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바람 Yeon Dreams

Dream & Create 꿈꾸며 창조하다

꿈을 꾸며 창조하다

사설

우리에게 필요한 우뇌와 좌뇌의 평형

Hi Yeon 2014. 10. 16. 11:20

나는 작은 시골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에서 공부를 조금 잘 했는 모양이다. 그때 아버님이 큰도시로 전학을 시켜 주었다. 그 후 도시에서 살면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 시골 촌놈치고 남 다르게 큰도시에서 교육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군에 갔다오고 대학복학하기 전에 많은 시간을 고향에 머물 기회가 있었다. 그때 할 일이라고는 어린시절 친구들과 어울려 소주병 빠는 일이었다. 아침부터 빨 수가 없어 친구들이 노는 곳에 머물다가 오후가 되면 술타령을 하는 것이다.  주로 그때 작은 전파상을 하는 친구상가가 주 무대가 되었다.

 

그곳에 가면 아침부터 삼삼오오 모여 고스톱을 치기도 하고 그러다가 발동이 걸리면 도리짓구땡을 하기도 했다. 나는 그들의 화투패에 참석을 하면 돈을 읽는 것보다는 친구의 핀잔에 애를 먹었다. 너 때문에 내 패가 망쳐진다고 하기도 하고 너 때문에 도데체 화투가 이상한 방향으로 간다고 친구들이 핀잔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는 그들이 하는 것을 주로 보고만 있었다.

 

그 시절 작은 촌구석에서는 나의 초등학교의 많은 친구들은 초등학교 졸업만 하거나 혹은 졸업을 하지 못 하었다. 그때는 먹고 살기가 힘든 시절로서 친구들은 초등학교를 중퇴 혹은 졸업하고 바로 남의 상가에서나 음식점 혹은 작은 공장에 보조로 들어가야 했다. 혹은 어릴 때 부터 배를 타거나 배타는 아버지를 따라 다니는 애들도 많았다.

 

그들이 고스톱을 치는 모습을 뒤에서 유심히 관찰해 보았다. 더하기 빼기도 서툰 친구들이 고스톱은 신기에 가까웠다. 손에서 7장의 화투 중 3장이 빠져나오고 손에 4장이 남았을 때는 이미 그들은 상대의 패를 다 알고 있었고 앞으로 어떻게 전개 될것인가 조차도  다 쾌뚤고 있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더하기 빼기를 머리에 넣고 배우기전 어릴 때부터 청년이 된 지금까지 화투를 밥먹듯이 매일 육감으로만 해왔기 때문이다.

 

도리찟구땡은 다섯장의 화투를 받아서 3장으로 20을 만들고 나머지 두장으로 끝수를 계산하거나 같은 장이면 땡으로 쳐주는 게임으로 참가자 중 가장 높은 사람이 돈을 다 가져 가거나 혹은 계속 돈을 질려대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1,3, 6, 7, 10의 5장의 화투를 받았다면 (도리찟구땡에서는 11, 12는 제외함) 3, 7, 10을 더하여 20이 된다. 그리고 나머지 1과 6을 더하면 7이 되어 이것은 7끝이 되는 것이다. 즉 삼칠장으로 7끝이다. 나는 이렇게 외우거나 더해서 끝수를 내고 그리고 상대의 눈치를 보아 가면서 돈을 질렸다.

 

