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하시 도루’ <식민지 조선인을 논하다>을 읽고 - 3
조선인의 특성에 대한 보충설명
사상의 고착화와 사상의 종속화는 조선인의 가장 근본적인 특성이다. 이미 1천년동안 일관되어 왔다. 일본인처럼 항상 신기함을 탐구하는 것과 매우 대조적이다. 500년동안 정치 사상을 지배하여 온 유교의 권위가 쇠퇴하면 어떤 사상으로 이를 대신하여 조선인을 지배할 수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으면 조선인의 사상계는 바람에 떠다니는 부평초와 같게 될 것이다.
형식주의, 심미관념의 결핍, 문약, 당파심, 공사의 혼동의 여섯가지 특성은 일본의 통치가 해를 거듭하면 점차 사라질 것으로 기대된다. 일본이 식민지 경영에서 해야할 책무이다. 관용과 위엄, 순종, 낙천성 이 세가지는 조선인의 아름다운 자질이라고 본다. 조선인의 결함과 단점을 씻어내는 동시에 아름다운 자질을 보존하는 일은 적극 장려해야 한다. 조선인이 일본인에게 동화하여 일본인의 장점을 취하기 전에 우선 결점과 단점을 본받아 가장 낮은 등급의 일본인이 될까 매우 우려한다.
유교의 도덕은 정치와 일체를 이룬다는 데에서 특징을 지닌다. 조선사회에서는 예로부터 학문이라고 하면 문학 한 과목만을 의미한다. 학자의 평생과업이란 단지 고등문관시험에 급제하는 것이었다. 조선에서는 예로부터 학문의 자유로운 연구가 생겨나지 못했다. 조선시대의 학문세계는 5백 년 동안 오로지 관학, 관교가 지배했다. 학문을 위한 학문이라든지 진정한 학자의 이상과 생활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었다. 오직 유교 이념에 맞고 그 시대의 정치적인 학문만 존재했다.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조금이라도 원하지 않는 말이 섞여 있다면 낙제시켰다. 정치력의 구속을 피한 학문의 자유로운 연구란 있을 수 없었다.
조선사회는 정치력 일색으로 이루어져 정치 하나로 지탱되고 있다. 매우 원시적이다. 조선이 학문과 종교가 전통적인 정치적 구속에서 해방되는 것이야 말로 조선이 진정한 진보의 가능성을 지닌 사회로 개조되는 첫걸음이다. 이러한 개조를 위해서는 반드시 조선의 교육제도를 개정해야 하고 나아가 대학을 세워야 한다.
조선개조의 근본문제 가운데 두 번째 문제는 정실사회를 실력경쟁의 사회로 만드는 것이다. 정치적 동원만이 우월한 지위를 차지한 사회에서 정치의 부폐는 곧 사회 전부를 부폐하게 한다. 과거시험은 정실교의 세례의식이라고 하겠다. 조선을 실력 경쟁의 사회로 개조하는 순서는 무엇인가? 두말할 나위없이 우선 학교의 수준에 따라 사람의 지식과 기능의 차이를 판정하여 그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일반적이고 기초적인 방법이다.
