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612 그림의 떡
캐나다에서 고국으로 돌아와서 나는 세종에 안착했다. 캐나다로 이민하기 전에 내가 살았던 곳이 대전이었고 그 옆 신도시가 세종이었다. 그리고 세종에 지인이 있었다. 그래서 쉽게 세종에 안착할 수 있었다.
세종에는 신도시 특성상 여러 도시에서 온 사람들이 이주해서 산다. 낮선 곳이지만 지역성이나 기득권이 없어 안착하고 살기에는 오히러 편했다. 세종은 최근 만들어진 최대 신도시이고 국가 차원에서 계획한 도시이기에 규모면에서나 질적면에서 우리나라 최고이다. 그런 도시에서 나는 인생 후반을 즐기고 있다.
세종에서 부동산 사무소를 개업한 지가 벌써 2년이 다 되어간다. 보통 살고 일하는 곳에 친구가 생긴다. 나에게 한 친구가 생겼다. 그는 여기 세종 원주민이며 세종의 지리적 인문적 역사를 꿰뚫고 있다. 타지에서 친구란 그냥 업무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와는 비슷한 공감대가 있어 만날 기회가 많았다. 자주 같이 밥 먹고, 술 먹고, 이야기도 하고… 그와 이야기를 하면 나는 매우 편하다. 아니 그가 나를 편하게 해주는 것 같다.
그에게 부탁이 있어 오늘(토요일) 아침 전화를 했다. 큰 돈을 잠깐동안 좀 융통해 달라는 나의 부탁에 그는 흔쾌히 답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인데 말이다. 그는 무엇인가 먹고 있었다.
“아침 먹어요?”
“호두빵에 우유를 먹고 있다오”
“그것이 아침이라? 사모님은?”
“절에”
“또 절에, 절에서 사시네, 절에 살아”
“없는 것이 편해”
“그래도 없는 것보다 낫지, 혼자 살아 봐. 혼자라는 빈 공간, 그 쓸쓸함, 그 불편함. 잠깐이라면 모르지만… …”
“아니야 생각하기 나름이지. 혼자가 나을 수 있어
친구의 아내가 부처를 보고 싶어 절에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대놓고 말할 수는 없었다. 우리 삶이 다 그런 것임을 나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말 도중에 그에게 ‘그림의 떡’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 떡은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다. 차라리 그 그림이 없다면 모르지만, 가끔 짜증을 나게 한다고 했다.
뜬끔없는 말에 나는 생각없이 물었고 그는 쉽게 답했다.
“안보이는데 치우면 괜찮겠지요?”
"그 그림은 오래 전부터 거실벽에 콘크리트못으로 단단하게 고정이 되어 있어, 어려워”
그래서 나는 그가 편한가? 평소 그는 내 눈치없음에 눈치있음으로 잘 대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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