그들은 내가 하는 이런 방법으로 하지를 않았다. 더하기 빼기 암산이 서툴기도 하지만 이때는 그것은 그들에게는 거추장스러운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일까? 가만히 보니 그들은 화투장 그림들 40장(도리찟구땡에서는 11, 12의 8장은 제외됨) 모두가 머리 속에 밖혀 있었다. 받은 다섯장의 화투그림을 보면 바로 3장을 구별하고 두장만 선택하는 데 그 시간은 보는 순간 바로였다. 그때 참가자의 화투 3장이 화투판에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펼쳐져서 던져지는 데, 이때 그들은 이 화투들을 보고 머리속에 상대편의 손에 남아 있는 화투 2장의 가능의 수를 대충 다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화투를 숫자로 인식하지 않고 그림으로 인식하고 또한  40장 혹은 48장의 화투의 그림뿐만 아니라 그 많은 조합들을 머리속에서 영상으로 보는 것 같았다.  그들은 달을 뜻하는, 예를 들면, 매 2, 국화 9, 풍 10 여부를 모르고  화투를 치는 것을 보면 알 수가 있었다. 눈으로 보고 그것을 머리로 판단해서 손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것이 머리속에 영상되어 머리속에서 보고 바로 손으로 전달되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가 가지고 있을 화투 영상의 조합까지 영상으로 떠 올린다. 그러하니 화투는 신기에 가까울 수 밖에 없다.

 

우리의 인식체계에 rational intelligences and intuitive intelligences 라는 것이 있다. 논리지능와 직관지능이라 표현된다.  전자는 좌뇌(분석적인 인식 analytical congnitive)가 담당하고 후자는 우뇌(통합적인 인식 synthesistic congnitive)가 담당한다고 한다. 그리고 좌뇌는 오른손, 우뇌는 왼손의 영역을 관할한다고 한다.

 

여기서 친구들은 화투를 칠 때 대부분 직관을 사용하는 우뇌에 의존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교육수준이 낮아서 살아 가기 위해서 저절로 우뇌가 발달하였고  좌뇌가 발달되기 전인 어릴 때부터 너무나 많이 화투를 반복하여 치다 보니 우뇌가 우선이 되었고 그래서 화투를 그림으로 인식한다고 나는 본다.

 

TV에서 본 실화이다. 한 청년이 TV에 나왔다. 그는 포카 전부를 한번 보고 그것의 순서를 기억하여 다시 나열하였다. 또한 어떤 복잡한 사진이나 그림을 보고 난 다음에 본 그림의 한구석을 지적하면 정확히 그 곳을 설명하였다. 사회자가 어떻게 아는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이러했다. 

 

"한번 보면 그 영상(이미지)이 머리에 남아 있고 나는 그 영상을 머리 속에서 다시 본다. 머리 속에서 다시 볼 수가 있으니 당연히 알 수가 있지요."

 

"그럼 그 영상이 머리에서 얼마나 오래동안 지속이 됩니까?" 라는 물음에 그는

 

"짧게는 5분, 길게는 1시간까지 남아 있고 그 이후에는 조금씩 사라진다" 고 하였다.

 

그는 어릴 때부터 카드 딜러로 일을 해 왔었다. 이 경우 화투치는 나의 친구들 이야기와 일맥상통 한다.

 

택시운전을 시작할 때의 일이다. 손님이 타면 목적지를 무선통화송수신기로 사무실의 dispatcher(운항관리자)에게 보고 하면 그분은 나에게 바로 요금과 다음 행선지를 말한다. 처음에는 운전하면서 받아 적었다. 꾸물대면서 메모하다 보면 "왜 바로 대답이 없는냐고 dispatcher가 마구 다구쳤다. 그러자 dispatcher가 지시한 행선지가 내 머리 속에서 가물가물거렸다. 금액, 아라비아 숫자, 그리고 도로명이 머리에서 이미 사라지고 있었는 것이다.  나는 할 수 없이 다시 물어 보았다. 그것이 자주 반복이 되면 그때마다  몇십명의 기사를 상대하는 dispatcher의 업무가 마비가 되고 만다. 내가  무선통화송수신기에 말을 하는 동안 다른 기사들은 통화를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실수가  며칠 지속되면 집에 가라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운전을 하면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dispatcher가 하는 말을 듣고 잠깐 기억을 하는 수 밖에 없었다. 일단  "알았습니다 라고 답하고 들었던 소리를 머리에서 다시 재생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 짧은 "알았습니다" 라는 대답으로 3-4초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는 데 머리속에는 그 소리가 가물거렸다. 이 숫자인가?. 아니 저 도로인가? 저 소리인가? 저 이름인가 ? 도무지 그 음성이 재생되지 않는 것이다. 지금은 그런 능력이 조금은 생겼다. 수년동안 먹고 살자고 반복하다 보니 생겼는 모양이다. 이제는 dispatcher의 음성을 듣고 대답을 해도 몇초동안은 머리속에서 계속 울리는 것이다. 대답하고 나서 그때 음성을 재생한 후 그냥 기억하거나 혹은 적기도 한다.

