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반의 공백을 끝으로 오늘부터 일터로 나갔다. 모든 동료들이 웃음으로 반겼고 나 역시 무척 기뻤다. 하찮은 직업이지만 바깥공기를 마시며 활동한다는 것이 우선 좋았다. 무엇보다도 세상이 내 눈앞에 저절로 펼쳐지는 것이 더 좋았으리라.
십여일 화창한 날을 뒤로 하고 그제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봄비인가 그 봄비. 그래서 그런지,그 축축한 느낌과 서늘한 기운들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아니 시원하였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았다. 대지는 봄비에 젖었고 초목은 본격적으로 푸르름으로 차려 입었다. 모두들 그 봄비가 좋았는가, 굳이 바삐 걷거나 혹은 우산을 쓰지는 않았다. 그래, 오월의 시원한 봄비는 우리를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오전 중간, 북측 도심과 가까운 세인존 강변에 위치한 한 주택에서 콜이 왔다. 그 도로 주변집은 도심에 가까우면서 강변과 숲으로 어울려져 있는 곳이기도 하였다. 나는집 앞에 차를 세웠다. 어린 네명의 애기와 아버지가 올라 탔다. 2살, 3살, 4살, 5살의 연연생 여자애들 같아 보였다. 젊은 아버지는 몰로 가자고 하였다. 아마도 토요일이고 보면 아버지가 애들을 데리고 바람쇠려 가는 것이리라.
가는 도중 애들은 재잘 재잘, 아버지는 연신 그래, 그래, 그러면서 맞장구를 쳤다. 부녀사이이라기보다 친구사이라고 하는 것이 맞았다. 목적지에 도착하여 아버지는 차례로 애들이 내리는 것을 돕고 있었는 데, 이미 내린 2살은 물웅덩이에 발을 담그며 장난을 쳤다. 3살은 자기가 들고 온 쌕백을 축축한 바닥에 질질 끌면서 재잘거렸다. 아버지는 그래, 히히 그리면서 한 놈과 손잡고 애들을 몰면서 몰 입구를 들어가고 있었다.
자주 차를 몰다 보면 넷, 다섯, 혹은 여섯애들을 데리고 나를 기다리는 젊은 부부를 가끔 만난다. 많은 연연생 애들을 동시에 키우는 것은 여기 사회 시스템으로 보면 가능한 일이고 그리고 그리 신기한 일도 더욱 아니다. 하지만 어린 연연생의 애들을 보면 나는 그들이 너무나 신기하여서 내 이목은 항상 그곳에 축 늘어졌다. 그리고 나는 가끔 이어지는 그러한 경험속에서 그들에게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가 있었다.
애들은 보편적으로 자연스럽게 물흐르 듯 무리를 지어 어울려져 갔다. 한놈이 말하고 그리고 자연스럽게 다음사람으로 이야기가 이어져 갔다. 시꺼럽지도 않았고 나이에 구애됨이 없었다. 보채거나 억지를 부리는 것도 없었다. 한애가 말하면 다른애들은 듣고 있었다. 그곳에 그들 나름대로 흐르는 사회 시스템이 있어 보였다. 애들은 차례로 재잘 재잘거렸고 부모는 연신 사이사이 그래, 맞어, 하면서 가끔 잠깐의 설명도 하였다. 애들이 많다 보면 멀쩡한 물병을 뒤집어 흙으로 옷을 비비는 놈도 있었으나 그러한 행동이 부모의 시선을 돌리거나 그들의 재잘거림을 방해하지는 않았다. 그리 위험한 일이 아니거나 상대를 힘들게 하는 일이 아니면 서로 상관하지 않는 그들을 보면 나로서는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들을 보내고 다음 행선지를 향하면서 나는 오월의 봄비와 어울려져 내내 감상에 젖어 있었다. 마침 숲속에 많은 주택들을 스쳐 지나가면서 나는 문듯 친구가 하는 말이 떠 올랐다. "여기 대부분의 주택들은 숲속에 독립되어 있지. 애들을 강아지 처럼 키우는 거야. 부모는 최소한의 안전과 사회적 규범만 제시할 뿐이지. 지성만 사람이지 감성은 거의 동물수준이야."
여기의 학교, 직장, 그리고 사회 공통체 시스템을 생각해 보면 정제된 동물적 감성이 그들의, 애기와 애기들 혹은 애기와 어른사이의, 관계를 이해시켜 주는 기초가 되지 않겠나하고 내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다. 그러나 이것으로 나의 의아스러운 감상은 다소 누그러졌으나 완전히 해소 되지는 않았다. Andr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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