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127 가을단상과 부산여행
날씨가 차가워졌다. 매일 아침 오르는 산이건만 오늘 산길은 특별했다. 등산로에는 낙엽이 가득했다. 노란색에 붉은 빛을 더하니 가을의 깊이를 더 했다. 이른 아침, 나 홀로 낙엽 위를 밟고 간다. 낙엽이 아직도 싱싱한가 보다. 싸근싸근거리는 낙엽밟는 소리가 들린다. 조용한 산속이다. 그 소리가 미안했다.
이미 가을이건만 나는 가을 준비를 안한 것 같다. 하기가 싫었다. 이 가을을 보내면 금방 또 가을이 온다. 준비하지 않은 가을을 허둥대며 보내는 것이 차라리 이 가을을 좀 더 길게 느낄 수 있으리라.
한달 전이다. 가을 초입이면 호박잎이 이슬을 머금고 시들어 간다. 요놈의 호박은 차디찬 서리를 이기며 나무가지를 붙잡고 가을을 이기고 있었다.
“밑에 나무를 받쳐 주어야 할 텐데”
친구의 말이었다. 남의 땅에 자라는 것이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매일매일 그것이 언제 떨어지나 하고 볼 뿐이다. 어느 날 그것이 없다. 주인이 가져 갔을까? 아마도 저절로 땅바닥에 떨어져 온몸이 산화되었으리라. 가을이 깊어가면 반드시 그리 되리라 여겼지만 우리는 그것을 애써 부인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제 아침 등산길에 그놈을 보는 일은 없다.
부산에 갔다. 서울에 큰 누님이, 그리고 부산에 작은 누님과 여동생이 산다. 전번 부산에서 한잔 술을 하면서 제안한 누님의 말이었다
“동생, 우리도 계모임을 만들어 주기적으로 만나자”
그리서 내가 주선했다. 나는 부산에 자동차를 몰고 갔다. 부산여행으로 두 누님과 동생을 태우고 다니기 위함이었다. 자갈치시장, 송도케이블카, 다대포를 둘려보고 마지막으로 다대포 곰장어집에서 한잔 했다.
무슨 그리 말이 많은 지. 형제가 모이면 다 그런가. 나이를 먹으면 자기 말이 많은가? 주로 과거 이야기였다. 좀 서로 들어주면 좋으려만 어른일수록 듣기보다 말을 하려 했다. 과거 이야기, 아끼고 사는 이야기, 고생 이야기, 노년의 허망한 이야기…
그런데 조금이라도 변하려 하지 않는 고집이 보였다. 조선여인네들이다. 조선시대에 가 있는 듯 했다. 물론 현대인으로 소주와 맥주 그리고 곰장어구이로 한 잔을 하지만 모양만 그랬다. 그래 이미 너무 와 버린 인생이다. 누님들은 지금 변하려고 하는 것보다 있는 그대로 사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말을 하다가 문득 누님이 나 보고 역마살이 끼었다고 했다. 내는 여기저기 여러번 옮겨다니며 살았다. 들어보니 그런 것 같았다. 그래도 역마살은 어감이 좀 다르다. ‘떠돌아 다니는 인생’이라고 말하는 것이 역마살보다 듣기가 좋다. 멋드려지게 ‘부초같은 인생’이라고 말했으면 좋았을텐데. 내 그러고 싶어서 떠돌아 다니나?
어쩌면 형제들이 내 인생을 더 모를 수 있다. 시집을 가면 시집이라는 우물에서만 살았으니까 말이다. 한 우물에서만 살면 마음은 한줌이 된다. 그곳만을 안다. 더구나 남자보다 더 봉건주의자이다. 현재 자기를 이끌고 있는 문화와 습관이 진리라 믿는다. 누님이 나 보고 그냥 개방적이라고만 했더라도, 여기 술값을 내가 계산했을 것이다.
전번 모임에는 누님과 여동생 그리고 나였다. 이번에는 서울누님이 동참했다. 셋 여자에 한 남자의 경우는 둘 여자에 한 남자와 달랐다. 셋 여자가 뭉치니 정말로 못 말렸다.
다음날 해운대를 지나 송정해수욕장으로 갔다. 겨울 바다는 조용하고 시원했다. 점심으로 누님이 추천하는 곳으로 갔다. 들깨국수가 내 입에는 별미였다. 들깨는 오늘 뽁아, 오늘 갈아야 제 맛이다. 바로 그 맛이었다. 비빔밥, 김밥, 국수, 만두, 등등 가벼운 점심으로는 최고였다. 점심시간에는 줄을 선다고 하였다.
점심을 먹고 겨울바다를 걷는 것도 좋지만 커피샾에 앉아 겨울바다를 즐기는 것도 괜찮아 보였다. 송정해변이 보이는 커피샆 2층으로 올라갔다. 앉으니 겨울바다가 한가운데이다. 형제들이 둘려 앉아 커피향기를 풍기며 재갈재갈거리는 모습이 그대로 영원히 멈추었으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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