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13 형제들의 가을 성묘길
추석이 지나고 얼마 후 고향에 계시는 형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같이 산소에 가보자고. 부모 산소는 문중 땅에 있고 그곳을 가기 위해서는 경주에서 자동차로 1시간이 필요하다. 형님은 노년에 자동차를 처분하였다. 산소에 혼자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다. 그렇다고 신세대 아들에게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거절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자존심만 상한다. 만만한게 동생이었다.
나이를 더 많이 먹으니 부모 산소에 자주 가고픈 모양이었다. 속으로, 그냥 속으로, 죽을 때가 다 되어가는 모양이군 하고 생각되었지만 나는 흔쾌히 한번 내려가겠노 라고 답하였다. 사실 나도 형제들을 보고 싶었다. 깐깐한 형님이지만 말이다.
부산 누님에게 전화 했다. 같이 성묘가자고. 누님도 흔쾌히 승락하면서 여동생을 꼬셔서 같이 가도록 하겠다고 하였다. D-Day을 한글날 연휴로 잡았고, 그날이 되자 자동차를 몰고 경주로 내려 갔다.
내 자동차로 움직이니 모든 사람이 편하도록 내가 조치해야 했다. 우선 형님댁에 가서 형님내외를 태우고 부산에서 올라오는 누님 여동생을 경주터미날에서 픽업하여 산소로 향했다. 산소는 깊은 산속이다. 일행은 자동차에 내려 잠깐 산행을 했다. 마침 그날은 날씨가 어찌 그렇게 좋던지… 가을 날씨가 청명하면서 더울 정도였다.
산소는 이미 잘 벌초되어 있었다. 요즈음은 일당을 주고 벌초를 시킨다. 산소가 있는 남향 산중턱에서 바라보는 전경은 너무나 좋았다. 정성들여 술 한잔과 과일을 두고 모두 절을 했다. 형님은 엎드려 부모님께 주절주절 오래 말씀을 하셨다. “우리를 잘 되게 하소셔…ㅇㅇㅇㅇㅇㅇ….” 아마 부모님이 그곳에 계시는 것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성묘를 마치고 그늘에서 둘려앉아 과일과 음식으로 요기를 했다. 7형제 중 네명, 형님(형수님), 누님, 여동생, 나였다. 문득 형님이 나에게 한가지 주문을 했다. 산소 건너편에 오독 솟아 오른 나무를 잘라 라고 하였다. 눈에 거슬리는 모양이었다.
옛날 같으면 거절하였다. 그러나 흔쾌히 하지 않으면 오랜만에 만나는 형제끼리의 기분이 조금이라도 상할까 봐 얼른 낫을 들고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놈의 나무를 자르기 위해서는 그곳까지 길을 내어야 한다. 그래야 들어갈 수가 있다. 10분 작업 후 그놈의 나무를 제거했다. 가을 날씨이지만 햇빛이 강했고 그날따라 더웠다. 온몸에 땀 범벅이었다.
우리는 자리를 정리하고 산 밑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경주로 향했다. 가는 도중이 불국사이다. 형님이 기분이 좋으신가 늦은 시간이지만 함께 점심을 먹자고 하였다. 내 친구 모임에서 여기 불국사 앞 어탕집을 가 보았는데 참으로 맛이 좋았다. 그곳으로 가자고 청했다. 불국사와 보문단지로 가는 길은 유명한 식당과 까페가 모여 있는 곳이다. 우리는 큰 도로변에서 약간 숨어있는 “어탕 명가”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손님이 많았다. 어탕을 각자 입맛대로 시켰다. 나는 수제비 어탕, 다른 사람은 그냥 어탕으로…
먹어 보니 그 맛이 정말로 깔끔했다. 같은 종류로 충청도에는 어죽이 있다. 여기 어탕은 맑은 국물이고 어죽은 뻑뻑한 죽같은 것이다. 충청도에서 어죽을 여러번 먹어 보았다. 맛은 좋았지만 내 입에는 여기 어탕이 더 좋았다. 어죽은 민물고기를 삶아 육질 그대로 탕을 만들니 뻑뻑하다. 반면 어탕은 민물고기를 삶고 끓여 그 육수물만을 내려 탕을 만드니 맑다. 불국사 관광지에서 한 그릇 9,000원이라면 매우 저렴한 편이다. 딸려 나온 반찬도 매우 깔끔했다. 추어탕도 충청도는 뻑뻑하나 경상도 추어탕은 맑은 국물이다. 역시 나는 추어탕도 경상도 맑은 추어탕을 좋아한다.
