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푸르고 바람은 시원하다. 춥지도 덮지도 않고 하늘은 맑디 맑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오늘은 토요일 모든 이들이 쉬는 공휴일의 첫날이다. 그러다 보니 오전은 한가하고 정오가 지나면서 조금씩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휴일을 위하여 쇼핑를 한다든가, 혹은 나들이를 준비하기위하여 업타운이나 쇼핑센터에서 분주하게 움직인다.
내일은 July 19 아버지 날이다. 그래서 그 분을 위해서 선물을 준비한다 든가, 모임 혹은 파티를 준비하고자 오늘은 보통의 휴일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붐빈다. 특히 식당들은 더 그러하다.
캐나다 여기서 나는 어머니 날과 아버지 날에 여러 번 멀리서 그들을 지켜보았다. 그 날 하루 전 꽃을 사고, 반지를 사고, 옷을 사고 하면서 쇼핑을 즐기고, 저녁에는 음식으로 파티를 준비하고는 밤 늦게 이야기를 하면서 애정을 서로 주고 받는 것을 보아 왔다. 그리고 휴일인 아버지날과 어머니날은 가족과 같이 지내며 대화하고 웃으면서 서로의 애정을 확인하는 날이고 또한 부모의 은혜에 보답한다는 날이기보다 부모과 자식 사이의 애정과 사랑을 주고 받으며 그들만의 가족관을 이어가는 날로 보여졌다
사람들은 다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아들 딸을 낳아 오손도손 살아가는 꿈을 꾼다. 한국이나 캐나다 혹은 세계 어느나라이든 마찬가지 일것이다. 체제가 다르고 이념이 달라도 이것만은 같다. 즉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활이 나라와 이념과 체제에 따라 조금씩은 차이가 있으나 그 근본은 같을 것이다.
우리의 역사에서 아버지는 가족의 존립과 신분의 원천이었다. 그래서 아버지들은 가족을 위하여 희생되기도 하고 가족 위에 서 있는 권위자가 되기도 하였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따라야 하고 가정을 지켜야 하였다. 그리고 역사의 수레 바뀌가 돌면서 자주 어머니들은 아버지 대신 가족의 보호자가 되어 왔어야 했고 혹은 그 와중에 희생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한 어머니는 일제시대에서는 가족을 위하여 죽지도 못하고 살아야 하였고 육이오전란 전후시절에는 가족을 가난과 사상으로부터 보호해야 했으며 근대화시대에서는 경제개발에 참여하여 그 역군의 역활을 해 왔다. 그래서 우리는 어머니날에 그분의 측은함과 애처로움을 떠 올리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얀꽃을 준비해 왔었다.
아버지도 어머니의 역활 못지 않았다.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가족을 이끌어 가기 위해서 혼자 고통을 감수해야 헀다. 식량을 구해서 우선적으로 가족을 먹여야 했고 추우면 옷을 벗어 가족에게 입혀야 했다. 이러한 가난과도 싸워야 했을 뿐만 아니라 이념과도 싸워야 했으며 침략으로 부터 가족을 보호하여야 했었다. 뿐만아니라 용감해야 했고 자존심도 지켜야 했었다. 또한 이 모든 어려움을 혼자 감당했어야 했었다. 그래서 이후 우리는 어머니날를 어버이날로 칭하고 아버지와 어머니 두분 모두에게 감사하고 은혜에 보답하고 있다.
세상은 많이 살기 좋아졌고 이념도 많이 변했다. 그러나 해방과 전쟁 그리고 근대화를 거치면서 우리 자신을 되돌아 보고 성숙시키는 시간은 없었다. 그래서 우리의 자손들은 과거의 이념은 헌신작같이 버려고 자유와 복지만이 최고인 양 그들의 세상을 즐기고 있다. 그리고 지금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내 자손들도 나의 세대보다 더 큰 이념의 갈등을 안고 허급지급 자유와 복지를 탐하고 있다.
어렵고 힘든 시절에는 가족을 지탱해주는 큰 버팀목이 되어 준 아버지의 권위주의는 자유복지시대를 맞이하면서 빛을 잃고 비틀대기 시작하였고 자식을 위해서는 죽음이라도 마다하는 어머니의 극진한 사랑은 우리 자식을 무한 경쟁의 시대로 던져 버렸다. 그리고 부모와 그들은 함께 있으면서도 혼자가 되어 버렸다.
과거의 어려움을 지탱할 수 있게 하여 준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념을 바탕으로 자유복지 시대와 부합되는 새로운 가족관 형성에 정성을 들였어야 했건만 우리는 경제성장에 급급하여 그렇게 하지를 못했다. 옛날 어려웠던 시절과 과거의 전통을 반복하여 외쳐면 외칠 수록 허공의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고 마침내 경제성장만 이룩한 어리석고 쓸모없는 늙은 세대로만 취급받고 있다.
이제 우리는 출발선에 다시 서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세대는 자유복지 시대를 진입하면서 혼돈속에 빠져 있고 우리의 젊은 세대는 과거의 권위를 부정함과 동시에 무가치관에 빠져 방황하고있다. 그리고 그들 각각은 외로움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밖으로 내다보면 세계열강은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목소리를 높이고 필요하다면 과거의 제국시대와 같이 공격도 할 것 같다. 가끔 나의 아버지 할아버지들이 겪었던 암흑의 시대 혹은 혼돈의 시대가 다시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마음도 든다. 먼 훗날 행복한 가족과 건강한 국가를 위하여 옛날의 우리를 지켜준 그 이념을 바탕으로 다시 자유복지 시대에 걸 맞는 새로운 사상과 가족관계를 바로 준비하여야 할지도 모른다. 그것의 기초가 되는 것은 바로 세대와 세대를 연결하는 행복한 가족관계이다.
이를 위해서 자상하면서 가족을 이끌어가는 아버지, 안락하게 가족을 품는 어머니, 그들과 연결되는 딸과 아들 등등 이와 비슷한 전통속 새로운 가족관을 바탕으로 우리는 자유복지 시대에 새로운 아버지상과 새로운 어머니상이 필요하다.
우리도 아버지날과 어머니날을 공휴일로 지정하여 부모의 정을 추모하는 날이 아닌 아버지날과 어머니날에 서로의 애정을 주고 받으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확인하는 계기를 만든다면 우리가 바라는 과거를 계승한 신가족관이 조금씩 조금씩 형성될 것이다. 이 조그만한 것이 모여모여 우리를 영원히 행복하게 지켜 줄 국가관으로 발전되리라 나는 굳게 믿는다. Andr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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