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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겨울 고국으로 돌아와서

희열을 느끼는 추억

Hi Yeon 2016. 1. 24. 14:19

희열을 느끼는 추억

Donde Voy (Tish Hinojosa)가 흐른다. 미국 국경을 넘어 입국한 불법 멕시코 이민자의 애환을 그린 노래이다. 10번, 20번, 그리고 계속 듣는다.  첫 음율에 나는 젖었고 계속 반복하여 들으면서 빠져 버렸다. 애처로운 가락과 목소리는 이국과 고독을 말한다. 그것은 차가운 기운이 되어 뼛속 깊이 스며  들었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나도 모르게 작은 웃음을 짖는다. 가슴이 조금씩 북바쳐 오르고 마음 깊은 속에서 조금씩 희열을 느꼈다. 왠지 모르게 뿌듯하고 이상하게 가슴이 따뜻해지기도 한다.

캐나다의 겨울 긴 밤이었다. 눈덩이가 하얗게 세상을 덮고 있었다. 평일에는 학교에서 디자인하고 공부한다. 노는 날에는 택시를 몰고 하얀 세상을 질주한다. 저녁이면 밤 늦게 책상에 앉아 글 쓰고 그림을 그린다. 그렇게 바쁘게 내 몸을 돌리고 몰립시켰지만 가슴 속으로 깊숙히 파고 드는 고독은 어쩔 수 없었다. 텅빈 가슴을 메우기에는 내 자아는 모질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달렸다. 매일 매일 1시간씩 달렸다. 배가 고파도 잘려나간 위장 때문에 먹을 수 없었다. 눈 덮힌 산을 달리고 산책길을 마구 달렸다. 육체가 피곤함을 느끼고 덩달아 정신도 맑게 된다. 그제서야 나는 마음의 평정을 찾고 다시 책상에 앉아 쓰고 그린다. 어느덧 밤이 깊어가고 내 육체는 침대 위에 쓰려진다. 아침은 어김없이 왔다. 망각은 참 편리했다. 어제 밤의 아픔은 어느새 잊어 버리고 다시 훌훌 털고 아침을 맞이 한다. 애들을 보살피며 학교로, 작업실로, 그리고 길 위로 나선다. 

이 노래를 그때 들었더라면 어떠했을까? 역시 10번, 20번, 아니 그 이상 계속 들었으리라. 그리고 고독이 틀어막고 있는 내 가슴을 어쩌지 못해 헉헉그리고 낑낑거렸으리라. 그것도 모자라 벽과 침대가 만나는 구석에 머리를 처박고 숨을 몰아쉬었으리라. 그리고 하얀 밤 촛점 잃은 눈으로 멍하니 내리는 눈덩이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문을 박차고 나가 맨발로 눈길 위를 달렸으리라. 그때 '술 한잔 해' 하고 머리를 풀어 해친 내 자아가 나를 꼬시고, 나도 모르게 눈이 뒤집히면서 술가게로 달려가 독주 한병을 사서 눈길에서 나발을 불며 눈 덮힌 길 위에서 허우적거렸으리라. 그래도 아침은 어김없이 왔다. 가슴의 구멍이 더 커졌음을 알고는 침대 바닥에 벌겋게 부어 오른 얼굴을 찟어져라 찧고 비벼댄다. 회한의 신음소리를 내며 일어나서 유혹에 넘어간 칠칠찮은 내 자아을 복수한답시고 목구멍으로 차가운 물 한 모금 허락치 않고 이른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눈덩이 속에 머리를 처박고 말라 비틀어진 내 입술을 젖신다.

이국에서 맛을 본 고독은 이렇게 특별했다. 아우성을 치는 것도 가슴를 쥐어 짜는 것도 약이 못 되었다. 누군가를 찾아 가는 것도 누구를 부르는 것도 어려웠다. 그것이 고독인지 조차 몰랐다. 그저 가슴 속의 깊은 곳에서 이상한 고뇌같은 것이 용솟음치고 움틀뿐이었다. 마음을 잡고 주변을 둘려보아도 왠지 눈에 보이는 것은 죄다 어색하기만 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할 수 있는 것은 없어 보였다. 이때는 철저히 더 고독해지는 것이다. 텅 빈 이방인의 도시에서 내 몸과 마음을 더 바삐 돌리면서 내가 하고자 하는 것에 몰입하는 것이다. 선택의 여지는 없다. 이것 밖에 없다. 그러자 마음이 조용해지면서 생각은 깊어지고 마음은 촉촉해졌다. 곧 바로 글쓰고 디자인하고 그림그리며 공부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국에서 고독이라는 놈이 그렇게 나를 힘들게 하였지만 나에게 여유와 배려, 용기와 지혜를 주었으며 몰입할 수 밖에 없는 갖힌 울타리를 쳐주었던 것이다.

나는 지금 돌아온 고국에서 그 노래를 듣는다. Donde Voy,  Donde Voy, 난 어디로? 애절픈 가락이지만 내 입술은 누가 볼까 봐 몰래 웃음으로 조금씩 얇게 찟어지기 시작한다. 그때 캐나다에서 고독의 경험이 이제는 희열을 느끼는 추억이 되기 때문이다. 고독을 깊게 오래 겪어 보아야 그 맛을 안다. 이제 조금씩 단맛으로 변함을 느낀다. 좋았다고, 쓰지만 달꼼했다고, 인생을 살면서 한 번은 해 볼 만 했다고, 내 인생을 더 길게 알차게 만들었다고. 그렇다. 대충 편하게 보낼 인생은 아니지 않는가? 문득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픈 생각이 든다. 난 어디로? Donde Voy, Donde Voy. 만약에 만약에 그렇게 한다면, 그때는 따뜻한 고독이 다정한 눈빛으로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리라. Andr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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