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무렵이 되자 바닷가태양은 바다끝자락에 매달렸다. 석양빛이 비스듬이 스치자 백사장에는 모래구릉들이 시커멓게 배가슴을 드려내기 시작하였고 바다위에는 검은 파도가 부셔지면서 오색의 빛이 반짝였다. 백사장과 길게 만나는 바닷가에는 시커먼 파도가 밀려와 산산이 조각나면서 하얗게 변했고 파도가 쓸려 내려가자 물묻은 검은 자갈은 석양빛을 받아 어둠속에서 반짝였다.
저 멀리 바다끝에는 붉은 한무리가 끈적끈적거리며 조금씩조금씩 검은 바다속으로 침몰하고 그리고 주위는 점점 어두워졌다. 백사장과 바닷가에 남아 있던 작은 반짝임마저 사라지자 파도소리는 검은 어두움속에서 점점 더 철석거렸다.
어느듯 어둠이 다가왔고 어둠속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모두들 온종일 마실 만큼 마셨다. 물속에 들어가 창살로 놀래기와 도다리를 잡아 회로 치고 불에 구워서 안주로 삼았고 그리고도 모자라면 백사장 여기저기 그물위에 펼쳐놓은 마른 가자미를 슬쩍 가져왔서 구워 먹었다. 우리는 백사장에서 웃고 이야기하고 낄낄거리며서 온종일 술잔을 기울었다.
모두들 눈초점은 흐려지고 목소리는 점점 높아갔다. 너무 오래 한곳에서 머물렸는지 한놈 두놈 일어서기 시작했다. 모두 흐느적거리면서 검은 바다를 처다보았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모두가 손에 한아름 바다자갈을 쥐고는 바다로 던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목청높여 소리를 질렸다.
우리의 몸부림과 아우성은 파도소리와 어둠에 묻혀버렸고 검은 바다는 점점 더 철썩이기만 하였다. 한놈이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가면서 한손에 소주병을 잡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다른 놈들도 각각 남은 술병을 손에 잡고 따라 목청을 높였다. 그리고 천천히 검은 바닷가를 따라 백사장을 걸었다.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을려고 왔던가
비린내 나는 부두가에 이슬맺힌 백일홍
그대와 둘이서 꽃씨를 심던 그날도
지금은 어디로 갔나 찬비만 내린다.]
한놈이 손으로 옆에 있는 놈의 어깨를 툭 치며 시비를 걸었다.
[야이- 마… 그게 노래야 아야… 짜아씩-익…!]
그리고는 노래를 이어받고는 고래고래 소리를 다시 질렸다.
[목이 메인 이별가를 불러야 옳으냐
돌아서서피눈물을 흘러야 옳으냐
사랑이란 이런가요 비내리는 호남선에
헤어지던 그인사가 야속도 하더란다.]
마지막 한놈이 때를 기다려 잠시 멈추어 서더니 술병으로 목을 축이고는 분위기를 잡으며 근사하게 폼잡았다. 마치 어두운 객석을 바라보듯 검은바다로 향하여 서더니 파도소리를 장단삼아 소리를 높였다.
[타향도 정이들면 정이들면 고향이라고
그누가 말했던가 말을했던가 바보처럼 바보처럼
아니야 아니야 그것은 거짓말
향수를 달래려고 달래려고 하는 말이야
아아아 타향은 싫어 고향이 더 좋아.]
꺼질듯 하면 다른놈이 이어서 부르고 끝나면 또 다른놈이 이어갔다. 함께 어깨동무를 하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렸다. 문득 한놈이 백사장에 흐느적거리면서 쓰려지자 다 같이 백사장에서 눞고 딩구고 당기고 던지고 씨름하고 그리고는 지쳤는지 모두들 검은 하늘을 보고 백사자에 벌렁 누웠버렸다.
하늘 저 아래 검은 산과 만나는 부분에서 반달이 비죽히 내밀기 시작하였다. 빛을 발하던 마을의 가로등은 조금씩 약해지고 다시 칠흑같은 검은 바다위로 하얀파도가 길게 이어가면서 여러줄로 은은한 달빛을 반사하였고 백사장은 불룩한 모래가슴을 드러내면서 달빛을 받고 있었다.
