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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겨울 고국으로 돌아와서

이제, 니 엄마 아이가?

Hi Yeon 2016. 1. 23. 13:14

이제, 니 엄마 아이가?

 

고국으로 돌아왔다. 10년전 멀쩡한 설계사무소 문을 닫고 가족을 데리고 캐나다로 이민을 갔었다. 물론 그때 모든 살림살이를 캐나다로 가지고 갔었다. 고국으로 돌아온 지금 공항에 서 있는 내 모습은 허름했으며 가진 것은 달랑 베낭 하나와 가방 하나였다. 살던 집과 살림살이를 모두 처분하고 대학생인 애들을 캐나다에 두고 떠나야 했다. '혼자이다'는 것과 '모든 것을 비워야 한다'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물건이야 버리고 없으면 그냥 살면 되지만 두고 온 아들을 마음에서 때어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데리고 갈 때는 무슨 생각이었으며 이제 홀로 지만 살겠다고 고국으로 되돌아가는 이 아비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래, 애들은 홀로 서기를 좀 일찍한 것이다' 라고 자위하면서 내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제일 먼저 머문 곳이 서울이었다. 둘째 누님이 서울에서 산다. 자형은 고등학교 교장으로 몇년 전 은퇴하였고 지금은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한가롭게 여가생활을 하고 있다. 손자를 돌보는 것이 누님과 자형의 큰 일 중의 하나이다. 노는 방이 있고, 식탁에 숟가락 하나 더 놓으면 된다. 그것보다는 같이 놀 자형과 함께 이야기할 누님이 있다는 것이 더 좋았다. 누님 집이 아닌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먹고 자고 무위도식했다. 3주 동안 서울 시내를 나가지 않고 집에서 놀고 먹고 이야기만 하였다. 은퇴한 자형은 테니스를 매일 친다. 낮에는 자형과 운동을 하였다.  나, 테니스 메니어가 아니던가?. 매일 매일 그 좋아 하던 테니스를 치니 흐르는 시간을 잊을 정도였다. 테니스 동호인은 아주머니, 아저씨, 그리고 은퇴자들이며 그들은 항상 정답고 다정하게 나를 대해 주었다. 커피도 타 준다. 자주 점심도 같이한다. 운동을 끝마치고 집에 가면 누님이 기다린다. 그리고 밥상이 나왔다. 뭐, 숟가락 하나 더 놓으면 된다지만, 내가 무슨 큰 일을 하고 다닌다고 앉아서 때마다 밥상을 꼬박꼬박 받는다. 재잘대는 입 하나 더 있으니 누님은 좋단다. 나이들어 형제가 같이 있으니 말이다. 몸 보신하라고 찰밥과 단술를 만들어 주고 토종재료와 무공해식품을 골라 여러가지 음식들을 선보인다. 

그 다음은 부산으로 내려 갔다. 셋째 누님과 여동생을 만났다. 부산 누님도 역시 은퇴생활을 하고 있으며 가끔씩 손자를 돌보기도 한다. 많이 마음적으로 여유로웠다. 부산 서면에서 누님, 나, 여동생 이렇게 세 형제가 돌솓밥 정식을 하면서 핏줄의 정을 댔다. 함께 커피를 마시고 공원산책도 하였다. 부산에서는 여동생 집에서 머물렸다. 여동생이 해주는 밥을 먹으니 역시 너무 좋았다. 일주일 동안 부산 시내와 항구를 돌아 다녔다. 떠나는 날에 여동생이 '오빠 옷이 이게 머꼬?' 하면서 목도리와 잠바를 하나 사왔다. 추운 캐나다에서 지낼 때 나는 목도리를 잘 안하는 편이었다. 한국의 겨울, 거의 모든 사람들이 오리털 파카를 입고 목도리를 걸치고 있었다. 길고 설렁한 모가지에 얇은 점퍼하나 걸친 내 모습이 너무도 초라해 보이고 추워 보이는 모양이었다. 여동생이 '보는 사람이 너무 춥다'고 하였다. 남쪽지방인 부산도 가끔 매우 추웠다. 부산을 떠나면서 동생이 준 목도리를 했다. 그 목도리가 무척이나 아늑하고 따뜻했다. '오빠, 그렇지 보는 내가 좋다'고 하면서 여동생이 웃었다. 나중에 같이 일박 여행을 함께 하자고도 한다. 그리고 또 언제든지 마음 내키면 오라고 하고는 누님과 동생이 내 가슴을 뚝뚝 친다. 여행 중 동생이 준 목도리는 항상 내 목에 걸쳐져 있었고 지금도 나는 잘 때 빼고는 목도리를 항상 두른다.

부산에서 고향인 경주로 향했다. 첫째 누님이 그곳에 산다. 큰 누님은 내가 태어난 해에 시집을 갔고, 그후 여동생이 태어났다. 팔순이 가깝다. 택시를 타고 시골 누님 집 앞에 내리니 '니 꼬라지가 머꼬?' 하면서 누님이 나를 덥썩 안고는 퍽퍽 운다. 내가 고개를 들고 '꼭 어머니 같아요' 하니 누님은 '이제, 니 엄마 아이가?' 하면서 울다 웃는다. 그렇고 보니 누님은 흡사 엄마였다. 목소리도, 가슴품도, 눈빛도 어머니와 똑 같았다. 누님과 자형 두분이 여기서 사신다. 도시와 좀 떨어진 단독 주택이니 살기에는 너무 좋아 보였다. 자형이 처남 왔나 하면서 반겼다. 엎드려 큰 절을 올렸다. 아버지같이 자상하다. 몇 술 이야기가 흐르고 밥상이 나왔다. 누님이 나에게 소주 한 잔 권한다. 이때다 하고 자형이 연꺼푸 소주잔을 비운다. Andr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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