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커플이 탔다. 남자는 머리와 수염이 하얗게 쉬었고 언득 보기에 내눈에는 할아버지로 보였다. 여자는 모자를 섰고 중년으로 보였다. 옷차림은 수수하였다. 모두 손에 손에 쇼핑비닐봉지를 들었다. 나는 그분들에게 인사를 하자, 할아버지는 내 옆좌석에 앉았고 중년부인은 뒤좌석에 앉았다. " 참 요상한 한쌍이다." 싶어 옆으로 슬쩍 눈을 돌렸다. 흰 수염에 긴 흰머리를 가진 노인이었는 데 가까이 보니 생각보다 젊어 보였다. 내가 처다보니, 그는 나의 궁금증을 짐작하였는지 나에게 미소를 보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의 나이를 물었다. 그는 웃기만 하였고 대신 뒤 좌석에 앉은 중년 부인이 얼굴을 나에게로 쭉 내밀면서 한번 추측해보라고 하였다. 나는 곰곰히 생각한 후 70이라고 말했다. 부인은 그의 나이는 67이라고 하였다. 비슷하게 마추었나보다 하고 있었는 데 여자분이 자기는 몇살인지 한번 마추어 보라고 하면서, 모자를 벗고 얼굴을 내 앞에 또 쑥 내밀었다. 내민 얼굴을 자세히 보니 피부가 탱글탱글하고 매우 젊어 보였다.
매우 고민이 되었다. 남자가 67이라면 그냥 보기에는 여자는 60은 넘었으리라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모자를 깊이 덥어 썼어 자세히 알아보기 어려웠지만, 남루한 치마차림에 쇼핑비닐백을 들고 아무렇게 입은 옷차림 등으로 보면 누구든 그렇게 생각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내민 얼굴을 자세히 한번더 훌터보니 생각보다 많이 젊었다.
느끼는 대로 50이라고 하였다. 여자는 실망하였는지 눈을 홀기면서 자기는 48이라고 하였다. 나는 변명하듯 "48이나 50은 같다."고 하였으나 그녀는 50이란 숫자 자체를 크게 느낀 모양이었다. 보이는 대로 말하자면, 할아버지와 아주마인데 분위기는 마치 부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감히 커플인냐고 물었다. 여자는 시원스럽게 "그렇다."고 하였다.
차는 그들이 사는 북쪽 몰이 있는 어느 아파트에 도착하였다. 그들은 서로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쇼핑비닐백을 같이 들고는 차에서 내렸다. 나는 바로 되돌아가지 않고 그 자리에 정지된 채 그들을 물그러미 처다 보았다. 그들은 한손은 쇼핑 비닐백을 들고 다른 손은 서로 잡은 채 아파트 안으로 빨려 들러갔다.
"정말 재미있는 커플이구나! 아니 신기한 커플이야! 머리 풀어 해치고 옷차림은 자다 나온 것 같고, 마치 창고에서 뒹구는 늙은 고양이 한쌍 같아. 근데 그렇게 좋아, 서로 손을 꼭잡고 쪽쪽 빨고 다니게... ... 그나 저나 서로 인생의 가장 큰복이야."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수퍼스토아를 지나치게 되었다. 그때 정장으로 차려입은 한 할아버지가 서류가방과 간단한 비닐쇼핑백 하나를 들고 나를 불렸다. 아마 70은 되었는 것 같았고 젠틀해 보였다. 그리고 처음 보는 분이었다. 그는 나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보고는 그의 아파트 위치를 나에게 주었다. 그곳에 도착하자 그는 자기 아파트까지 물건을 들어줄 것을 요청하였다. 물건은 달랑 서류가방과 비닐백 하나이니, 무겁거나 부피가 큰 것도 아니고 남에게 부탁할 정도도 아니었다. 바쁜 시간대였으나 나는 흔쾌히 승락했다.
나는 그의 물건을 들고 그의 뒤를 따랐다. 아파트 입구부터 그는 친절하게 문도 열러주고 나에게 안내까지 하였다. 같이 엘리베이트에 들어갔다. 그는 친절히 "되돌아갈 때는 L 보턴을 눌려야 한다."고 두번이나 말했다. 엘리베이터는 노인이 사는 6층에 곧 도착했다. 우리는 길고 좁은 복도로 걸어갔다. 그는 나이탓인지 걸음이 부자연스러웠다. 그래서 자연히 내가 앞장 서게 됐다 . 복도의 양옆은 유유빛 전등들이 병정처럼 가지런히 줄을 지어 있었다.
복도끝에 이르자 그는 오른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자기집임을 알려주었다. 그의 집 608호 문을 열자 아담하고 깨끗한 거실이 나타났다. 매번 손님 요청으로 그들의 집을 방문할 때마나 느끼는 그 냄새, 여기도 그냄새가 났다. 설명하기 힘든 꿈꿈한 실내의 공기 냄새, 오래 밀폐된 퀴퀴한 냄새, 혹은 혼자 사는 노인네 냄새 같은 것이었다 .
거실에는 선반들이 나란히 있었고 오래되고 많은 책들이 꼿혀 있었다. 그리고 벽마다 이상한 그림과 사진액자가 걸러 있었다. 중국기와 사진도 있었고, 일본무사 그림도 있었고, 팔에 한문을 문신한 남자의 사진도 있었으며, 기괴한 인물사진들도 있었다. 그는 친절히 나를 인도하며 설명을 덧붙였다.
"바로 되돌아가야 한다." 는 나의 본분을 잊어버리고 나는 차근차근 그의 설명을 들었다. 나는 그에게 "무엇을 공부했는냐?" 고 물었고 그는 "예술과 문학을 전공했고 신학도 공부하였다." 고 했다. 문득 나는 거실 중앙에 걸려있는 그림액자 하나에 다가 갔다. 그 그림 중앙에 큰 글씨로 "I am that I am"이 있었다. 너무나 간단하면서 처음 대하는 문장이다 보니 호기심이 생겨서 나는 그에게 그 뜻을 물었다. 한참 설명을 들었으나 그 뜻이 명쾌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다만 그것이 God을 뜻한다는 말만 귀에 들어왔다.
이윽고 빨리 되돌아 가야 한다는 생각에 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뒤로 하고 문을 나섰다. 복도를 나서서 엘리베이터를 타고는 나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노인들이 궂이 나를 자기 집안까지 보여 주고 설명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보니, 이 경우 나는 쉽게 짐작이 갔다.
"혼자 사는 신사 노인 양반일거야. 필시 사람이 귀해서 나를 잠깐 붙잡아 두고 싶었을거야. 그래서 나에게 물건을 들어달라고 도움을 청하였으리라." Andr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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