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12 Calgary 입국 심사장에서
비행기 탑승 3번, 중간기착지에서 기다림 2번 끝에 캘거리 공항에 내렸다. 내가 탄 비행기는 미국 LA에서 캐나다 Calgary로 오는 비행기이다. 많은 여행객들로 그 큰 비행기의 좌석이 꽉찼다. 그런데 나에게도 작은 운도 있는가 봐. 내 옆 좌석이 비어 나는 다소 편했다.
LA – Calgary는 캘거리와 미국을 연결하는 주된 항공노선인 것으로 보였다. 300명 정도 되는 여행객들이 입국심사장에 몰려드니 심사장은 사람들로 꽉짰다. 줄을 서서 기다려도 도무지 사람이 줄어들지 않았다. 본래 캐나다는 늦다.
입국심사장에 들어오니 별스럽게 다소 긴장이 된다. 나는 캐나다를 방문할 경우 매우 조심을 한다. 캐나다인이 캐나다에 입국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입국할 때마다 다른 곳에서 별도로 검사를 받았는 경험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이다.
첫 경험은 이민하는 날이었다. 정식으로 캐나다 영주권을 소지하고 규정내 가방만 들고 입국하였는데 우리 가족은 특별히 5시간 동안 입국장에 붙잡혀 있어야 했다. 그때는 처음이라 별 생각이 없었고 당연히 그런 줄만 알았다.
정식 영주권도 없이 가족을 데리고 입국하여 살다가 영주권 신청을 하여 영주권을 취득하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알고 나서 부터는 그때 첫 경험은 기분 나쁜 기억으로 변하게 되었고 내 자존심에 상처가 되어 버렸다. 나는 캐나다를 존중하여 정식으로 영주권을 신청하였다. 그리고 너가 정식으로 준 영주권을 들고 입국했는데 너는 나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캐나다 시민권자가 된 후 친구와 쿠바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입국장에서 나는 특별히 조사를 받아야 했다. 여행객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가방만 소지한 나를 붙잡아 놓고 컴퓨터이며 카메라 그리고 내 소지품을 샅샅히 뒤지고 추궁했다. 내 컴퓨터 자료까지 확인하였고 카메라 촬영 자료도 뒤져 보았다. 물 수건으로 상세히 노트북 표면도 조사했다. 2시간 후에 나는 그곳에서 나올 수 있었다. 나쁜 경험이었지만 볼래 그런가 하고 그때도 잊었다.
다른 사람은 편하게 멀쩡하게 잘도 입국장에서 나왔다. 짐을 많이 싸들고 온 사람들도 괜찮았다. 가족이 있거나 점잖은 사람들에게는 농담이을 던지기도 하고 친절하게도 여행이 어떻냐고 물어보는 심사관들도 많았다. 나중에 지인에게 내 경험을 이야기 하니 그들도 이해를 못하였다. 나만 그런가 하고 생각이 들자 그 경험이 순식간에 악몽이 되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 심사관을 볼 때마다, 아니 입국장에서 제복입고 있는 그 사람들을 보기만 하여도 그때마다 내 입에서 욕이 나올려 했다.
소지품이 왜 이렇게 간단하냐?고 질문하는 심사관이 있었다. 지난 날 여행에서는 심사관이니까 물어 보았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지금 회상해 보면 심사가 뒤틀린다. 남이야 간단하게 다니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짐 많으면 너 놈들이 뒤져보니까 간단하게 다니지. 아니 미친 놈, 심사관 맞아? 너희들 깡패 새끼들 아니야? 이렇게 욕이 나왔다.
현금 얼마나 소지하고 있냐? 고 묻는다. 아니 내가 현금 얼마를 지니고 있는지 정확하게 어떻게 아나? 현금 소지량을 시시각각 세어서 기억해 두는 사람이 있는가? 현금을 가지고 쓰다 보면 나도 얼마 남아 있는지 잘 모른다. 대충으로 짐작만 하는 것이지. 그때마다 상세히 카운트해서 기억해 두는 놈이 이상한 것 아닌가?