반달이 검은 산 꼭대기를 점점 벗어나 솟아오르자 저 멀리 송대위에 촘촘히 박혀있는 나무숲은 검은 실루엣이 되어 선명하게 하늘에 박혔다. 검은 파도는 부셔지면서 달빛아래로 하얀 이빨을 드려내었고 그리고 그옆 하얀 등대에서는 칼날같은 빛줄기가 바다를 스치면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
검은구름 조각들이 히끗히끗 부셔지는 검은 파도와 살포시 여미는 모래가슴을 구벼보며 달빛을 받으면서 잔잔한 바람과 파도소리와 함께 우리 머리위로 퍼져나갔다. 그때 한놈이 툭 말했다.
[바로 위 저 언덕에 니네집이 보이네? 어머님 계셔?]
[ 내일 밤에 오실거야, 배나갔어.]
[그래, 야 가자, 그곳으로 가자!]
우리는 다시 뭉쳤다. 읍내에서 막거리 한말통을 사서 짊어지고 다시 개선장군같이 노래를 부르면서 언덕위의 조그만한 집을 향해 꼬불꼬불한 언덕길을 올라갔다. 반달은 저멀리 한가운데 걸터앉아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고 우리는 서로의 그림자를 졸졸 따라가면서 비틀비틀거렸다. 여름 벌레는 욍욍거리면서 바다바람과 함께 춤을 추었다.
바닷가 언덕 중턱에 있는 집은 달빛속에 떠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빈집은 검은 바다를 바라보면서 우리를 턱 바치고 있었다. 취객들은 아랑곳 않고 집마루에 벌덕 걸터 앉았다. 그리고는 우리는 밤기운에 취했는지 한참 저 아래 벌판같은 검은바다를 너지시 처다 보았다.
한놈이 중얼거렸다.
[야야 머하노오? 술이나 먹재이… …]
배가 고펐는지 술에 취했는 지 우리는 벌컥벌컥 몇잔을 주고 받았다. 그리자 달빛에 비친 우리들의 그림자는 조금씩 조금씩 다시 비틀거리기 시작하였다. 갑자기 한놈이 젖가락으로 궁작꿍작하면서 달빛을 달랬다. 노래가락 앞 전주가 끝나자 꼬부랑진 목소리로 다함께 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한놈씩 한놈씩 어둠속에 쓰려져갔다.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요만은
눈물로 달래보는 구슬픈 이밤
고요히 창을 열고 별빛을 보면
그누가 불러주나 휘바람 소리]
소근 거리는 사람 목소리에 우리는 눈을 떳다. 참기름의 구수한 냄새와 아귀국 향기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우리 머리맏에는 어머니께서 차린 아침 한상이 있었다. 하얀 쟁반위에 듬성듬성 설인 해삼과 멍게가 참기름을 머금고 있었고 방금한 밥과 아귀국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가고 있었다. 그 옆으로는 빨강김치와 구운 도다리가 우리의 침을 유혹하고 있었다.
[ 많이 먹거래! 눈 먼 해삼과 멍게가 아가들이 온지를 아는 모양이재. 오늘 그물속에 큰 해삼 몇놈과 멍게 그리고 아귀몇마리만 등그리 있지를 안나. 우리도 평소에 구경못하는 거야. ]
무슨 소리인지 듯는둥 마는둥하다 한놈이 먹다 말고 물었다.
[ 어머니, 입이 무지하게 큰 이것은 무엇이오? ]
[ 그거 ? ]
하면서 어머니는 웃고는 다시 아귀입 흉내내면서 말을 이었다.
[ 입만 크지 먹으것이 없대이. 그래서 여기 사람들은 잘 않먹어. 그러나 살이 흐물흐물하고 궁물이 시원해서 해장에는 이것이 최고야. 어두육미라고 하재 큰머리 하나 먹어봐! 잔뼈만 있어 먹을 것은 없지만 그래도 뼈를 훔치다 보면 침이 저절로 넘어 간다네. ]
우리는 서로 먼저 먹어려고 젖가락싸움질을 하면서 끽끽웃었다. 어느듯 배가 불려오고 축 처지자 조용해지기를 기다려 어머니가 방에 슬며시 들어오면서 말했다.
[ 소리소리 팍아팍 질려봐야 또오… 아침이재이… … 저바닷가에 내려가서 한뜸 일하고 나면 땀이 펄펄나재… … 그러고 나면 몸도 마음도 시원해져… …점심때는 내가 싱싱한 회로 얼큰한 물회를 만들어 줄테니 내려가자 땀흘리고 나서 백사장에서 먹는 맛은 기가막혀. 자… 내려가자! ]
우리는 어머니를 따라 오솔길을 내려가고 있었다.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저 멀리 바다에는 뭉게 구름이 일어나고 파도가 부셔지고 있었다. 그 사이로 갈매기들은 한가히 수면위를 활주하고 있었다.
