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903 우리를 스스로 죽게 하는 것들
칠흑 같은 새벽이었다. 선임병이 나를 급히 깨웠다.
"야, 일어나 빨리 빨리"
나는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났음을 직감적으로 알아 차렸다. 눈을 비비면서 얼른 옷을 입고 군화를 실었다. 그리고 선임병을 따라 나섰다. 밖에는 이미 야전 앰뷸런스가 시동을 걸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동차 엔진소리와 함께 두 줄의 헤드라이트가 안개에 둘려 쌓인 어두운 밤을 뚫고 흐느적흐느적 미친 듯 춤을 췄다.
"야 무엇해, 들것을 실어야지, 그리고 빨리 타"
모두가 고요히 잠든 한밤중이었다. 선임병과 나를 실은 앰뷸런스는 꼬불꼬불 거리는 길을 따라 어디론가 산속 깊숙이 가고 있었다. 지프차만한 작은 앰뷸런스 안에는 군의관이 앞에, 선임병과 나는 뒤에 타고 있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최전방 휴전선에서 가끔 있는 일이다. 아직 잠에서 덜 깼지만 대충 짐작은 갔던 것이다.
운전기사는 천천히 달렸다. 칠흑 같은 어둠속을 헤치고 포장도 되지 않은 좁은 산속도로를 달려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는지도 몰랐다. 자동차는 덜컹거렸고 뒤 칸에 실린 우리 몸은 춤을 추듯 요동을 쳤다.
선임병이 담배를 물자 나도 담배를 물었다. 불을 주면서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그는 눈을 껌벅거리면서 나직이 말했다.
"글쎄 가보면 알겠지 사고가 났겠지."
선임병은 상병이고 나는 일병이었다. 선임은 일반위생병이었고 나는 약제병이었다. 보통 문제가 생기면 우리 둘만 움직였다. 부대에서는 많은 위생병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전시를 대비하여 일반적인 군사훈련을 받았다. 혹이여 시간이 남으면 군기 세우는 시간이었다.
즉 대부분의 위생병은 전쟁 때 필요한 인원이었다. 평소에 환자가 생기면 두세 명의 소수인원만 필요했다. 부대에서 1명뿐인 약을 담당하는 나와 많은 위생병 중에서 능력이 탁월했던 그 선임병만 간혹 생기는 환자를 돌보았다. 그는 입대 전 큰 병원에서 의사보조로 많은 수술을 해왔던 경력자였다. 그래서 웬만한 환자는 그가 치료했었다. 그때는 시절이 시절인 만큼 아무리 전방이라 하더라도 군의관은 술이나 먹고 돌아다니는 시절이었다.
철책이 가까워졌다. 컴컴한 하늘에 반달이 떠 있었다. 마치 내가 우주 속을 달리고 있는 것 같았다. 낮은 산이 겹치는 곳에서는 달빛과 별빛이 안개와 어울려져 철책을 감싸고 숨었다 나타났다 반복했다. 높은 언덕에서는 꼬불꼬불하게 이어져가는 철책이 어둠속에서 안개를 머금고 있었다. 저 멀리 참호에서는 총을 든 병사가 안개 속에서 어둠을 겨누고 서 있었다. 구릉 넘어 작은 구릉이 반복되고 그 아래에는 검은 안개가 내려 앉아 달빛과 별빛을 받아 조금씩 회색빛을 발하고 있었다.
철책 입구에 도착하니 병사 한명이 우리를 안내했다. 급히 자동차에 내려 병사를 따라 나섰다.
얼마 후 주검 하나가 들것에 얹혀 앰뷸런스에 실렸다. 군의관은 다른 차를 타고 갔고 선임병과 나는 들것을 싣고 철책을 빠져나와 후방 쪽을 향해 나갔다.
철책이 멀어지면서 능선 따라 꼬불꼬불 거리며 이어지는 철책이 안개에 숨었다 다시 나타났다. 구릉위로 저 멀리 더 큰 산들이 아래로 검은 구름을 안고 산봉우리만 내보이고 있었다. 그 위에 반달이 우리를 웃고 있었다. 우리 둘은 아무 말이 없었다. 달빛만 멀리서 달리는 자동차를 어스름히 비추고 있었다.