괜히 한번 푹 찔려보는 속셈으로 나를 조사실로 보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나같이 멀쩡한 사람을 붙잡아 놓고 조사해 봐야 시간 낭비다. 아무나 더 잡으면 일 열심히 하는 것 같이 보이나? 누구는 살갑게 이야기 하고 누구에게는 눈 내리 깔고 대한다. 과거 나는 순진한 캐나다 시민권자였는데 지금은 불만투성이다. 입에서 욕이 나올 정도이다.
코로나 때문에 몇 년 캐나다에 입국할 수 없었다. 오랫만에 캘거리 입국장에 서고 보니 괜히 과거 악몽이 되살아나고 몸과 마음이 경직되기 시작했다. 별의 별 생각이 다 났다. 어디에 살지? 왜 이제 입국하지? 한국에서는 무얼하지? 캐나다는 왜 입국 해? 어디에 갈려고 해? 질문 같지 않는 질문을 나 스스로 만들고 답을 해 보았다. 캐나다인이 캐나다에 입국하는데 그런 질문이 필요한가? 내가 내 집에 들어가는데 경찰관이 묻는 것과 같다.
세관 신고할 것이 있으면 조사하면 되고 현금을 규정 이상 많이 소지했다면 조사해서 처벌하면 된다. 술이나 담배를 많이 소지하고 있다면 조치하면 된다. 이미 그런 것에 애초부터 시비가 되지 않기 위해서 나는 물건도, 돈도, 담배도, 술도, 이상한 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가방이 간단하다.
내 차례가 되어 입국심사관에게 섰다. 여성심사관이었다. 강한 눈빛이었다. 한국에 사는냐? 등 간단한 질문과 답이 끝나고는 내가 건네 주었던 입국수속지 위에 적혀 있는 숫자 에 빨간 숫자를 칠하고는 돌려 주었다. 그리고 ‘잘 가보라’고 했다. 이번에는 운좋게도 잘 되었나 싶었다. 그러나 통로에서 통제관이 너는 저리로 가라고 했다.
제대로 답했고 별일도 없었다. 그럼 그냥 보내 주어야 하지 않나? 입국심사관이 입국수속지를 되돌려 주면서 “잘 가라”고 했다. 진짜 “잘 가라”라고 하는 줄 나는 정말 착각했지. 그 적색 숫자가 재조사 암호인지도 모르고. 옛날에도 깜박 속았지. 오늘 또 속았구나. 순진하게도 시리.
그 순간 “아! 저 여성 심시관, 저 놈이 나를 가지고 놀았어” 그 생각에 자존심이 아파왔다. 무슨 잘못이 나에게 있을꼬? 허접한 배냥 하나 메고 있는 머리카락 휘날리는 60세 넘은 내 모습이 간첩같아 보여? 나는 속으로 투들투들 대면서 한 구석에 앉았다. 어쩌라?
70년대 장발이라고 경찰관이 나를 붙잡아 놓고 가방 뒤지는 시절이 생각난다. 그때는 ‘튀어’ 하고 도망 가버리면 그만인데, 여기서는 그럴 수는 없고… 웃음이 나왔다. 대기장에는 여러 사람들이 재심사를 받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보면 나만 아니니 내가 좀 별스럽게 느끼는가 싶기도 하였다.
입국로비에서 기다리는 아들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가 언제 나올지 나도 알 수 없다고 하자 아들은 집으로 되돌아 가버렸다. 모든 것이 엉망이 돼버렸다. 무언가 되겠지 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무심코 배낭과 백팩가방을 챙기다 내 손안에 여권이 없음을 깨달았다. 오! 내 여권… 바닥에 배낭을 펼쳐놓고 뒤지고 뒤졌다. 못 찾았다. 금방 이 방에 들어 올 때까지 그것이 내 손 안에 있었는데…
“큰일 났구나!”
