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심원 충신 정려 현판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제338호(1995년 3월 6일 지정)
계룡시 금암 1길 7(금암동)
조선 초기 충신 이심원의 정려 현판이다. 이심원은 효령대군의 증손이며 학식과 문장이 뛰어났다. 임사홍이 국권을 자기 마음대로 하자, 성종은 이심원의 충언으로 그를 파직하고 멀리 유배했다. 연산군 때 다시 집권한 임사홍은 갑자사화를 일으켰고, 그때 이심원과 그의 가족들은 처참한 화를 당했다. 중종이 즉위한 후 이심원의 신분은 회복되었다.
정려문은 정면 2칸, 측면 1칸의 건물이다. 정려 내부에 명정 현판 이외에 중수기, 정려기 등 4기의 현판이 걸려 있다. 명정 현판은 2칸으로 나누어져 있는 2기이다. 원래는 엄사리에 있었으나 1980년대 신도시 개발로 인해 이곳으로 옮겨졌다. Andr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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