몇 시간을 달려 후방 안치소에 도착했다. 우리는 들것을 들고 작은 방에 들어갔다. 선임병은 노련한 솜씨로 들것에 실린 주검을 바닥에 가지련하게 눕히고는 모든 옷을 벗겼다. 머리 정수리 쪽으로 큰 구멍이 있었고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머리 속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을 보면 아마도 총의 스위치를 자동으로 돌리고 총구멍을 턱밑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음이 틀림이 없어 보였다. 방아쇠를 당기는 동시에 두세 발이 연달아 나가고 그 동시에 내용물은 바닥으로 한꺼번에 솟아 내렸으리라.
그는 내용물이 없는 부셔진 얼굴과 머리를 바느질 하듯 하나하나 기워 나갔다. 그리고 얼굴을 시작으로 온몸을 쓸고 닦았다. 그 다음 새 군복으로 말끔히 옷을 입혔다. 그리고 보니 주검은 얼굴만 약간 창백했을 뿐이지 마치 한 벌 차려입고 휴가 가는 모습과 같았다.
모든 작업을 마치고 나니 배가 고팠다. 오후이니 그동안 먹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곳 취사병에게 부탁하여 짬밥 두 그릇을 얻어 왔다. 그리고 PX에 가서 양초 한 박스를 사왔다.
그는 주검 앞에 양초에 불을 댕기고는 바닥에 주저앉아 밥을 먹기 시작했다. 양초불도 있고 이 정도면 충분하니 나가서 먹자고 나는 선임병에게 말했다. 그는 주검을 홀로 두면 안 된다고 하였다. 정 그렇다면 자네나 나가서 먹으라고 하였다. 할 수 없이 나도 그곳에 주저 않아 주검을 바라보며 허기를 채웠다.
허기를 채우고 나서 담배를 피우고 몇 시간이 지났다. 그때까지 주검을 인수받는 절차가 시작되지 않았다. 계속 기다는 수밖에 없었다. 군대가 다 그렇지 않은가. 밤이 깊어가자 그때 행정병이 왔다. 건너편에 건물 안에 들어가면 주검을 안치하는 곳이 있으니 그곳에 두고 가라고 하였다. 행정병은 가족들이 확인하고 인수하는 것을 거부하였다고 투덜댔다. 이렇게 주검은 외로운 영혼이 되어 버렸다.
우리는 앰뷸런스를 다시 타고 부대로 출발했다. 하루가 지난 캄캄한 밤이었다. 나는 되돌아 오는 차안에서 선임병에게 가족이 자식의 주검을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물어 보았다. 그는 글쎄, 군에서 자체적으로 간단하게 처리하겠지. 사고사도 개죽음이 되는 데, 자살사건은 오직 할까? 가족들은 슬프고 무안하면서 난감했겠지.
다시 평소 근무로 돌아갔다. 며칠 후 나는 사건이 발생한 그곳으로 다시 가볼 기회가 있었다. 한밤중이었다. 안개가 내려앉은 첩첩산중에 철책이 꼬불꼬불 숨었다 나타나고 있었다. 그 위에 밝은 큰달이 검은 하늘에 걸려 있었다. 내 마음은 갑자기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리고 엄숙해졌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힘든 훈련도 참아냈다. 매일매일 일어나는 구타와 폭언도 참아냈다. 짬밥도 먹고 견뎠다.
그렇게 할 수가 있었던 것은 국민의 당연한 임무이고 본래 군대라는 것은 그런 것으로 여겼고, 그리고 그래도 조금만 참으면 사회로 나가 다시 꿈을 펼칠 수가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것보다는 사랑스러운 가족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런 것을 다 참았다.
그러나 달빛을 받으며 저 멀리 안개 낀 산 너머 산을 보니 나도 모르게 숙연해졌다. 모든 것을 잊고 말았다. 오늘따라 이렇게 아늑하고 조용할까. 저 넘어 세상이 너무나 좋아 보였다. 낭만을 생각했다. 꿈속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저 멀리서 나를 불렸다. 총이 있지, 그래 총이 있는 데 한번 당겨 볼까.
“그래.”
나는 쥐고 있는 소총 개머리판으로 내 발등을 찍었다. 눈이 번쩍거렸다. 눈물이 찔끔 나왔다. 자살, 아직까지 그 말은 나에게 생소했다. 20여년 이상을 살아 왔지만 그 동안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무리 힘든 세상이라고 하지만 견디고 앞으로 나아가는 세상이었다. 정말 그것만은 우리에게 없었다.