경주에 도착하여 형님 형수님을 집까지 모셔드렸다. 형님댁에서 그냥 나올 수가 없었다. 다 같이 간단히 다과를 즐긴 후 나는 누님과 여동생을 모시고 나왔다. 누님과 여동생을 경주 시외버스터미날로 모셔드리고 나는 세종으로 갈 참이었다. 막상 출발하자 나는 마음이 변했다. 누님을 부산집으로 모셔드리고 나는 부산에 사는 여동생집에서 하루 묵을 계획을 잡았다. 누님도 여동생도 편하니 대찬성이었다.
우리는 다같이 부산으로 향했다. 부산에 도착하니 저녁이었다. 누님과 여동생이 집근처 동네 당감시장에서 전어회에 소주를 한잔하자고 했다. 누님, 여동생과 한잔을… 대박이네…
모듬 전어회 한 접시를 시키니, 물회 한접시 그리고 반찬이 같이 나왔다. 소주와 맥주도 시켰다. 전어회를 물회에 말아 먹으니 그 맛이 얼마나 좋던지. 전어회를 그냥 된장에 찍어 먹어도 좋았다. (전어회는 초장보다 된장이 제격이다) 이 집(당감시장 시장회집) 회가 저렴하고 맛도 좋네.
소주 맥주로 누님 여동생은 얼큰하게 취했다. 아마 남동생 혹은 오빠 앞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남동생과 함께하니 마음이 풀어졌나 봐. 나는 운전중이라 딱 한잔을 했다. 술이 들어가자 근엄한 누님 여동생이 얼마나 유쾌하게 떠들던지…. 평소 없었던 일이었다. 나 역시 두 여사님들을 이렇게 모시니 저절로 기분이 좋았다. 3시간 동안이나 우리는 제잘제잘, 다 60십 넘은 사람들이 모여서… 자동차로 모시고 한잔하고 할려면 일괄 서빙해야한다. 기분이다 하고 내가 현금으로 처리했다.
당감동 누님 댁까지 모셔드리고 나는 여동생과 함께 여동생이 사는 아파트로 갔다. 동생집에 도착하자 내 몸이 이상하기 시작했다. 등이 슬슬 가려워지고 결국에는 견딜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온몸에 두드러기였다. 풀독인가? 밤새도록 끙끙거리다 다음 날 병원을 찾았다.
주사 두 대와 약을 먹으니 약간 두드러기가 시들했다. 아마도 산소에서 나무를 밸 때 풀독이 옮았는가 보다. 그때 형님이 나무 밸 것을 시킬 때 거절했어야 했는데… 좋게 넘어갈려고 아무 말없이 했는데… 아마도 내가 자식이었더라면 시키지 않았으리라. 자식에게는 여기 가자고 말도 못한다. 동생이니 만만했겠지.
세종으로 돌아와 3일이 지난 오늘도 목과 등, 옆구리에는 붉은 반점이 넓게 모래알처럼 붙어 있다. 일단 삭기 시작했으니 견딜만 하다. 무엇 그것이 큰 대수인가? 형제끼리 만났고, 그리고 행복했다.
누님, 여동생과 함께 부산에서 술한잔을 하면서 누님의 제안이 있었다. 동생아! 동생 보아라! 서울언니, 나, 동생, 그리고 너하고 매년 두 번 모이자. 월회비로 만원으로 정하고. 나야 좋지, 셋 마나님 모시고 즐기면… 참석하지 않은 서울누님은 내가 꼬셔 볼께. 내 말은 들어주니까. 그래 11월달 부터 시작해 보자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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