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고등학교 졸업을 위한 퍼포먼스가 있었다. 일주일 전 막내 아들이 나에게 참석하여 보시라고 당부를 하였기 은근히 기대가 되기도 하였으나 여기 고등학교 시스템을 전혀 모르는 나로서는 아마도 졸업 예정자들이 노래를 부르고 장끼자랑 정도를 하지 않겠는냐 하며 생각하였다. 나는 모처럼 이것저것 차려입고 저녁6시에 택시를 불러 출발하였다. 퍼포먼스는 저녁 7시 부터 시작하는 데 일찍 도착하여야만 앞자리를 차지할 수가 있다는 아들의 성화로 미리 출발하였던 것이다.
5월이고 보면 아들이 연습한다는 소리를 들은 지가 몇 개월 되었다. 방과 후 무엇인가 연습한다고 밤 늦게 오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운동이나 할 줄 아는 애가 괜히 놀고 싶어서 핑게를 대는구나 하고 여겼었다. 그래서 머 별것이 있겠서 하면서 그래도 이젠 막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이런 기회도 없어리라 하는 생각에 나는 좀 들떠 있었다. 차에서 내려 학교 정문에 들어섰다. 많은 학생들이 강당에 들어가기 위해서 줄을 서 있었다. 대부분 여학생이었다. 역시 가장 역동적인 고등학생 시절이라서 그런가 그들은 재잘 조잘그리면서 웅성거렸다.
드디어 7시가 되고 강당 문이 열였다. 많은 학생들이 들어 왔고 순식간에 강당은 사람들로 꽉 차 버렸다. 나는 용케 제일 앞 좌석이 하나 빈것을 발견하고 용감하게 어린 여학생 사이에 파뭍혔다. 뒤를 돌아보니 대부분은 여학생들이고 일부분은 남학생 그리고 몇 명의 학부모들이었다.
무대 커턴이 움직이자 여학생의 함성이 강당을 흔들기 시작하였다. 잠깐의 사회자 안내 말이 끝나자 20 여명의 남학생들의 군무가 시작되었다. 젊고 싱싱한 몸내를 그대로 들어낸 그들의 군무는 힘찼다. 비슷한 옷을 입고 비슷한 동작으로 자기 나름대로 자신을 열심히 뽐내고 있었다. 관중은 환호하였고 강당은 무대 위의 군무와 조명, 그리고 환성으로 가득 차 버렸다. 아마도 친구이고 동료이고 이성이다 보니 그 여학생들은 더 열광하였으리라 생각되었다.
군무가 끝나자 둘 이상으로 이루어진 소그룹 퍼포먼스가 계속이어졌다. 코믹한 짫은 극, 코믹 댄스, 혹은 코믹 퍼포먼스 등으로 2시간 반 동안 진행되었다.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는 그러한 것은 없었다. 같이 웃을 수 있고 같이 환호할 수 있는 싱거러운 고등학생들만이 할 수 있는 그러한 엔터테이먼트라 할 수 있었다.
어린 여학생들의 환호속에서 나는 정신없이 무대를 처다 보았고 내 나름대로 황홀감에 빠져 버렸다. 무대위 시꺼먼 뒷배경 앞의 그들에게 스폿라이트가 비추어지자 그 곳에서 남학생들의 힘과 율동과 자유분망함이 넘쳐 나면서, 나도 환호하는 여학생 사이에서 그들의 일부가 되버렸다. 그것은 그들의 자유 분망한 연기와 힘, 율동과 젊음, 그리고 낭만과 코믹 등이 서로 어우러진 그들만의 잔치였다.
그들의 웃음과 환호와 열광 속에서 무료할 것이라고 예상하였던 2시간 반은 금방 지나갔다. 저녁 10쯤 무대의 막은 내렸다. 무대는 검은 어둠과 함께 다시 조용해 졌고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밖으로 흩어졌다. 나는 마치 무대막 위에 어럼푸시 내 젊은 시절의 그림자를 걷어 내 듯 천천히 일어났다. 강당을 나왔다. 그리고 강당과 연결 된 식당홀에 서서 아들을 기다렸다. 강당 앞의 큰 식당에서 학생들이 분주히 오갔다. 모였다, 환호하였다, 그리고 흩어지는그들의 모습을 보고 나는 그냥 생각에 잠겼 버렸다.
내가 알고 있었던 옛날 우리의 학생 발표회와 방송에서 나오는 아이돌 연기 등을 더덤어 보았다. 그것들과는 너무나 달랐다. 여기 퍼포먼스에서 열정을 솟아 낸 연기자들은 남학생이었고 그것에 열광한 관중들은 여학생이었다. 그 열정은 평소 배웠던 노래나 악기 기타 등을 조용히 연기하는 것이 아니었으며 그룹 단위로 코믹을 담은 강한 율동의 군무와 코믹 퍼포먼스같은 것이었다..
군무 혹은 연기를 할 때는 상황에 맞는 옷을 차려 입었으나 비슷할 뿐이었다. 즉 각자 집에서 비슷한 것을 자기 나름대로 준비한 것 같았다. 동작은 비슷하게 일치는 하고 주제에 맞았으나 각각 개별성이 강했고 통일성과 일치된 주제 아래의 연기속에 다양한 자기들만의 몸동작으로 이루어 졌다. 통일된 율동속에서 마치 나이트 클럽에서 각각 자기 몸을 흔드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나는 이민을 통하여 이국 생활을 함으로서 우리와 다른 많은 것을 경험하였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래서 다르구나 하는 확실한 전문적인 정의는 못 내려도 나이를 먹다 보니 직감적으로 알 수는 있었다. 다양함, 형식에 구외되지 않는 자유 분방함, 성인으로서의 개인성, 그리고 생활을 윤택하게 해주는 위트들을, 실제 어린 학생들이 무대위에서 그것들을 펼치는 것을 보니 그 실감은 확실히 크고 달랐다.
기획되고 통일된 일사분란한 아이돌의 현란한 몸동작에서 절대 볼 수 없는 자연스럽고 순수하고 때뭍지 않은 젊음의 열정을 보았다. 어수룩한 아마추어이나 그곳에서 그들의 정열이 있었고 감정이 있었고 그들의 끼가 있었다. 문화라는 것이, 사는 방법이라는 것이, 그리고 사회 시스템이라는 것이 이미 어린 학교시절부터 그곳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생각에서 나왔다. 마침 아들이 저멀리서 소품들을 들고 다가 왔다. 무작정 보자마자 막내에게 물어 보았다. 이것 말고 또 퍼포먼스 있어? 이것 하나, 다 입니다 라는 대답이 되돌아 왔다. 왜냐하면 그 중에서 확실히 풀리지 않는 궁금증 하나, “왜 관중석에는 여학생들이 대부분이고 무대위에는 남학생들 뿐이었을까?”가 머리속에 계속 맴 돌았기 때문이었다. 졸업을 자축하기 위한 하나 뿐인 퍼포먼스이라면, 이것은 아마도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성인이 될 쯤에 이런 퍼포먼스를 통하여 “남자의 역활과 책임이 자연스럽게 여기서부터 표현되는구나” 하고 내 나름대로 추측해 보았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말보다 몸표정(body language)이 더 전달력이 강하고 순수하듯 그럴 듯한 글 보다 하나의 예술작품이나 퍼포먼스가 시대의 가치 혹은 특정의 문화를 이해하는 방법으로는 더 강렬하고 순수할 수가 있다. 그리고 보면 오늘 고등학교 졸업학생 퍼포먼스 관람은 나에게 그들의 가치를 이해하는 중요한 시간이 되었다고 본다. andr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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