설령 폐쇄된 군에서 자살은 가끔 생겼다. 그때는 그런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때와 같이 오직 선임병과 나만 눈치로 알 수 있었다. 극히 폐쇄적이고 반인륜적이었지만 오히려 다행한 일이었다. 그것은 한번 퍼지면 전염병처럼 무섭게 시공을 넘나들며 우리 세상에 침투하고 퍼진다. 남녀노소 귀천을 가리지 않고 삼킨다. 그 폭발력 또한 어머 어마 하다. 오늘 나처럼. 특히 모든 병사에게 말이다.
벌써 나에게 자살이라는 바이러스가 전염되고 있는 것을 보면 그것은 정말 무서운 놈이었다. 그러한 현장을 경험 안했더라면 젊은 나이에 나도 그 단어를 몰랐으리라. 눈물을 떨치고는 고개를 쳐들고 달빛을 머금은 저 넘어 고지를 바라보았다. 조금 정신이 들었다. 창피했다. 나는 변명꺼리가 필요했다. 자존심은 매우 컸던 모양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저 능선과 달빛, 그 사이로 구불구불 구비치는 철책이 보였다. 한 폭의 그림이었다. 예술이었다. 갑자기... ...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래! 저놈이야. 환상적인 저 달빛이야. 바로 이놈들이 젊은 그들을 죽인거야, 이놈들이.
제대 후 복학하였다. 그리고 졸업 후 직장도 마련했다. 군대생활 이전과 비교하여 산업화는 급속히 이루어 졌다. 유신시절은 끝났고 민주화로 세상은 많이 변해 갔다. 다들 열심히 일했다. 민주화니, 군부니, 산업화니 하면서 흑백의 논리는 심해 갔지만 이미 세상살이에 접어든 나에게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생업의 한가운데 서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이었다. 잘 나가던 우리의 경제는 갑자기 곤두박질 쳤다. 물론 이념과 정치도 그만큼 요동쳤으나 경제가 어렵다 보니 다들 한마음으로 다시 마음을 다 잡았다. 나도 그 와중에 있었다. 조금 경제가 좋아지자 나는 이민을 결심했다. 다른 세상을 보고 싶었다. 벗어나고 싶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여기보다 더 났겠지 하는 기회주의적인 생각이었다.
그리고 세월이 많이 흘렸다. 이민 후 고분군투하고 있을 때였다. 하늘에서 큰 별 하나가 스스로 떨어졌다고 했다. 태평양 건너 이국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그 소식이 들렸다. 고국의 소식을 끊고 살아온 지가 여러 해 되었건만 그러한 소문은 나에게도 빠르게 전해졌다. 우리의 큰 별이 실수로 자살했겠지 하고 내 기억에서 지워 버렸다.
그 이후로 자주 주변의 작은 별들뿐만 아니라 이름 없는 별들마저도 스스로 굴려 떨어졌다는 뉴스가 들렸다. 그러나 나는 자살이라는 언어 자체를 억지로 무시했다.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앞만 처다 보고 달렸다. 이민생활에서 생기는 수많은 어려움을 어떻게 하든 헤쳐 나가야만 했다. 그것 밖에 몰랐기 때문이다.
IMF가 터졌을 때였다. 주식과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고 금리는 천정부지로 올랐다. 부실한 회사뿐만 아니라 잘 나가던 크고 작은 많은 회사들도 문을 닫았다. 많은 실업자들이 거리로 내 몰렸다. 나도 그 중에 한사람이었다. 그럭저럭 힘들었지만 어떻게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몇 년이 지났다. 점점 먹고 살기가 더 힘이 들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해외로 눈을 돌렸다. 나도 그 행렬에 줄을 섰다. 서양세계를 잘 알고 영어를 잘 해서라기보다 이민은 하나의 대안이었다.
여기보다는 좀 났겠지 하는 막연한 희망이 작용했던 것이다. 여기서 고생하는 만큼 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보았다. 안목도 넓히는 계기도 되고 자식 장래를 생각해 보면 또 하나의 기회라고 생각되었다. 맞았다. 그것은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곳에도 형편 따라 다 달랐다. 특히 나의 경우에는 언어가 자유롭지 않는 상태에서 현지 정보와 경험마저 없다 보니 마치 구름위에 떠 있듯 내 세상은 아슬아슬했다.