 

고국에서 일을 할 때이다. 나를 지원해주는 실장이 있었다. 그는 고객의 전화번호를 적는 법이 없었다. 그리고 관련규정이나 법을 메모하는 경우도 없었다. 순간 순간 듣고 그냥 자기가 필요한 것만 머리에 저장할 뿐이었다. 필요한 것만 머리에 있으니 규정을 적절하게 빠르게 잘 적용하였다. 규정이 변경되면 머리속에서도 신속하게 새규정으로 대체되었다. 나는 메모하고 규정조문을 펼쳐 보고 판단하는 습관 때문에 항상 규정집을 보아야만 적절한 판단을 하게 되었다. 참으로 불편했다. 고객의 전화번호는 받아 적어야 했고 규정은 메모해야 했다. 실장인 그는 고객의 전화번호를 듣거나 규정을 들으면 바로 머리에 녹음되었다. 이는 어느 순간 어디에서도 신속하게 업무를 수행할 수가 있는 상태라 할 수가 있다. 가끔은 실수를 하지만 그는 참으로 편했다.

 

그 옛날 아파트공사를 전국적으로 지어지기 시작했을 때이다. 요즈음은 동하나에 건축기사 한명이 담당했지만 그때는 수천세대를 짓는 한단지에 기사 한사람이 다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현장에 바로 투입되었다. 수천세대의 고층아파트 설계도면은 어마어마한 분량이었다. 학교를 바로 졸업한 놈이 알기는 무엇을 아나. 그런데 수많은 종류의 두꺼운 설계도면을 펼쳐보니 도면은 수만 아니 수억이 되는 숫자와 치수 백화점이었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물어보면 책임기사가 잘 모른다고 하면 이 얼마나 무안한가? 그것보다는 그들은 그 다음부터는 나를 기사 취급도 해 주지를 않게 된다. 밤새 도면을 펼쳐보고 치수를 외우고 하였지만 어려웠다. 그 많은 것들은 외워서 될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설계업무를 하게 되었다. 3차원의 빌딩설계는 설비, 전기, 소방, 구조, 건축마감 등등 많은 분야의 도면이 필요하다. 수만개의 치수가 퍼절같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 모든 곳을 다 아울러서 공간을 구성하고 그것을 치수화한다는 것은 오랜시간이 필요하다. 설계를 직접 다 완수하게 되면 그 많은 도면이 종이위에 그려지는 데 그것이 다 머리속에서 나온다. 한사람이 설계하면 한사람의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다. 만약 오너가 빌딩의 한개의 칫수를 바꾸어 달라고 하면 머리속에서 퍼절과 같이 서로 엮인 숫자의 조합들을 다 바꾸어야 한다. 설계를 다하고 공사 진행동안에는 설계자는 도면이 필요가 없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그의 머리에 도면이 다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들 또한 외워서 될 일은 아닌 것이다.

 

열거된 예들는 현장에서 직업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수 없이 반복하다 보니 발달된 직감적 사고라 할 수가 있다. 우뇌가 주로 활동하는 영역이다. 그것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아주 일부분에 해당되는 살아가기 위한 현장의 단편적인 예이다. 대부분의 세상과 그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좌뇌의 영역에 있다. 그냥 주는 것을 보고 듣고 먹고 느끼고 하면서 산술적으로 판단하고 이성적 행동하며 분석적으로 따져 가며서 내가 의도하는 것이 아닌 세상이 주는 것을 수동적으로 받아가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한손만 쓰는 오른손잡이인 것처럼.

