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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집 - 겨울배추는 달고 향기롭다

150509 큰아들의 방문

Hi Yeon 2015. 5. 9. 07:44

150509 큰아들의 방문

 

먼 타주로부터 오는 아들을 배웅하려 나는 공항으로 나갔다. 시간을 정확히 맞추어 공항 입구에 자동차를 대니 마침 그곳에 그가 서 있었다. 작은 도시의 작은 공항이니 쉽게 그를 찾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차를 길가에 세우고는 벌꺽 그를 안았다.

 

"내 큰 아들아, 잘 왔다."

 

얼마만인가. 한참을 그를 가슴으로 안고는 나는 쉬이 그를 놓을 수가 없었다. 2년 전 바로 이맘 때 온타리오의 어느 산골로 나무 심는 일로 간다고 한 놈이 이제 내 품에 있느니 말이다. 얼굴을 처다 보니 그는 나를 보면서 환하게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날 아들이 차린 저녁상과 술잔으로 늦은 밤을 보낸 후 머무는 10여 일 동안 그는 무엇이 그리 바쁜지 나와 함께 할 시간이 없었다. 친구들이 그리도 좋은가. 그래도 나는 아들과 근사한 외식을 두 번이나 하였다. 그리고 실내테니스장에서 그와 테니스도 한번 쳤다. 전에는 테니스 폼이 엉망이었는데 이제는 나와 한판을 붙으면 내가 안 될 정도였다.

 

발리, 스매싱, 서브, 포 백 스윙, 등등 모든 폼이 아주 자연스러워졌고 드라이브와 슬라이스도 또한 물 흐르듯 했다. 사람이 철드는 만큼 그 테니스 폼도 철이 들었나 보다. 그 전에는 깎고, 때리고, 치고, 돌리고, 그러니 공이 미쳐서 허공을 날아 다녔다, 마치 나에게 대어 들 듯..., 이제는 날아오는 공을 자연스럽게 되받아 밀어댄다. 정통 드라이브로...

 

힘이 넘치면 쉬이 지쳐서 오랫동안 즐기지를 못한다. 속도에 치중하면 쉽게 공은 포물선을 만들지 못해 아웃이 된다. 회전을 많이 주면 안전하나 빨리 나아가지 못한다. 세 가지를 적절히 조절하면서 공 방향을 변화시키면 상대와 공을 함께 제압하기가 쉽다. 아니 인생이 그렇다는 말이다. 인생이라는 테니스공을 치고 때리는 것이 아니라 날아오는 공의 힘을 타고 자연스럽게 미는 것(Push)이라는 것을 이제 그는 조금 알게 된 걸까?

 

"테니스는 밀어야 해" 내가 슬쩍 말을 건냈다.

 

", Push이지요."

 

"잘 아네. 이제는 물 흐르는 듯 스윙을 잘 하는구나. 즐기는 운동으로는 다 됐네. 이제 나보다 낫다.“

 

그는 웃음으로 답한다. 나도 웃음으로 반기면서 속으로 생각해 본다. 그 전에는 내가 애들 눈치 보느라 한마디도 못 했는데... 나는 그 나이에 인생이라는 라켓도 잘 못 쥐었는데...

 

살고 있는 집을 팔았기에 그가 머무는 동안 같이 물건을 정리했다. 이리저리 정리하는 동안 그는 자기가 필요한 물건을 챙기는 것이었다. 옷가지, 개인용품, 등등. 그런데 캐나다에 건너오면서 가지고 온 한국 책들도 여러 권 챙겼다. ‘단순하게 살아라’,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아들아 더 큰 세상을 꿈꾸어라’, 등등. 인생 참고도서 혹은 사업관련 도서도 챙겼다.

 

"! 그런 책을 무어 할라고, 난 다 버릴 예정인데..." 내가 잔소리 하니,

 

"아니어요, 요즈음 심리학에 관심이 많아서"라고 그는 뚱단지 같은 소리를 하였다.

 

공학도가 심리학을, 그 참 신기하네 하면서 고개를 꺄우뚱거리는 나를 보고는 그는 천천히 그의 보따리를 풀어내기 시작하였다. 이제까지 "무어" 혹은 "아니" 같은 무뚝뚝하고 반항적인 말만 아들로부터 듣고 온 터라 나는 어리둥절하기까지 했다.

 

사귀는 여자 다루기가 제일 어렵고요. 남 밑에서 일하는 것 재미없어요. 내일을 내가 한 만큼 벌고 싶어요.

 

그가 한 말이다. 졸업 후 엔지니어로서 일하면 충분히 즐기면서 살 수 있는 데.. 하고 운을 다니, 아버지 아세요, 한국사람 다 캐나다대학에 졸업하지만 대부분 한국 업체에서 일해요 하고 변명을 댄다.

그래, 네가 무엇을 하고 살던 네가 좋다면 환영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일단 졸업장을 쥐고 그 다음 엔지니어로 취직도 해보고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해 보아도 괜찮아 보이는 데 했더니 순순히 그는 말로는 "" 그랬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첫 번째 것에 대하여 벌써 느꼈다니 다행이지만 두 번째에 대하여는 그냥 직장인으로 편히 살기를 바라는 아비 맘과는 많이 달랐다. 과묵하고 끈기 있고 결단력이 빠른 놈이 무엇이 아쉬워 그럴까. 이민자 아니가? 캐나다에서는 편한 직장생활이 좋은 데...

 

하기야 산으로 나무 심으로 가서 하루에 남보다 3배를 일하고 남보다 3배를 벌었으니 그때 나는 너를 알아보았지. 6개월 동안 일을 하고 돌아 온 아들을 보고 나는 정말 휴전선을 타고 넘어 온 북한간첩인줄을 알았지. 산에서 텐트에서 먹고 자고 나무 심고... 검게 그을린 피부, 피골상접한 몸, 다 떨어진 군화신발에 무디어진 손가락마디 마디. 그것은 바로 해골이었다.

 

가는 날 나는 손수 공항으로 아들을 배웅했다. 무뚝뚝한 놈이 이제 나에게 별 이야기를 다 했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같이 사진 한판 박자고 셀폰을 전하기도 했다. 작은 공항이니 비행기 타는 모습도 다 보인다. 아들이 비행기에 탈 때까지 나에게 손을 마구 흔들어 댔다. 전에는 전혀 보지 못한 그의 엉뚱한 모습이다. 감동했다.

 

비행기가 이룩하고 공항을 나서면서 나는 갑자기 허전함을 느낀다. 가슴이 텅 빈 것 같았다. 현기증이 돌았다. 어제 밤 그와 맥주 한잔 할 때가 생각났다. "아버지께서 캐나다에서 처음 사업 하실 때 못 도워 줘서..." 라고 하면서 그는 내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영어도 못하는 사춘기 때, 그것도 캐나다에 정착하자마자, 그가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눈물을 훔치는 아들을 보니 나도 눈물이 났다. 무뚝뚝하고 강건한 놈이 갑자기 너무 애처로워지기 시작했다. 아니 이 아비가 미안했다.

 

그는 중간기착지인 토론토에서 며칠 놀다가 가겠다고 하였다. 구석구석에 친구가 많아서 다행이었다. 몸도 강건하니 걱정은 없다. 그러나 그를 떠나보내고는 자꾸만 아들 걱정이 앞섰다. 요즘 세상,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이 아비 같이 고생하지 말고 그저 좋은 직장을 얻어 단순하게 세상을 살았으면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