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바람 Yeon Dre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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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보내는 나의 에세이

The Architect란 무엇인가

Hi Yeon 2017. 9. 6. 17:50

Moon 부동산 정책 덕분에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내 사무실은 매우 조용했다. 그래서 오늘은 아침을 먹고 사무실을 가지 않고 도서관으로 갔다. 물론 걸어갔다. 집과 국립세종도서관은 걸어가기에는 매우 좋은 여정이기 때문이다. 기름값을 아낄 수 있어 좋고 또한  걸을 때 보는 광경,  걸으면서 느끼는 감정, 그리고 하늘과 땅 사이를 천천히 걸으면서 나모 모르게 저절로 생각나는 인생의 관조가 있기에 나는 차를 두고 걷는 것이다. 세종 청사 단지 안으로 들어서니 한 두 곳에서 건축 공사를 하고 있었다. 공사 중인 건물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마스터 프랜을 짠다는 것, 상세 설계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구나. 더구나 설계대로 실행한다는 것은 더욱더 어렵고." 특히 인문 정치 분야에서 특히 더 그렇다.

 

어느 건축가와 도시계획가가 세종 청사의 마스터 프랜과 상세 설계를 만들었는지 잘 모르지만 청사 단지 주변에 들어서면 왠지 모르게 내 마음은 어설프고 황량하다. 나보다 훨씬 높고 전문적인 차원에 있는 분들이 했겠지만 이것은 아니다는 생각이 든다. 명작은 많은 시간과 노고와 고민이 필요한데 10년 만에 대부분의 청사가 건축되었다. 좀 여유와 세월을 가지고 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종에 있는 모든 청사 건축물들이 겉은 번지러 하지만 속과 내용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이것이 과연 그대로 수백 년을 갈 것인가 하는 우려가 생긴다. 단지 분명해 보이는 것은 수백 년이 지나도 오늘도 진행형이어야 바로 명작이 탄생된다는 것이다. 건물 하나하나, 벽돌 하나하나, 벽면 하나하나, 바닥 하나하나, 구석구석 하나하나 고민을 거듭하여 조금씩 순차적으로 진행하였으면 좋으려 만! 건물마다 개념이 있고 얼굴과 성격이 다 달랐으면 좋으려 만? 그래야만 그곳에 역사가 새겨지고 연륜이 쌓이는데. '완성하고 곧 띁어내고' 하는 우리의 건축문화가 아쉽다. 아니다 다를까? 그렇게도 좋다는 국립세종도서관은 10년도 아니 보내고, 지금 대대적인 외관 교체 작업을 하고 있다. 아니 벌써. 역사를 가지면 못난이도 그만의 멋이 있는데 말이다.

 

"The Great Architect"라고 하면 "조물주 혹은 창조자" 정도로 해석된다. 미루어 보면 The Architect라 하면 고안자, 창조자, 기획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무엇인가를 창조한다는 것은 기술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고 인문, 역사, 사상이 잘 어울려진 과학과 기술이 필요하다. 국가가 그렇고 사회도 그렇다. 회사가 그렇고 개인도 그러하다. 국토가 그렇고 도시도 그렇다. 시스템이 그렇고 관리도 그렇다. 그런 것들을 주먹구구로 그때그때 상황따라 할 수 없다. 마스터 프랜에 따라 정밀한 실행이 있어야 하며 완성 후에는 피드 백도 필요하다. 그래야만 완전에 가까운 무엇인가가 창조되는 것이다. 그래서 The Architect라 하였던가.

 

나는 건축 분야의 건축가이다. 개집을 짓든 100층 이상의 대규모 건축물을 건설하든 반드시 마스터플랜을 만들고 그리고 상세 설계와 실행계획에 의해 순서대로 하나하나씩 만들어 간다. 개집은 개와 개 사회를 알아야 하고 건축물은 인간과 사회를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선으로 인문과 시스템, 하드와 소프트, 등등 모든 것들을 미리 종이 위에 완전히 표현한다. 이것이 설계 도면이다, 그리고 그 설계 도면이 현실화되었을 때 건축물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다음 미래의 새로운 과업을 위해서 과연 이번의 창조 작업이 '제대로 되었나', '부작용은 없나'를 알기 위해서 피드백을 실시한다. 이런 작업이 반복되면서 새로운 건축은 발전되고 그래서 완성도에 가까워진다.

 

건축가가 인문, 사회, 역사, 그리고 인간에 대한 풍부한 이해와 인간을 진정 위한다는 마음이 없다면 그가 창조한 피조물이 아무리 아름답고 위대하다 하더라도 사람이 안주하기에는 부적절한 시설이 되고 만다. 즉 사람을 위한 건물이 아니라 사람 위에 군립하는 건물이 되는 것이다. 건물뿐만 아니라 The Architect가 만든 모든 것들이 그렇다. 그래서 The Architect는 기술과 과학 이전에 인간과 역사에 우선 안목이 있어야 한다. 진정 인간이 되어야 The Architect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시키는 데로만 하는 부분의 기능자 즉 Technician일 뿐이다. 건축물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그렇다.

 

요즈음 북한 6차 핵실험으로 시국이 어수선하다. 언제 안 어수선할 때가 있었나. 1년 전에는 더 심란했었다. 갈수록 더 하다. 아침부터 잘 때까지 하루 종일 주변에는 사회 문제와 정치 뉴스가 왱왱거린다. 귀에 왱왱거리고 눈에 얼른거리니 나 자신도 저절로 혼란스러워진다. 매일 그렇다.

 

정치인, 행정가, 법조인은 나라를 창조하는 The Architect이다. 정치가들은 그때그때 필요에 의해서 종알거리고, 행정가는 이념과 권력에 왔다 갔다 하고, 법조인들은 뼈가 없는 문어발과 같다. 그들은 국가 건축가이다. 국가 마스터 플랜과 상세 설계 그리고 그에 따른 치밀한 실행에는 인간이 없다. 오직 탐욕만 있다.

 

그들은 최상의 The Architect이다. 국회는 표심만 따르고, 정부는 이념에 목을 맨다. 판사들은 어느 줄에 설까 하고 고민만 한다. 자기 실력으로 자격을 받은 판사마저 머리만 영리할 뿐 인간이라는 개념은 없다. 나라를 지탱해 주는 마지막 보루인데 말이다. 마스터프랜과 정밀한 실행이 없다면 건물은 무너지고, 건축에 인간성이 없다면 비록 건실한 건축물이라 하더라고 그 건물은 인간 위에 군립한다. 오래전부터 기술을 천대하였는 오만한 문인들이다. 천한 건축 쟁이도 "건축은 인간이다"라는 말을 생명처럼 여긴다. 정치인과 행정가는 어떤가? 최상의 The Architect라 할 수 있는 판사는 과연 어떨까? 그들을 진정 나라의 The Architect라 할 수 있을까? 

 

 The Architect는 고민을 거듭하면서 마스터플랜을 짜고 설계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내가 설계한 건물이 내구성이 다할 때까지 잘 있어야 하고, 그곳에서 살고 일하는 사람들이 행복하여야 한다. 나는 그럴 자신이 없어 그 업을 애초에 내팽개쳤다. 자존심을 팔 수도 그렇다고 지킬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부동산 중개업자가 더 좋다. 중개업자는 The Architect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