 

살아가는 우리 세계에서는 중요한 하나가 바로 평형이다. 그중 우리의 두뇌의 평형은 인간을 정말 인간답게 만든다. 만약 한쪽으로 치우치면 인간성 상실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좌뇌가 우선이 되면 참으로 매마른 인간 세상이 된다는 것이다. 직관과 감성이 없는 이성적 분석능력으로만 세상이 돌아간다는 것이다. 마치 컴푸트나 기계같은 것이다. 모든 문제는 그곳에서 싹이 튼다. 반인간적 범죄가 그것이다.

 

기원부터 2000년의 세월이 흘렸다. 문화가 발달하고 기계문명이 우리를 편리하게 한다. 지금은 정보통신의 발달의 축에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오른손에 해당하는 좌뇌에 많이 의존하였고 교육도 그곳에 집중되어 있었다. 사회전반의 구석구석도 마찬가지이다. 산업기계문명과 자본주의를 발달시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공짜는 없는 법이다. 감정과 직관이 없는 세상은 살벌하기만 할 것이다. 우리의 백화점식 암기교육은 그러한 왜곡의 최전선에 있다.

 

산업과 자본주의는 무수한 정보와 기기 그리고 영상을 솟아 낸다. 우리는 매일 모니터와 스마트폰으로 보고 듣고 한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또 생존을 위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고 사람은 다시 새 것으로 달려 든다. 이것들은 자본과 권력과 생존을 위하여 다 급조된 것들이다. 우리 모두들은 그런 것들을 눈으로 귀로 피부로 받아 들이기만 하지 조금이라도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은 없다.

 

좌뇌50 대 우뇌 50의 균형은 이미 많이 깨어진지가 오래 되었다. 아마도 현재는 70대30 혹은 90대10일 수가 있다. 우리 모두 오른 손잡이고 왼손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는 것을 보면 알 수가 있다.  차이가 클수록 인간성상실이라는 문제에 더 심각하게 직면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미술학교초기에 내가 제일 먼저 배운 것이 바로 이것이다. 좌뇌와 우뇌의 역활을 설명하고 왜 우리가 예술활동에 한층 더 적극적이어야 하는 지를 학교에서는 강조하였다. 즉 예술활동은 좌뇌의 영역이어서 직관능력을 발달시키는 역활을 하며 그래서 좌우뇌의 불균형을 바로 잡아주는 역활을 한다는 것이다. 산업과 자본주의 그리고 기계문명이 그만큼 중요하다면 예술도 똑같은 양으로 중요하다. 예술이 중요하고 예술학교가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모든 분야에서 눈과 귀와 같은 육감으로 받아 들이지만 말고 스스로 만들고 창조해 가는 것이야 말로 좌우뇌의 바란스를 유지해 갈 수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수만년전 동굴벽화에 많은 그림들이 오늘날까지 전해온다. 동물과 같은 동굴에서 살아 왔어도 인간이기에 하는 것이 바로 예술활동이다. 예술활동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으로 그래서 무척이나 중요하다. 우리의 인간성 회복과 유지가 바로 그곳에 있다.

 

우뇌 활동 증가와 직감력은 나이가 들수록 중요하다. 우리의 노년에 한번 접근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가장 좋은 실천방법은 예술활동이다. 예술활동이라고 하면 거창하게 들릴 수가 있다. 글쓰기, 그리기, 노래하기, 작곡하기, 꾸미기, 만들기, 등등 무수히 많다. 무엇이든 스스로 창조하고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무엇인가에 심취되어 스스로 만들어 간다면  그것이 바로 예술활동이고 또한 창조인 것이다. 모든 것들이 우뇌의 영역이다. 그것을 하는 것은  하나의 자아실현과 같은 것이다. 우뇌의 활동이 증가되면 노년의 만족감과 행복감은 저절로 온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오늘부터 오른손은 두고 왼손을 주로 사용해 보면 어떨까 한다. Andr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