일본의 조선 식민지 정책의 변경 – 문화정치
1919년 이후 일본의 통치는 문화정치로 변경되었다. 문화정치의 의의는 하나는 정치와 행정의 분위기와 방식이 강압이 아닌 문화적이라는 것이고, 인간의 정신적 물질적 생활의 개선과 향상을 위하여 일본인이 지니 높은 문화로 조선인의 문화를 진전시키는 것을 말한다. 마침내 조선인의 도덕, 학문, 예술, 정치, 경제의 능력을 일본과 평준화하고 조선의 생산력을 일본과 같은 수준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만약 조선에서 문화정치가 성공하여 대부분의 조선인의 지식이 크게 진보하고 상식의 수준이 도약하여 향상되고 나면 조선에서 언론의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
문화정치의 골자는 교육사업이다. 1922년 4월부터 조선신교육령이 반포되어 조선의 소학교, 중학교, 전문학교와 갑.을종 실업학교가 일본 내지의 학교들과 동등한 자격을 인정받았다. 나아가 1924년에는 경성에 조선대학을 세우기로 결정되어 매우 순조롭게 조선의 교육사업은 진전되었다. 교육사업의 결과로 교육제일이 표어가 되어 각처에서 교육열이 유행하여 향학심이 일어났다. 1919년 무렵까지는 조선 중류이상의 학부형들은 예외없이 모두 자녀의 보통학교 입학을 꺼렸다. 그러나 그 이후로 교육열이 유행하여 두 개의 면(한 개의 면은 약 1천호)에 한 개의 학교를 세워야 했고 중등 전문학교도 적극적으로 확대되었다.
조선인이 문화정치에 반항하는 사상으로
일본에는 고유문화란 없다. 일본으로부터 문화를 배우려 하기보다 직접 서양을 본받는 것이 좋다.
현제 일본 문화의 수준은 조선보다 높지 않다. 서양의 물질문화로 본받은 일본문화는 퇴폐적이다.
일본 통치 15년동안 유교정신은 파괴되고 물질적인 나쁜 풍속이 만연하였다.
조선인은 문화정치에 반항으로 조선역사를 날조를 꾀하였다. 조선인 스스로 훌륭한 국가를 건설하고 경영할 수 있는 우수한 역사와 능력이 있음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조선어의 존중과 급속히 발달된 시기였다. 멸시받던 조선어가 일부 조선인 가운데에서 갑자기 조선어를 존중하고, 조선어를 보다 발전시켜 국어로 삼고자 하는 노력이 두드려지기 시작했다. 민족정신의 고조는 국어 존중으로부터 비롯된다. 중등 정도 학교에서 조선어라는 과목은 있었으나 교재는 순 한문이었다. 예로부터 한문을 사용하였고 지금까지 조선어를 경멸하여 부녀자나 무식한 이들만 사용하게 하였다. 옛날에는 한문, 지금은 일본어로 지식계급의 용어 혹은 학문적 용어로 삼았다. 이때부터 조선어는 조선인의 국어이고 민족의 생명이라고 주장하면서 언문의 저술은 왕성하게 발행되고, 또한 조선어의 연구가 조선인 사이에서도 유행했다.
외국어를 하는 것은 신지식인의 표상이었다. 일본어를 통해 모든 신지식과 학문을 배우고 있었지만, 최근 조선어의 발달과 존중과 관련하여 일본어 사용을 기피하고 가능한 조선어로 말하고자 하는 풍조가 삭트기 시작했다.
학교에서의 일본인 교사 배척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정치적으로 생각하고 반일적인 측면으로 몰아갔다. 이성적인 통제에서 벗어나 감정에 휘말려 자신의 불리함을 감수하고 한 때의 쾌감을 얻는 것이다.
조선인의 힘으로 조선 문화를 발전시키고 조선의 경제를 개척하려고 하였다.
문화정치의 폐해로는
첫째 젊은이들이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장점마저 버리고 향락주의에 빠지는 것이고,
둘째로는 교육열이 크게 번져 학비를 충당하기 위해서 조상들로부터 물려 받은 전답을 팔은 무산자가 늘어난다거나 고학생이 되어 뜻을 못 이루고 불랑한 사상에 감염된다는 사실과,
세째로는 조선청년의 질서존중 정신, 즉 국가적 질서, 사회적 질서, 학교의 질서, 가족 질서를 존중하는 정신이 사라지는 것이다.
위글 -1, -2, -3, 3편 모두 ‘다카하시 도루’ <식민지 조선인을 논하다>를 읽고 요약 및 첨언한 것임, 2019년 08월 02일, 한일이 서로 상생관계로 발전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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