이것마저 없으면 그들은 나를 악인 취급할 것이다. 분실해도 이 방에서 분실했겠지. 걱정하며 우왕좌왕하면서 돌아서는데… 순간 정신이 확 들었다. 맞어 이 방에 들어올 때 심사관 그 놈이 이것을 낚아 채어 갔지… “내가 노망했구나!”
이렇게 우왕좌왕하고 있는데 누군가 내 이름 비슷한 이름을 부른다. 혹이여 하고 데스크로 다가가서 보니 나를 부르는 것이었다. 미친 놈, 무식한 놈. 소학교도 못 나왔나? 영어 철자를 보고 발음도 제대로 못하나? 사람이름 제대로 못 읽고, 쉰소리, 귀신 뼈다귀 뜬는 소리로 내 이름을 허공에다 뿌리다니…
내 이름인데 내 이름… …하니, 여자 심사관이 나에게 여권을 주면서 “가라” 라고 했다. 왜 갑자기 ‘가라’고 하냐고 따질 수 없어서 머리를 끌쩍거리며 머뭇거리고 있는데, 비꼬는 듯한 그 여자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열린 문 곧 닫힌다. 그럼 못 나갈 수 있다. 빠이”
돌아보니 정말로 열린 문이 닫히고 있었다. 가라고 하는데, 빠이 하는데, 무조건 가면 되는거야. 이것저것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황급히 그 사이로 빠져 나왔다. 입국장홀로 나오니 맥이 팍 빠졌다. 어떻게 나오든, 나왔으니 좋았다. 기분은 더러웠지만 말이다.
“이렇게 살라고 이민을 했었나? 차라리 그냥 있을 걸” <진미령의 ‘미운사랑’ 일부분 가사 변경 “이렇게 살려고 인연을 맺었나? 차라리 저 멀리 둘 걸”> 노랫가락 휘날리면서 아들에게 전화했다.
“나, 나왔다. 빨리 공항으로 오라.”
나는 입국장 주차장에 서서 초초하게 아들을 기다렸다. 한 30분이 지났나 흰색 럭서스가 내 앞에 삑 거리며 멈추어 섰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아빠, 나야 나”
아들의 손을 여러 번 쥐었다. 몇 년만인가? 나는 아들을 보고 또 보았다. 가는 도중 “왜 늦었냐?”고 아들이 물었다. 그 과정을 설명하자 아들의 말이다.
“아빠는 너무 원칙을 지키셔서 그래요. 그 사람 앞에 너무 눈동자 고정하고 곧은 자세로 있으면 더 그래요.”
“나도 공직에 있어 보아서 알지만, 아니 저 놈들도 공무원인데 그 앞에 예의는 지켜야지.”
“아빠, 저는 이제 그렇게 하지 않아요. 당당하게 능청맞게 가짜라도 마치 진짜처럼.”
집에 와서 밤새도록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들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그들을 존중한다는 생각에 스스로 나를 낮추고 상대(위로 대함)하였다. 그들 앞에서 괜히 정자세하고 정식으로 말하고, 그것이 문제인 것 같았다. 사람은 위엄이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스스로 낮추려고 했으니 말이다.
“너 심심하지. 판에 박힌 일을 하니 짜증나지. 그래, 그래, 이 사람아, 수고하는구먼. 나 아무 문제없는 위인이야.” 이런 생각으로 유머스럽게 폼을 잡는다. 차려자세 하지 말고 해 볼테면 해보라는 눈빛과 편안한 자세로 말은 점잖고 샤냥하게 태도는 상관처럼 말이다.
다음부터는 그들을 이렇게 하대(아래로 대함) 해야겠다. 내가 생각하는 위인이 아닌 너 놈들이 생각하는 위인이 되겠다는 것이다. 부자띠 나게 정말 값있는 것으로 은근하게 포장해 볼까? 아니면 아랍인들이 잘하는 것처럼 비단 상감저고리에 유건(유생들의 모자)를 쓰고 한번 비행기에서 내려 볼까? 그놈들은 어떻게 나를 대할까? 참으로 가소롭다. 그리고 참으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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