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발전되고 잘 사게 되면서 서비스 업종이 늘어나고 있다. 소득이 늘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욕구일 것이다. 그 중 전문적 서비스 업종은 특별한 교육과 자격이 요구되지만 단순 서비스 업종은 아무나 할 수 있다. 아무나 할 수 있다 보니 그에 따른 스트레스도 많이 따른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반복된 동일하고 단순한 작업과 더불어 대화가 동반될 때 많이 나타나지만 특히 생업 때문에 나를 다운시켜 만족되지 않는 일을 할 때 더 많이 생긴다. 고국에서 하던 일을 접고 어쩔 수 없이 생업을 위하여 본업과 관계없는 일로 고분구투하는 대부분의 이미자에게 생기는 현상일 듯 하다.
나의 이민 초기에는 단순한 스트레스로 부터 시작되었다. 그것은 말 못하고 듣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것 때문에 사업도 실패했었다. 좀 듣는 것이 가능할 때 마음대로 내 마음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없는 것이 또 스트레스가 되었다. 다음으로 최소한 불편한 사항을 표현할 수 있을 단계에 왔을 때 여기 사회에 능히 속할 수 없는 어려움 때문에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세월이 흐르고 여기 사회가 몸에 배이기 시작할 무렵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이 이 수준 밖에 안 되는냐 하고 반문하면서 한가지 스트레스가 더 쌓여 갔다. 지딴은 아는 것은 많은 데 단순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별 수 있나 세월이 약이지 이민생활에 이것이라도 하고 있으니 다행이지머 하고 매번 마음을 억누르고 스스로 만족하기를 강요하다 보니 이제는 참을 만 하였다.
아마 고국에서 이런 생활을 하였더라면 고객들과 다툼도 많았고, 상관에게 따지기도 하였을 것 같았고, 어쩔 수 없이 동업종으로 여러 번 직장을 바꾸었으리라. 혹은 친구들 불려놓고 매번 불평을 들어내고 세상이 어떠니 저떠니 하면서 소주병을 쾌나 쳐 밖았으리라.
여기서 내가 하는 일이 단순 서비스업이다 보니 많은 고객들을 만난다. 내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동안 고객과 회사는 젊잖았지만 경우를 넘어서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더욱 더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회사 시스템이 오래동안 성실히 근속한 나를 아직까지도 외계인취급을 한다는 것이다.
손님들은 자기들의 기분에 따라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지나가는 짧막한 대화여서 완전히 이해가 어려웠지만 그것이 단순한 일상의 이야기이었기에 나는 “그래요”, “ 맞아요”, “ 예” 하면 모든 것이 오케이었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시간도 없고 있다고 해도 그럴 필요가 없었다. 설령 손님이나 회사가 본의 아니게 나의 기분을 망치게 하는 경우가 있어도 대답은 똑 같았다. 나에게는 그들과의 충분한 문화적 공감대가 없었기도 하였지만 무엇보다도 나에게는 그것에 대항할 부드러운 언변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나에게 항상 스트레스가 되었다. 그러나 그 스트레스는 나 자신의 문제였기에 내가 스스로 날려 버리면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그 덕분으로 나는 손님들 뿐만 아니라 동료들에게 본의 아니게 항상 긍적적인 반응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아직까지 별 탈 없이 본업에 잘 충실하고 있다.
단순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단지 필요 이상의 지식이나 판단력을 가지는 것은 오히려 좋지 않다고 여겨진다. 그것은 서비스 제공이라는 본업 뿐만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괜히 안다고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는 둥, “저 사람은 왜 “라는 둥 “이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고객에 대한 사소한 일등에 관하여) 둥, 이런 것들은 자주 부정적인 반응으로 이어지고 결국 이런 것들이 반복 되다 보면 “나는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닌데” 라는 자기 우월주의에 빠지게 된다. 단순 서비스업은 생각없이 단순히 그것에 맞는 서비스만 제공하면 될 일이다. 더 이상의 능력과 사고는 필요가 없다.
만약 내가 여기서 한국말로 단순 서비스 업에 종사했다면, 좀 더 많이 안다고, 좀 더 능력있다고, 좀 더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있다고, 내가 충실해야 할 일에 필요없는 말과 행동 혹은 판단으로 말미암아 본연의 서비스업에 충실할 수가 없는 경우를 나도 모르게 스스로 만들 수가 있지 않겠는가 ? 하고 생각해 본다. 그렇다면 이것이야 말로 나에게 큰 스트레스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미리 떠났어야 했으니까 말이다. 그 능력도 없이 말만 앞세웠으니 말이다.
다행이 나는 여기서 단순 서비스업에 종사하면서 서비스 본연의 의무에 충실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여기 사회를 충분히 알지도 못하고 ,그들과의 충분한 공감대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있다 하더라도 말로 표현 할 수 있는 능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저절로 단순히 “그래요”, “ 맞아요”, “ 예” 하면서 고객이 원하면 대부분 다 행동으로 들어 준다. 어떤 때는 그것이 스트레스가 되기도 하나 좋아하고 만족해 하는 고객들을 보면 많은 위안이 된다. 특히 노인들이 즐거워 하면 나로서는 너무 좋았다.
혹은 손님께 따지고 싶은 욕망, 혹은 회사로 부터 부당한 대우에 대한 불평등 등에 대하여 말하는 방법을 몰라서 아니 깨어 놓고 말하자면 영어를 몰라서 가슴이 멍드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영어를 잘 하여서 좀 많이 안다고, 좀 많이 판단할 수 있다고, 좀 더 잘났다고, 회사가 나를 생각하는 이상 혹은 단순 서비스제공 이상의 언행으로 고객과 문제, 회사와의 문제를 일으키는 스트레스보다는 말 할 수 없어서 그냥 “맞아요” 하고 긍정적으로 응답하고 행동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생각으로 위안을 해 본다. “단순 서비스업을 제공하면서 알면서 영어를 몰라 말 안하는 것이 알면서 말하는 것 혹은 말할 수는 있어나 스스로 참아야 하는 것 보다는 나으리라” 라고. Andr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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