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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이야기 셋: 내 아픔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Hi Yeon 2014. 12. 4. 12:17

쇄기같은 고양이 이빨로부터 손을 찾고는 나는 안도의 숨을 쉴 수가 있었다. 그러자 바로 성이 버럭 났다. 그놈의 주검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을 공차 듯 발로 멀리 차 버렸다. 그래도 성이 안 차서  다시 가서 그놈의 뒷다리를 들고 빙빙 돌려 야산에 던져 버렸다.

 

그제서야 내 손바닥이 생각났다. 피도 없고 상처도 보이질 않았다. 단지 우리하게 아플 뿐이었다. 그러나 이빨로 깊숙히 찟어진 살속 상처와 더러운 이빨 독을 생각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손바닥을 쥐어짜고 별 지랄을 다하여 보아도 상처에서는 피 한방울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냥 무턱대고 있을 수가 없었다. 이것저것 찾아 보아도 시골바닥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빨간 아까징끼를 발라 보는 것 밖에 없었다.

 

보통 칼에 베이면 피가 나면서 저절로 칼날의 독소가 그때 배출이 된다. 칼로 살속의 실핏줄이 상처를 입어 피가 뿜어 나올 때 주변 독소를 씻어 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물의 입빨로 상처를 입은 경우는 핏줄의 상처없이 살속의 구멍만 생긴다. 그리고 입발이 제거되고는 언제 그랬나 싶게 피부에는 흔적도 없이 입발 구멍이 오물어 들어 상처흔적이 없어진다.

 

하루가 지나니 손 전체가 띵띵 붓기 시작했다. 보통 개에게 물리면 광견병에 걸릴 우려가 있다. 고양이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상처흔적 없고 치솔하지 않은 그놈의 이빨 찌꺼기가 내 살속에 남아 독소를 뿜고 있다고 생각하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바로 도시의 큰병원에 갔다. 의사는 이것저것 조치를 하고는 제일 효과가 좋은 것은 손바닥을 째서 주변의 피를 빼 내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바로 간단한 수술에 들어갔다.

 

내가 수술침대에 눞자 의사는 국부마취를 해야 한다고 하였다. 나는 과감히 나는 노(NO)라고 했다. 그냥 한번 째보라고 하였다. 군에 근무할 때 국부마취로 사병들을 여러번 수술해 본 경험이 있어 까짓 것 안하면 어때 한번 해 보지머 하는 생각이었다. 그것보다는 그 당시 빌빌 놀고 있는 형편이라  진료비를 아낄 생각이었는지도 몰랐다.

 

나는 내 손바닥을 의사에게 내 맏겼다. 의사는 메스로 내 손바닥에서 피가 뿜어 나올 수 있도록 깊숙히 여기 저기 칼질하기시작했다. 한두번 아니 두세번 그 이상도 참아냈다. 의사는 계속 째고 가르고 그리고 다시 그 사이로 쑤셔댔다. 큭큭하면서 참다가 결국에는 나는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 다음은 제발 그만하라고 하였다. 그것도 안 되자, 나는 나는, 제발 한번만 살려 달라고 애원하였다. 결국 나는 입에서 거품을 물고 쌍욕을 내 뱃으면서 그 자리에 까무려 치고 말았다. 

 

그 옛날 군복무시절 야전 의무실이 생각났다. 나는 어느 병사의 곪아터진 발가락을 치료하고 있었다. 그때는 특별한 치료나 약품이 흔한 시절이 아니었다. 국부마취를 하는 리도케인도 흔하지를 않했다. 국부마취없이 치료하겠다는 그 병사의 동의 하에 그를 침상에 눞히고 양옆에 후임사병으로 하여금 꼼짝 못하도록 잘 붙잡도록 하였다. 그리고 나는 그 곪은 환부에 소독약을 바른 큰 면병으로 마구 후벼 팠다.

 

그는 죽는다고 비명을 질렸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러한 곳은 피가 나올 때까지 비비는 것이 최고야" 하면서 계속 비볐 댔다. 환부에는 이윽고  피가 줄줄 흐르고 그리고 나는 꺼즈를 대고 환부에 붕대를 감았다. 그 사병은 입에 개거품을 물고 쌍욕을 하면서 자기 막사로 떠났다. 그리고 다시는 오지 않았다. 내 생각으로는 바로 아물었으리라.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다시 바로 왔으리라.

 

군야전 의료약품실에는 독극물로 취급되는 일회용 마약주사가 많았다. 다 전쟁이 나면 사용될 약품이었다. 총칼에 팔이나 다리가 상처를 입거나 폭탄에 몸이 난도질 당할 때 병사들은 과다출혈로 죽기보다는 우선 부상으로 인한 아픔의 쇼크로 기절 졸도하고 바로 죽게 된다. 이때 이 주사를 근욕에 쑤셔대면 최소한 쇼크사는 방지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포스러운 아픔의 고통에서 잠시 벗어날 수가 있다.

 

그때는 나는 몰랐다. 아픔은 참으면 되는 것으로만 생각하였다. 그러나 막상 내 손바닥살이 작은 메스를 만나고 보니 제발 좀 살려 달라는 소리가 나도 모르게 저절로 나왔다. 메스가 살을 베는 그 싹싹거리는 소리는 악마의 소리였다. 의사의 손놀림에 따라 내 얼굴은 고통으로 일거려졌다.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일단 극심한 고통을 인지하자 의사의 손놀림이 무서운 공포심으로 변해 다가 온다는 것이었다. 나는 떨기 시작했다. 그때 고통의 아픔은 당해 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것을 처절하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누구도 그 아픔을 나눌 수도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젊을 시절에 겪은 고통은 살아갈 지혜가 될 수도 있다. 보통 쉬이 잊어 버리기도 하지만 몇몇은 우리의 무의식에서 잠재되어 숨어 있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이 살아서 바늘로 가슴을 찌르 듯 문듯 문듯 현재 우리를 찌르기도 한다. 그래서 그럴까, 간혹 고양이를 보면 나도 모르게 과거의 일이 떠오르면서 가슴 저 한구석이 뜨끔함을 느낀다. 그리고 혼자 쓴 웃음을 짓곤 한다.

 

만약  중년이 된 지금 이러한 일이 다시 생긴다면 더 큰 육체적 마음적 상처가 되리라 생각든다. 왜냐하면 중년의 나이에는 마음도 건강도 더 얕아지고 더 예민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눈과 내 마음에 좋게 느껴지는 것만 접해 보고자 한다. 즉 이제는 새로운 것도 감정에 순응되는 것만 겪고 싶다는 뜻이다. 요즈음은 옛날보다 훨씬 좋은 세상으로 굳이 그렇게 아니해도 쉽게 살아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나이 때는 누구든 그 나름대로 많은 추억들이 쌓여 있다. 그중 나쁜 추억들도 많으리라. 이제는 그러한 것들을 향수로 만들 때인 것 같다. 옛적보다는 훨씬 좋은 세상의 오늘, 젊은 날의 어떠한 경험도 생각따라 좋은 향수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어떠한 일이 벌어져도 상대에게 상처와 아픔을 주지 않는, 어떠한 현실적인 어려움이 닥쳐도 그냥 오늘을 위해 사는, 그러한 마음자세를 덤으로 얻을 수가 있겠다 싶다. 그래서 여유가 없어 물리적 마취제를 마련 못 할지라도 "그래 괜찮아", "내일이면 괜찮겠지", " 너가 최고야", "사랑해", 하는 그럴 듯한 마음의 마취제는 절대로 아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고양이에 대한 옛추억을 더듬으며 해본다. -끝-  Andr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