또한 먹고 사는 문제는 고국과 많이 달랐다. 한국에서는 나름대로 그럴 듯한 직장에서 근무했으나 여기서는 그러한 직장은 꿈같은 일이었다. 단순노동 직장뿐이었다. 그것도 파트타임 위주였다. 마땅한 직업을 가질 수가 없다 보니 최고 학벌출신 이민자들조차 여기서 소매점을 구입하여 운영하였다. 혹 그 중 경제적 여력이나 경험, 혹은 영어가 자유로운 이민자들은 주유소, 혹은 모텔 같은 큰 사업체를 매입하여 운영하였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 가듯 나도 그런 흐름에 동참했다. 전 재산을 투입하여 사업체를 구입하였던 것이다. 사업체는 생각한 대로 굴려가지 않았다. 바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한국 사람으로부터 한국어로 도움 받고 그 정보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들은 비포장도로에서 굴려 다니는 정보 같은 것들이었다. 무엇이 진정한 지혜이고 무엇이 사악한 것이 조차 혼돈되었다. 결국 내가 자갈밭에 굴려가는 신세가 되었다.
먹는 것 없이 밤늦게 일하고 새벽에 다시 가게로 나가는 날이 매일 반복되었다. 이렇게 내 몸이 굴려가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나를 도와 줄 사람은 여기에 아무도 없었다. 여기 내가 보살펴야 하는 어린 아들 둘이 있다. 내가 이국 여기서 쓰러지면 가족 전체가 무너진다는 무서움이 엄습했다. 결국 나는 내 자신과 타협하고 사업체를 헐값으로 넘겼다. 이제 이국땅에서 맨몸으로 다시 서게 되었다.
이 무렵 노무현 대통령이 스스로 떨어졌다고 하였다. 그것도 나에게 귀신같이 전해졌다. 그래도 의식적으로 그러한 언어는 세상에 없다고 단호히 외쳤다. 경제적 어려움과 육체적 고단함을 무렵 쓰고 부단히 살아가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외로움이라는 것이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했다. 자연히 고국의 소식을 접하는 기회가 잦아졌다. 이때부터 고국의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고 뉴스를 보기 시작했다. 이때 고국에서 큰 별을 따라 또 다른 수많은 크고 작은 별들이 스스로 계속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매스컴을 통하여 알게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으로 잘 살게 되었지만 그것을 받쳐 줄 마음의 구심점이 없었다. 경쟁은 격화되고 빈부의 격차는 심화됐다. 다 들 살기가 어려워졌다고 하였다. 전보다 잘 먹고 잘 입었지만 마음과 정신은 더 허물해졌다. 그러자 유행처럼 '힘들면 죽어 버리지 머' 하는 자기중심적인 간단논리가 펴졌다. 알만한 큰 별들이 그 기폭제 역할을 했다. 옛날의 그 무서운 시절과 다르게 이제는 개방과 민주화 덕분인가?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듯 오히려 매스컴은 그러한 자살이라는 단어를 마구 떠들어 댔다.
가장 쉽게 할 수가 있고, 가장 순간적이면서 가장 고통 없이 할 수 있는, 가장 자기중심적인 행동, 자살은 그러한 특성 때문에 반인륜적인 행위인데도 불구하고 페스트 같은 전염병보다 더 강하게 넓게 빠르게 한반도를 덮쳤다. 그 와중에 우리는 서슴없이 그러한 행동에 대하여 내놓고 입방아를 찍었다. 그러자 그 전염성은 놀라웠다. 하나가 다시 많은 사람들을 전념시켰다. 그 폭발력은 대단했다. 핵폭탄이 터지는 순간의 연쇄반응이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를 않고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몸을 던지는 기괴한 결과가 초래됐다. 드디어 우리는 자살률로 세계 1위에 올라섰다.
여기서 내가 일하고 돌아올 때 한강다리보다 더 높은 다리를 지나간다. 어머니의 죽음, 사업의 실패, 두 어린 아들의 적응, 외로움, 이때 쯤 나는 자주 이민생활이 외롭고 힘들다고 느꼈다. 그래서 이제는 나도 듣고 또 듣고 하다보면 그 놈의 자살이라는 말이 나에게 의미심장한 언어로 다가왔다. '정말 힘들면 그럴 수가 있지 머'라는 말이 내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 뿐만 아니었다. 군대에서 자살사건을 처리하면서 겪었던 과거의 기억들이 새삼스럽게 다시 새로워졌다. 보지도 듣지도 말아야 하는 저주스러운 언어 하나가 이제는 가끔 내 가슴을 젖이곤 하였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약골이었다. 어려운 시절에는 그것은 무서운 약점이었다. 남과 비슷하게 달려도 남보다 배로 더 고통스러웠다.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골방에 처박혀 책을 읽는 것 정도였다. 그 덕분에 도시로 진학할 수가 있었다. 부모 형제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상경하여 대학을 갈 수가 있었다. 경제적 여건으로 학업을 계속할 수 없어 약골임에도 불구하고 군대를 지원했다. 제대 후 학업을 마치고 직장도 마련했다.
