출가를 시키고 이제 어머님에게 남은 것은 몸덩이 밖에 없었다. 몸과 마음, 그리고 가진 것 모든 것을 다 그들에게 퍼주었기 때문이었다.
혼자 덩그런 안방에서 기거하시다 “놀면 안 된다”고 하시고는 계속 일을 하셨다. 그리고 칠순을 넘기자 머리가 깨어질 듯 아파하시어, 머리에는 항상 머리띠를 둘려 매시고는 매일 매일 한 봉지의 약을 입에 털어 넣으셨다. 한번은 “어머님, 이제 허리는 어떠세요?”라고 물으면 “애비야 … 머리가 글쎄 너무 아프니, 허리가 아픈지, 어디가 아픈지를 모르겠다.”고 하셨다.
팔순을 넘기시고는, 이제는 자주 배가 아프다고 하여 두통약과 배약을 한꺼번에 입에 털어 넣으셨다. 그때마다 나도 너무 답답하여 “어머님… 머리는 요...?” 하고 물어보면, “애비야, 이제는 머리가 아픈지, 배가 더 아픈지 모르겠다.” 그러셨다.
아침상을 물리고 나는 “저하고 시내에 나가서 병원에 한번 가보시죠”하고 권해 보았다. “병원 수도 없이 가 보았는데, 그 병원이 그 병원이재” 하면서도 은근히 나하고 다른 큰 병원에 가보고픈 모양이었다. 두세 번 권했지만 역시나 “괜찮아, 애비야…” 하시면서 발을 빼신다.
억지로 어머님을 자동차에 모시고 나는 시내로 향했다. 어머님은 그 아픈 것이 다 어디로 가버렸는지 얼굴은 천사가 되어 도착할 때까지 “야야… 그런데, 애비야…그리고” 하시면서 어머님은 했던 말을 하시고, 또 하시면서 이야기를 이어 가셨다.
병원에 도착하여 수속을 마치고 의사를 만났다. 그 의사 양반은 얼마나 친절한 지, 구수한 사투리를 섞어가며 “어머님… 너무 아파서 어째요, 이 약 드시면 많이 좋아질 거여요. 어머니… 아드님하고 오니 좋지애” 라고 말 하면서 어머니 손을 쥐고는 내게 처방전을 건네주었다.
병원 문을 나서고 약국에 들어서서 약을 주문하면서 어머님은 내내 싱글벙글하셨다. 그때 “애비야.. . 두유 한 박스도 사그래” 하셨다. 그리고는 몸 아픈 것도 잊은 채, 손살 같이 두유 한 박스를 들고는 구부린 허리를 뒤로 하고, 다시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었다.
몇 분 후 어머님은 돌아 오셨다. 친척집이나 혹은 가까운 분들께 들릴 실 때마다 언제나 손에 무엇인가 들고 가시는 분이어서 내심 알고는 있었지만, 나는 어리광부리 듯 내 자동차가 있는 곳으로 어머님 손을 당기면서 “오마님 어디 가셨어요?” 하고 물었다. “애비야… 의사가 참 양반이네, 사람이 그냥 가면 쓰냐?” 하시면서 어느새 어머님은 내 손에 약봉지를 뺏고는 벌써 멀어져 갔다. 그리고 말을 이어셨다 “너도 바쁘재… 바로 서울 올라 가거래… 나는 버스를 타고 갈랜다.”
어머님의 그 완강한 성격을 아는지라 거절은 못하고 나는 똥 마른 놈처럼 낑낑거렸다. 사실은, 혹시나 시골 동네 분들이 막내아들이 어머니 보려 왔더라 하고 생각 없이 하는 소리가 도시에 사시는 큰 형수님 귀에 들어가면, 어머님에게 한소리 할 텐데. 안 그래도 온몸이 이리저리 망가졌는데, 여린 어머님 가슴마저 또 부셔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 때문에 나는 작정하여 몰래 밤에 시골로 왔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일찍 사람들이 움직이기 전 어머님과 함께 시내 병원으로 출발하였다.
그래서 어머님은 또 혹시나 대낮에 막내아들 자동차로 시골로 되돌아가면 동네사람들이 볼까봐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그 마음 들킬까 봐, 횅하게 저러실 게야, 물론 바쁜 나를 힘들게 아니 할 생각 때문이었겠지"라고 생각하다가도 올라오는 알 수 없는 가슴 속의 용트림을 억제를 못하고 계속 낑낑거리고 있었는데, 어머님의 간절히 원하는 듯한 그 가날픈 눈을 보니, 더 이상 고집을 세울 수가 없었다. 지갑에서 돈을 내어 얼른 어머니 주머니에 슬쩍 집어넣고는 가실 때는 제발 택시를 타고 가시라고 신신 당부를 하고는 어머님을 보내 드렸다.
허리를 구부리고 총총히 가시는 뒷모습을 보노라면. 막내아들인 나에게 그렇게 괜찮은 척 아니 하셔도 되는 데 하는 생각에, 나는 그만 참았던 눈물을 솟아내고는 땅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어머님 성격에 택시를 타고 가실 분은 아니지만, 제발제발 돈 아끼지 마시고 한 시간이나 걸리는 버스를 두고 제발 택시라도 타고 가셨으면 하고 생각하다, 나는 흐르는 콧물과 눈물을 오래 동안 훔치지 못했다.
서울로 돌아가는 길 내내, 마음은 천금 만금 무거웠다. 짬을 내어 기분전환을 할 겸 쉬고자 휴게소에 들렸다. 커피 한잔을 쉬엄쉬엄 마시면서 걷고 있는 데, 화장실 앞 광장에서 할머니 한 분을 두고 그 가족들이 말을 댔다. “어머니 어디 가셨어요? 볼일 보시고 바로 여기에 오시라고 하셨잖아요? 찾느라고 얼마나 걱정하였다고요?” 그 할머니는 죄지은 사람 모양 눈만 껌벅 껌벅거렸다. 걱정은 그 사람 입장에서 걱정이겠지. 부모가 가지는 세월의 고통을 자식이 어찌 알 수가 있을까?
나도 장가를 가고 자식 두고 사회생활을 해 본들 철이 없기는 매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어머님께서 혼자 사시게 되자, 건강이 나빠진 나는 어머님을 자주 가끔 찾아뵈게 되었다. 내 몸이 아프다 보니 어머님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고, 그래서 조금씩 어머님이 하시는 말씀에 언제나, “예, 그럼요, 예 알겠습니다, 어머님 말씀이 맞습니다.” 하면서 조금씩 다가섰다. 그때마다 어머님도 속마음을 조금씩 내 비치셨다. 그때서야 했던 말 또 하고, 그리고 또 하시 길래, 자세히 들어보니 할 때마다 조금씩 어감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평생을 대가족의 눈치를 보고 살았고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망가진 몸밖에 없는 데, 마음이라도 편해야 하지를 않겠는가. 그런 마음으로 "세월의 흐름을 붙잡아 드릴 수는 없고, 그렇다고 세월 따라 생긴 아픔을 대신해 드릴 수도 없습니다. 예 어머님, 무엇을 어떻게 하시든, 어머님 마음이 편하셨다면, 그럼 잘 하셨습니다."라고 마음을 재차 다잡으니 훨씬 무거웠던 마음이 가벼워졌다. 다음에는 밤이 늦더라도 어머님 발톱을 깎아 드려야겠다. 아마 전번에 깎았던 것이 많이 자랐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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