오솔길 돌담을 벗어나자 우리앞에 갑자기 넓고 반짝이는 짙푸른 바다가 나타났다. 우리는 너무 눈이 부셔 그만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말았다. 손가락사이로 보는 바다세상은 정말 시원했고 푸르렀다. 조금씩 손을 내리면서 바라 보고 있을때 어머니가 정적을 깨뜨렸다.
[ 석이는 사법고시 됐어? ]
[ 저… … ]
나머지 두놈이 킥킥 웃었다.
어머니는 석이의 손을 잡고는 말을 이었다.
[ 목소리가 적은 걸 보니, 그래! 다음은 될거야. ]
[ 예 ! ]
하고는 석이는 어머니 뒤에 숨어서 킥킥거리는 두놈을 툭친며 덤볐다.
[ 죽을래… ]
다시 어머니는 뒤에 따라 오는 놈에게 처다보면서 물었다.
[ 그런데 민이는 대모하고는 도망다니재 ? ]
하고는 어머니는 잠시 서더니 민이의 어깨를 잡았다.
[ 아니어요… … ]
씩씩하게 대답하고는 민이는 어머니 옆에서 힉힉거리는 두놈에게 임마 짜식하고는 눈을 홀겼다.
[괜찮아 그래 괜잖아! 나중에 큰일 할 사람이재! ]
그렇게 말하고는 어머니는 민이의 어깨를 어두만졌다.
다시 어머니는 갑자기 옆에 있는 아들이 생각났는지 석이와 민이를 돌아 보면서 중얼거렸다.
[그런데 말이지 아가들아 내 아들 저놈 수는 색시한테 채였는지 방학이 다 되가는데 상경할 생각을 안해! ]
그러자 나머지 두놈이 고소한 듯 해해하고 깔깔거렸다.
세사람이 어머니 주위를 감싸면서 고깃배가 보이는 백사장으로 들어서자 그중 아들인 수가 무엇인가 생각난듯 어머니에게 물었다.
[ 그런데 어머니 오래 준비하여 어제 저녁에 배를 띄웠잖아요? 오늘 일찍 돌아오셨네요? 바다에서 무슨일 있었어요? ]
모두들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어머니는 어제 갑자기 높아진 파도를 생각하면서 조용히 말했다.
[ 물과 바람이 흐르는 대로 가야할 때가 종종 있재… … 어제는 그런날이었어. 모든 것을 그냥 두고 빈배로 그냥 돌아 왔어, 한동안 기다려야재. 그 덕분에 우리 아가들 보고 밥도 해주고 아침에 해삼과 멍게도 먹을 수 있었재… ]
모두 합창하듯 어머니를 보면서 대답하였다.
[ 그럼요! ]
갑자기 그 중 한놈이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춤을 추며 크게 외쳤다.
[ 오마니가 기다려라고 하네요… 흐르는 대로 가라고 하네요… 당분간 그냥 두라고 하네요… Let it be… … Let it be… …]
하면서 Let it be를 외친다. 그리고 바로 The Beatles의 멤버인 John의 기타 융내를 내면서 노래를 시작했다. 다른 두놈들도 Paul 과 George가 된양 피아노 치듯 손가락을 허공에 둥둥거리면서 같이 불러댔다 . 그리고 어머니 주위를 장난하듯 빙글빙글 돌았다. 어머니는 빙그레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 야가들이 아직도 술이 덜깼냐 … … ]
[When I find myself in times of trouble, Mother Mary comes to me
Speaking words of wisdom
Let it be
And in my hour of my darkness she is standing right in front of me
Speaking words of wisdom
Let it be
Whisper words of wisdom
Let it be
When the broken hearted people living in the world agree
There will be an answer
Let it be
For though they may be parted there is still a chance that they will see
There will be an answer
Let it be
Yeah, there will be an answer
Let it be
Whisper words of wisdom
Let it be
And when the night is cloudy
There is still a light that shines on me
Shine until tomorrow
Let it be
I wake up to the sound of music, Mother Mary comes to me
Speaking words of wisdom
Let it be
There will be an answer
Let it be
Whisper words of wisdom
Let it be] Andr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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