약골이 남이 하는 것을 다 하였으면 좀 봐 줄 것이지 하늘도 무심도 하였다. 암으로 나는 쓰려지고 말았다. 의사는 수술하면 살 확률은 꽤 높다고 하며 내 위장 전부를 살뚝 잘라냈다. 음식을 소화시키는 장기가 없으니 당연 더 허약해졌다. 그리고 몸은 마음을 누르고 마음은 내 자신을 때렸다.
그래도 할 것은 다했다. 가족도 갖고, 직장생활도 다시 하고, 건축사 면허를 땄고, 그리고 건축사 사무소를 열었다. 사업도 잘 되었다. 이때 무엇인가 될 것 같았다. 갑자기 IMF가 나를 말아 먹어 버렸다. 그러나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나는 세계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이민을 왔었다. 이민 와서 먹고 살기 위해서 사업체를 매입하였고 말아 먹었다. 이제 단순노동자로 연명하면서 그래도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이 좋은 나라에서 그냥 먹고 살면 되지 않는가? 그래, 맞다.
지금까지 착하게 성실하게 열심히 살았다. 죄라면 매일 배우고, 공부하고,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다. 의식적으로 달리는 것을 일 분 일 초를 멈추어 본 적이 없었다. 약골과 병마를 생각하면 그것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왜 평생 나만 힘이 들까? 왜 나에게는 너무 괴로운 일이 많을까? 모두들 튼튼한 데 왜 나는 몸이 나약할까? 왜 나는 옮고 그름을 따지는 흑백논리에 단순 할까? 왜 나와 내 몸은 그렇게 서로 다투어 가면서 견디어낼까?
그래, 이런 나 같은 놈은 옛날에는 벌써 얼어 죽거나 굶어 죽어야 했다. 그래, 이런 불청객은 애초에 없어야 했어. 맞다, 이제 그만 가자.
오늘따라 저 다리 밑에 흐르는 검푸른 강물이 참으로 좋아 보였다. 지금 뛰어 내리면 나는 기분은 째질 거야. 다리는 너무나 높고 물살은 꽤 빨라서 나는 강물에 사뿐히 날아 스칠 거야. 그리고 고통 없이... 그 찰라에...
그러자 바람은 나를 부르는 노래가 되었고 강물은 내 눈을 감싸는 화폭이 되었다. 무엇이 나를 당겼다. 순간 나는 머리를 난간에 찍었다. 피가 얼굴에 흘려 내렸다. 그리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를 보았다. 갑자기 창피해졌다.
"병신 새끼, 죽고 싶으면 죽어라, 이놈아."
내가 나를 욕하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울었다. 마구 울었다. 큰 병원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좀 살려 달라고 아우성 쳤다. 응급실에서 팔 다리가 없는 사람들의 뒹구는 모습이 어련 거렸다. 세상이 외면하는 자살병의 주검 앞에서 짬밥을 먹는, 그를 보내는 단 한사람, 그 옛적의 선임병이 보였다. 내가 그때 그곳에 있었지. 갑자기 눈물이 멈추었다. 저 깊은 눈 속에서 어린 두 아들이 보였다. 그래, 가족이 나를 기다린다. 어린 두 아들이...
얼굴을 들고서 나를 유혹한 강물을 보았다. 출렁이는 강물이 어른거리며 물방울을 만들어 냈다. 수면위로 먼저 간 외로운 영혼들이 꿈틀대며 올라왔다. 그리고 작은 물방울들이 모였다 헤쳐짐을 반복하면서 무엇인가 말을 하려고 하듯 반짝거리며 빛을 발했다. 많은 빛들은 점점 선명해지더니 한곳으로 모였다. 그것은 네오사인처럼 검푸른 수면에 번쩍거렸다.
"잘 했어, 그 놈의 큰 별 때문에, 그들을 순간적으로 따라 했을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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