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2일, 우리 7형제 모두 모였다. 맏형님과 둘째 형님은 고향 경주를 지키고, 나머지는 서울, 부산, 세종에 흩어져 산다. 이날은 부모님 제삿날이다. 모두 다 서로 형제가 보고 싶어 고향으로 향했다. 경주 벚꽃은 매우 유명하다. 20년 그때는 제사를 지내고 그다음날 만개한 벚꽃을 구경하기 위하여 경주 보문단지로 갔었다. 오늘 경주에 도착해 보니, 시내 가로수는 벚꽃은 없고 푸른 잎만 풍성했다. 세월 따라 벚꽃 피는 시기도 변하는가 보다.
나는 3남 4녀의 형제에서 여섯 번 째이다. 이번 만은 다 모이자고 내가 우겼다. 그래서였던가,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나는 카메라를 들었다.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다. 39년생인 첫째 누님부터 마지막 62년생인 일곱째 여동생까지 한 줄로 앉게 했다. 그리고 찰각, 맏조카가 그 역할을 대신했다. 자형과 매형들은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무탈하지만, 세월이 흐르니 이렇게 형제들만의 모임이 되었다.
오래전에는 부모님 제삿날에는 어린 조카들도 많이 왔었다. 이제는 그런 일이 없다. 제사라는 것은 씨족의 모임이고 가부장적인 행사이다. 농토를 조상으로부터 대대로 물려받은 가족들은 제사라는 행사로 가족임을 확인하였고 정을 나누었다. 효가 근본인 유교의 역할도 컸다. 세월이 많이 흘렸다. 이제 제사라는 것은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운 형식이 된 것 같아 보인다.
그렇게 세상은 많이 변했다. 가부장적인 농경 유교사회를 지나 우리는 자유경제 자본주의 사회에 와 있다. 삶의 근원이 조상이 아닌 개개의 능력에 달렸다. '농토를 기반으로 하여 씨족과 부족을 잘 유지하고 이것으로 조상을 잘 섬기며 잘 먹고 잘 살아라'라고 하는 옛 유교적인 관념에서 물질이 모든 것을 대신하였다. 자유 경쟁 사회가 되면서 각자 살아가기 바빴고 조상을 잊어버린지도 오래되었다. 옛 가치관이 새로운 가치관으로 변화되고 승화되기에는 우리는 너무 시간이 없었다. 더 잘 먹고살고 그리고 더 물질적으로 잘 살기에만 급급하였다. 조상의 은덕을 많이 받은 사람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어릴 때는 제사는 달랐다. 제사 참가자는 남자였다. 딸은 출가외인이었다. 딸은 당연히 부모 제사에 참석을 하지 않았다. 이 집에 시집을 온 여자들은 제삿일로 분주했다. 좋은 밥을 먹을 수 있다는 바람에 애들은 아버지 엄마를 따라나섰다. 문중에서는 매년 윗대 어른의 제사가 있었다. 문중 산소에서 모시는 고사라는 것도 있었다. 종일 행사였다. 그러나 이제 모든 것이 추억이 되어 버렸다. 나도 변했다. 이제 나는 부모 제사만 참석한다. 그것마저도 간혹 빠뜨리기도 한다.
지금 젊은 세대는 변했는데 늙은 세대는 아직도 옛 물에 젖어 살고 있다. 내가 만든 성을 물려주면 내 자손이 나와 같으리라 하고 생각하고 믿고 늙어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저 산소에 가리라, 그리고 해마다 정성으로 차려진 음식과 술을 받으리라.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방법밖에 없는 모양이다.
제사를 왜 지내는지 알 것 같지만 난 자신이 없다. 그래도 부모 제사를 지내고 싶다. 그러나 내 아내는... 부모 산소를 일 년에 한두 번을 찾아가지만 그 멀리까지 시간을 내어 계속 갈 자신은 없다. 설령 쉽게 갈 수 있는 산소이다 하더라도 나중에 그곳이 풀로 우거지면 길을 잊어버릴 것 같다. 납골당이라고 하더라도 찾아가고 그리고 계속 관리를 해야 하는데, 글세...... 60이 되어가는 나도 이런 생각을 해 보는데, 젊은 세대들의 생각은 과연 어떻까?
제사가 없는 가정에서는 가족끼리 무엇으로 모일까? 아마도 생일로 모임을 가질 것이다. 가족 중 한 사람의 생일로 가족끼리 모여서 잔치를 한다. 제사도 이와 같이 오늘의 즐거움을 위한 날이 되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생일날 같은 제삿날에 고인을 생각하면서 가족을 위한, 가족에 의한, 가족의 파티를 여는 것이다. 제사도 이렇게 변한다면 제사 때문에 힘이 든다는 말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참석 여부도 자유롭고 날짜를 잡는 것도 자유롭다. 꼭 저녁이나 밤에 제사를 지낼 이유도 없다. 생일상 같은 음식과 형식으로 제사를 지내고 차려진 그대로 파티를 여는 것이다. 그렇다면 야외에서도 가능하다. 때와 공간 그리고 형식을 초월한다. 단지 가족이 모여서 즐겁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즐겁다면 오지 말라고 하여도, 설령 바빠도 모두 당연 참석할 것이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모여 정을 나누는 것이 바로 오늘날 모임이요 제삿날이다.
칠 형제가 이렇게 모여서 웃는 것을 보면, 우리 부모 제삿날도 이런 형제들의 파티가 되고 있는 것 같다. 내년에는 좀 더 즐거운 날이 되리라. 그리고 건강한 모습으로 서로를 보고 서로 정을 나누리라. 그런 생각으로 칠 형제의 웃음을 스케치해본다. 단색의 선이 만드는 형제의 웃음은 순수하고 영원하다. Andr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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